25. 필독서 목록과의 싸움

<어느 날 책을 선택했다>

by 나승철

책을 미친 듯이 읽었고 지금은 예전 같지는 않지만 글을 쓰고 유튜브 서평 동영상을 올리는 시간 이외에는 책을 읽는다. 도서관 종합자료실에 비치된 한국십진분류법 요목표를 따라 총류, 철학, 종교, 사회과학, 자연과학, 기술과학, 예술, 언어, 문학, 역사에 청소년으로 분류된 책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고전을 비롯한 이미 알고 있는 제목의 책부터 뽑아 든다. 헌책보다는 새책이 좋다. 헌책은 고약한 냄새와 함께 책 일부가 파손되거나 볼펜으로 밑줄이 그어진 경우가 많다. 새책은 출간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종이 냄새가 신선하게 다가오고 사람 손이 덜 타서 깨끗하다. 읽으면 읽을수록 읽어야 할 책 목록은 줄지 않고 오히려 늘어난다. 읽고 있는 책 본문에는 해당 저자가 인용하거나 추천하는 책 제목이 적지 않게 나온다. 자연스럽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 방식이 이어져 읽어야 할 '필독서' 목록은 점점 꼬리가 길어진다. 읽는 속도가 읽어야 할 책을 선택하는 속도를 전혀 따라가지 못하는 까닭이다. 본문에 나오는 책 중에서 읽고 싶은 책 제목은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저장한다. 휴대폰에 저장된 앨범에는 그 어떤 사진보다 책 제목이나 책 소개 사진이 압도적으로 많다. 한번 찍어둔 사진은 그 책을 읽고 난 후에야 삭제한다. 한 도서관에 없는 책은 내가 살고 있는 시 전체의 도서관에서 검색하여, 책이 있는 도서관으로 빌리러 가거나 상호대차 서비를 이용한다. 2권이 상호대차 제한 권 수라 일부러 도서관을 방문해서 빌리는 경우가 많다. 읽고 싶은 책이 있는 도서관이 가깝든 멀든 그 여정은 항상 즐겁다. 원하는 책도 빌리고 그 도서관에는 어떤 책들이 있는지 둘러보는 시간이 기대가 되기 때문이다.


독서의 폭이 넓어질수록 오히려 아쉬움이 크게 다가온다. 아무래도 깊이 면에서는 부족함을 느끼는 탓이다. '넓고 얕게' 읽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인문 사회부터 수학이나 물리학 등 전 분야에 걸쳐 읽는 독서의 한계라고 볼 수도 있겠다. 때로는 수박 겉핥기식의 독서에 머무는 건 아닌지 걱정도 했다. 하지만, '달걀로 바위 깨'는 경우가 아닌 '열 번 찍어 넘어가는 나무' 같은 현상이 더 자주 벌어졌다. 철학이나 물리학 관련 책을 다양한 저자는 물론 여러 단계의 책을 골고루 읽다 보니 처음에는 생소하던 이론이나 용어가 친근하게 다가오면서 이해의 정도가 사뭇 달라졌다. 이 책에서 거론한 내용이 저 책에서 나오고, 이 책에서 이해 못 하던 내용이 저 책에서는 이해할 수 있었다. '가속도의 법칙'처럼 처음에는 느리고 더뎌도 탄력이 붙으니 이해 속도에 가속도가 붙는 것이다.


도서관 편력에 이어 학술단체나 대학교에서 선정하거나, 또는 언론에서 주목하거나 추천하는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선택한 초창기에 도서관에서 고른 책은 주로 교과서에서 인용한 책이 대부분이어서 고전이 주를 이었다면, 도서관 밖에서 고른 책은 근현대의 '준고전'이라 불리는 것과 뛰어난 신간이다. 지금은 도서관 안팎을 가리지 않고 좋은 책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검색하거나 발로 뛰며 찾고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책 선택 방법과 더불어 인터넷 검색과 발품을 팔면서 고르는 책이 혼합되어 읽을 책을 선정한다. 너무 많은 책이 독서 목록에 올라 감당하는 데에 따른 고통도 여전하다. 과한 책 욕심 탓에 책 목록만 늘어날 뿐 좀처럼 줄어들지는 않는다. 세상에는 좋은 책이 정말 많다.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음은 물론, 평생 좋은 책 더미에 깔려 살 수도 있겠다. 시간은 부족하고 읽어야 할 책 목록이 빚더미의 이자처럼 늘어난다. 냉정한 결단이 필요하지만 한번 정해놓은 필독서 목록을 지우기는 너무나도 어렵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은 마음에 추리고 빼는 정리를 시도한 적도 많다. 이 책은 이래서 빼고 저 책은 저래서 빼고, 그렇게 정리를 하면 목록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진다. 하지만 그런 상태는 오래가지 않는다. 새로운 번역으로 고전이나 명저가 신간으로 나온 걸 발견하면 어쩔 수 없이 필독서 목록에 달아 놓는다.


필독서 목록을 줄이는 방법은 지적 욕망이나 허세를 줄이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 같지만, 그게 그렇게 쉽지 않다. 읽지도 못할 책을 잔뜩 쌓아놓고 있는 형편이니, 참 미련하고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지금보다 독서 내공 또는 지적인 능력이 성장한다면 필독서 목록은 좀 가벼워질 수 있을까. 독서만큼 시간 대비 생산성이나 효율성이 떨어지는 일이 또 있을까 싶다. 글이 발명된 이후, 책이 발명된 이후 사람이 책을 읽는 방법의 효율성 내지는 생산성은 그렇게 나아지지 않았다. 낭독에서 묵독으로 바뀌면서 조금은 읽는 속도가 늘어났지만 그게 전부다. 눈동자를 굴리거나 문장을 사선으로 읽는 방법을 쓰는 속독은 독서의 가치에 맞지 않는 방법일 뿐이라 논외로 치고, 글을 빨리 읽으면서 사색을 충분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독서의 달인이라 할지라도 한 권의 책을 보통 사람들보다 아주 조금 빨리 읽는 수준에 그친다. 읽기의 생산성은 시간이 흘러도 제로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속도가 붙지 않는 책 읽기라면 제한된 독서량에 따라 읽어야 할 책을 제한할 수밖에 없다. 책을 선택하면서 가장 아쉬운 점이 바로 그 부분이다. 책을 마음대로 읽고 싶은 대로 읽을 수 없다는 현실. 결국은 필독서 목록을 가볍게 하는 수밖에 없다. 필독서 목록과의 지난한 싸움이 이어지는 이유다.


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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