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나의 분신인 독서 일지

<어느 날 책을 선택했다>

by 나승철

책을 읽으면서 요약과 발췌를 기본으로 나만의 감상평을 기록하는 독서 일지가 70권을 넘었다. 인문, 사회, 정치, 경제 따위의 주제 분류로 시작한 독서 일지였지만 법, 공학, 4차 산업, 수학, 물리, 화학, 과학 교양 등으로 계속 분화하다가 지금은 멈춘 상태다. 특별한 관심 속에 관련 책을 많이 읽은 탓에 '글쓰기'라는 주제의 독서 일지는 3권째인 것처럼 몇 개의 주제는 두세 권으로 늘어났다. 읽은 책은 '독서 일지에 모인다'라는 말이 정확하다. 독서 일지가 오프라인에서의 글쓰기 기록물이라면 온라인에서는 블로그가 그 역할을 감당한다. 해당 책을 읽고 독서 일지에 기록한 내용을 블로그에 옮겨 적을 때는 서평이나 감상문이 되도록 문장으로 풀어서 쓴다. 한 권의 책을 읽은 후에의 책 내용은 이렇게 온-오프라인에서 이중의 흔적으로 남게 된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지만 항상 책을 가까이했던 건 아니다. 군대에 있을 때나 어느 시기에는 책과 담을 쌓고 산 시간도 많았다. 책은 늘 그렇게 내 관심을 기다렸고, 책에 대한 좋은 기억은 책과 멀어진 사이를 다시금 회복하게 했다. 월급을 타면 대형서점에 가서 한 달치 읽을 책을 샀다. 대략 10권 안팎을 사면 한 달 내에 다 읽거나 몇 달에 걸쳐 읽은 적도 있었다. 직장 생활을 할 때에는 도서관에 자주 다니지 않았다. 1년에 몇 번 가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가 책을 선택한 후에 본격적인 책 읽기와 함께 도서관에 정착하게 되었고, 책을 읽은 후에는 반드시 흔적을 남겨야겠다는 의지까지 저절로 생겼다. 읽었으니 써야 했다. 책을 읽었다는 사실을 나만 알고 있는 게 아쉬웠고, 글로써 흔적을 남기지 않은 탓에 시간이 지나면 책 내용이 생각나지 않아 손해를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으며, 뭔가 허전했다. 다독가들이나 서평가들의 책을 읽으면서도 글쓰기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그들만큼 쓰지는 못해도 나도 한때는 글 좀 쓴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음을 떠올렸다. 공과대학을 다녔지만, 가끔 아르바이트 명목으로 라디오에 편지를 써서 채택이 되면 시계 같은 협찬물을 받는 경우가 제법 있었다. 약간은 양념을 쳐서 라디오 DJ가 내 편지나 엽서를 읽을 수 있도록 만드는 잔재주를 부렸다. 군대에서는 선임들의 '연애편지'를 대신 써주기도 했다. 그렇게 의지만으로 시작한 서평의 처음은 초라했으나 나중은 비록 공저이지만 책 출간은 물론 강연까지 이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서가나 서재를 제대로 운영하는 사람들은 읽은 책의 내용에 대해 의문이나 재확인이 필요할 때에는 직접 서재에 꽂힌 책을 훑어보지만, 나는 제일 먼저 블로그에 기록된 해당 책의 서평을 확인하고 블로그의 서평만으로 부족할 때에는 요약과 발췌가 적힌 독서 일지를 펼쳐본다. 블로그와 독서 일지를 이중으로 검토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의문점이 풀리는 건 당연하다. 연필(샤프)로 적은 탓에 오래된 글일수록 글자가 번지거나 흐려져 독서 일지 보관 기간이 짧은 수밖에 없는 걱정을 하기도 있지만, 쓸 때의 편리함이나 좋은 느낌 때문에 혹은 굳이 독서 기록이 오랜 시간 동안 유지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그럴 때는 다시 읽으면 된다는 '여유로운' 생각)에 앞으로도 독서 일지는 계속 연필로 기록된 현 상태를 유지하며 늘어날 것이다. 독서 일지는 언제든 불러올 수 있는 '기억의 도구'인 동시에 독서의 가치를 높여줄 강력한 무기다. 과거에 읽은 책을 훑어보는 것보다 독서 일지를 읽는 것이 기억에는 훨씬 큰 도움이 된다. 가끔은 내가 쓴 글을 읽으며 감탄하기도 한다. '내가 이렇게 잘 썼다고?' 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다. 퇴고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기는 하지만. 어쨌든, 독서 일지는 독서 편력 '노고'의 결과물이며 훈장이다.


독서 일지에는 책의 제목, 저자(생존 연대), 번역자, 출판사, 출간일(번역물이면 원전 출간일과 번역물 출간일, 개정판이면 개정판 출간일도 포함), 부제, 저자 소개(직업이나 소속 및 간단한 배경), 출간된 당시의 배경지식 등은 반드시 기록한다. 읽은 책에 대한 핵심이나 외부 평가 등의 정보도 적고, 읽으면서 느꼈던 주제와 함께 그것과 관련한 잊지 말아야 할 요약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정리한다. 조금은 특별한 책에 대한 외부 및 나 자신만의 평가도 빠트리지 않는다. 책이 소설인 경우에는 등장인물 중심의 인물 배경도를 적어놓아야 하는데, 책을 기억하거나 설명할 때 등장인물 이름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책의 줄거리 부분은 독서 일지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아무리 책의 핵심과 정보를 잘 정리하여도 '부'나 '장' 중심의 줄거리를 순서대로 요약하지 않으면 책의 전체적인 내용을 기억하는 데 불편할 수 있다. 책의 목차 순서대로 요약과 발췌를 이어간다. 책을 읽다가 '명문장'이라 생각이 드는 문장은 원문 그대로 적는다. 핵심 소재나 용어가 어렵거나 별도로 기억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그 소재나 용어를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을 별도로 적어 놓기도 합니다.


독서 일지 작성은 나만의 방법으로, 어느 누구의 것도 모방하지 않았다. '읽은 책 내용의 핵심을 잘 정리해 놓고 내 생각도 적는다'라는 목적으로, 블로그에 서평을 쓸 때 적절한 도움이 되도록 쓰며 나중에라도 책의 핵심을 찾아볼 수 있도록 쓰는 게 전부. 핵심 요약이나 발췌 중에서도 특별히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장은 밑줄, 느낌표, 동그라미 등을 사용하여 강조한다. 책을 읽으면서 필요한 메모는 반드시 책의 여백에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독서 전문가들이 많다. 밑줄을 치는 등 다양한 흔적과 함께 필요한 내용을 책장 여백에 빼곡히 적거나, 여백이 모자라면 포스트잇을 사용해서라도 메모를 해야 책에 대한 기억을 오래 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나는 처음부터 이런 방식의 메모를 거부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 아닌 구매한 책이라도 나는 '깨끗하'게 읽는다. 분량이 적은 책이 아닌 조금이라도 분량이 있고 두꺼운 책이라면 다 읽고 난 다음에 그 많은 흔적과 메모를 바탕으로 서평을 쓴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많은 메모가 담긴 책을 다시 훑어보면서 서평을 쓰는 것과 독서 일지 몇 장에 정리된 내용을 보고 서평을 쓰는 것 중 어느 것이 수월한 가는 비교 불가다. 또 한 가지, 독서 일지를 작성할 때 책의 요약과는 달리 자신의 의견을 적을 때는 다른 색의 펜으로 구분해서 쓰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 또한 너무 번거로운 일이고 시간이 드는 이유로 그렇게 하지 않는다. 책의 핵심이든 내 생각이든 같은 연필로 쓴 다음에 밑줄이나 기타 기호를 사용해 책 내용과 내 생각을 구분한다.


책이 나의 동반자라면 독서 일지는 나의 분신이나 다름없다. 책의 내용과 더불어 나의 생각이 들어 있는 까닭이다. 독서 일지는 내 정신 활동의 결과물일 수도 있고 내 정신의 조각이나 파편일 수도 있다.









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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