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요약과 발췌는 기본이라지만...

<어느 날 책을 선택했다>

by 나승철

서평을 쓰기 시작하면서 책을 읽는 중의 요약과 발췌는 기본이었다. 나중에라도 등장인물과 줄거리를 잊지 않으려고 책 내용을 요약하고 핵심 문장은 발췌해서 독서 일지에 기록한다. 독서 일지는 B5 규격의 100장 정도의 왼쪽에 스프링이 달려 있는 두꺼운 노트이며, 필기에 적합하도록 각 면에는 8mm 간격의 줄이 그어져 있는 걸 골라 쓰고 있다. 쉽게 지울 수 있고 '슥슥' 나는 소리 때문에 연필('샤프'라 불리는)을 필기도구로 사용한다. 분야별, 혹은 과목별로 분류하니 50개 정도의 독서 일지기 만들어졌고, 인문사회나 글쓰기 분야 같은 노트는 3권이 넘어가니 지금까지의 전체 독서 일지는 70여 권이다. 책을 선택한 이후 내게 가장 큰 보물이 된 건 독서 일지다. 아마 내가 그 누구에게 남겨줄 수 있는 게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내 분신이기도 한 독서 일지다. 책장에 열 지어 꽂힌 독서 일지를 보면 뿌듯한 마음과 함께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낀다. 깨알 같이 적혀 있는 글자에 지나온 수고와 열정이 묻어 있다. 시간이 더 지나면 연필(샤프)로 쓴 글자는 제 형태를 잃을 것이다. 나보다는 오래 버티겠지만 전혀 못 알아볼 정도가 되기까지 누군가가 소유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좋은 책이라 생각되면 분야를 가리지 않고 읽는 습관 덕분에 인문과 자연과학, 문과와 이과 관련한 거의 모든 학문 분야의 책을 읽고 있다. 사서삼경 같은 동양고전을 비롯해 고대 그리스 철학 등의 서양 고전의 새로운 번역이 나오면 다시 읽기 때문에 몇 년 주기로 읽은 책을 또 읽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책들은 한 번 읽고 만다. 단 한 번 읽고 기억에 지워지지 않게 하는 방법이란 요약과 발췌를 바탕한 줄거리를 제대로 정리해 놓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도 독서 일지를 보거나, 독서 일지를 바탕으로 풀어쓴 블로그 서평을 보면 해당 책의 핵심을 파악하기 가능하도록 책의 요지를 담은 줄거리 작성에 정성을 기울인다. 서평의 내용은 책의 구성 순서를 따라가는데, 그렇게 해야 줄거리를 놓치지 않을 수 있고 요약 줄거리만 읽어도 쉽게 책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책은 반복해서 읽어야 한다는 독서계에 널리 펴진 조언도 있지만, 특별한 고전이 아니고서는 대부분 한 번을 제대로 읽고 핵심과 줄거리를 남기는 방향으로 정했다. 그렇게 한 이유는 단 한 가지, 세상에는 좋은 책이 너무 많아 한 권이라도 더 읽기 위해서다. 고전부터, 준고전, 베스트셀러, 추천 도서 목록 등 한정된 시간에 읽을 책은 너무 많다. 책을 아무리 많이 읽는 능숙한 독자여도 그가 책을 읽는 속도는 일반 독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읽으면 읽을수록 내용이 더 깊이 들어오는 탓에 책 읽는 속도는 더 늦어지는 경우도 있다.


요약과 발췌를 기본으로 2천여 권의 서평을 블로그에 올렸고 지금도 계속 올리고 있다. 문제는 글 솜씨가 그렇게 나아지지 않았다는 사실, 전혀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작가가 되는 꿈을 꾸면서 글을 쓰는 사람에게 글쓰기 실력이 늘지 않는 것만큼 좌절을 안기는 건 없을 것 같다. 요약과 발췌를 기본으로 유연하고 능숙하게 서평을 작성하지만, 줄거리 중심이라 그런지 글 솜씨가 영 늘지 않고 제자리만 맴도는 느낌이다. 뛰어난 서평이나 평론을 담은 책을 보면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감탄을 하면서 초라한 내 서평을 질책하고 자괴감에 빠진다. 서평 스타일을 바꿔야 하나. 책의 본문 구성 순서대로 줄거리를 요약하는 방법을 바꿔야 하나. 책의 핵심을 강조하면서 강렬한 느낌을 전하고 주관적 평가에 집중해야 하나. 그렇게 하면 책을 읽은 지 5년, 10년이 지나서 내가 쓴 서평을 봐도 책의 줄거리가 생각나지 않으면 어쩌지. 별 생각이 다 든다. 이대로의 서평 작성 방식을 고수한다면 아무리 서평을 많이 써도 글솜씨가 늘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이 앞을 가로막는다.


글쓰기 역시 하나의 기술이라면, 타고난 유전적 요인과 더불어 정규 과정의 배움이 반드시 필요한 건 당연해 보인다. 유전적 요인도 부족하고 정규 과정으로 배우지 않았다면 어떻게 글쓰기 실력을 키울 것인가, 그것이 심각한 문제다. 책을 많이 읽고 서평을 많이 쓰는 것으로는 턱도 없다는 것인지. 책을 많이 읽지도 않았는데 유별나게 글을 잘 쓰는 사람, 그런 사람이 쓴 책을 만나면 절망감은 더욱 커진다. 타고난 재능이나 재주를 발휘하는 사람 때문에 자신의 꿈과 목표를 포기한 경우는 수없이 많을 것이다. 자신보다 덜 노력하는 것 같은 데도 상대가 훨씬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는 경우 말이다. 상대와 비슷한 노력임에도 불구하고 결과에서 큰 차이가 난다면 분명 유전적 요인을 추앙하거나 원망하게 된다. 결과에 따라 선순환과 악순환이 갈리는 일이라면, '마태효과'로 인하여 극단적인 양극화가 일어나고 승자와 패자가 갈리며 패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 뿐이다.


글쓰기에 대한 유전적 요인 즉 재능의 부족함 때문이거나 성실한 요약과 발췌만으로 글쓰기 실력이 늘지 않는다고 여기서 포기하거나 노력을 멈출 수는 없다는 결정을 내린다. 자질이 부족하고 배움의 정규 코스를 밟지도 않았는데 왜 나는 글을 쓰려고 할까, 되묻는다. 글을 써서 먹고살 결심까지 하다니, 과한 욕심이 아닌가. 하지만, 책을 선택한 대가는 냉정했다. 많이 읽었으니 이제는 읽고 쓰라는 '정언 명령'이 마음속에 떨어졌다. 이제까지 살면서 쌓였던 불평불만을 토해내라는 지시였다. 좋은 기억보다는 쓰라리고 고통스러운 기억을 불러내어 드러내라는 명령이었다. 마음의 상처는 일단 드러내야만 그 상처로부터 고통을 덜 느끼거나 고통에 친숙해질 수도 있다는 암시였다. 그냥 두면 없어지지 않고 안으로 곪아서 결국은 암덩어리밖에 더 되겠냐는 논리였다. 소설가 박완서는 글을 쓰며 먹고사는 일이야말로 가성비 떨어지는 일이라고 했다. 글 솜씨도 부족하면서 글로 먹고살 생각은 너무 무모해 보인다. 하지만 내 선택은 불가역적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파부침주(破釜沈舟, 밥 지을 솥을 깨뜨리고 타고 온 배를 가라앉힌다는 의미)'의 심정으로, 절박한 각오로 마음을 다잡는다. 책의 가르침으로만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을까. 책을 선택하면서 들었던 고민이 다시 되살아난다. 책만 읽어서 먹고살 수 있을까.


책을 선택했으니 문제 파악과 해답 역시 책에서 찾기로 한다. 글쓰기 관련 책은 물론, 모든 책을 읽을 때 좀 더 신중하게 읽는다. 글의 구성과 문체와 전개 과정을 더욱 유심히 살핀다. 저자의 문체 특성과 스타일을 면밀히 검토한다. 저자도 미처 인식하지 못한 저자 자신만의 취향과 특성을 발견하고자 노력한다. 기술을 뛰어넘은 글쓰기는 곧 예술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예술은 특정 잣대에 의해 평가받지 않고, 평가할 수도 없다. 붓글씨를 쓰듯, 그림을 그리듯, 사진을 찍듯, 영상을 만들 듯, 나만의 개성과 취향을 가진 독특한 글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유전적 요인도 부족하고 정규 과정으로 배우지도 않았지만 앞으로도 어떤 과정을 특별하게 배울 계획은 없다(나이를 탓하는 게 비겁한 일이긴 하지만 나이 탓에 대학이나 대학원도 들어가기 어렵다. 시중에 '책 쓰기'나 '글쓰기' 강좌가 많지만 적지 않은 돈이 들어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그렇게 훌륭한 가르침은 없다고 생각한다). '작가와의 만남' 같은 강연에는 선호하는 작가라면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블로그 같은 글 쓰는 공간에 지속적으로 글을 올리며 독자들의 반응을 살핀다. 잘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책을 선택한 결과는 내가 책임진다. 요약과 발췌를 더욱 날카롭고 예리하게 다듬는다. 에세이 비슷한 산문도 지금보다 더 많이 쓴다. 질과 양 모두를 신경 쓰면서 나만의 독특한 글의 세계를 만들어나간다. 과감한 초고에 이어 끝없는 퇴고를 이어간다. 스스로 만족할 수 있을 때까지. '합평' 같은 과정도 무서워하지 않고, 기회가 된다면 도전한다. 다독을 하고 독서 일지를 쓰면서 요약과 발췌를 기본으로 한 글쓰기가 이기적 유전자에 대항할 수 있음을 보여주자. 책 읽기는 나의 연료이고 글쓰기 나의 에너지다.



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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