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멀티태스킹을 버리다.

<어느 날 책을 선택했다>

by 나승철

혼란한 세상에서 중심을 잡아야 한다. 무슨 일을 하든 약간은 중심이 공중에 떠있는 상태다. 몰두하려고 노력하지만 느슨한 집중으로 이어진다. 살아 있는 감각이 아닌 다 죽어가는 감각으로 겨우 사물과 현상을 지각할 뿐이다. 뛰쳐나가려는 감성의 폭발이 없다. 한 발 앞서 가려는 성급한 시도를 잊었다. 불끈불끈 강력한 맥박 소리가 차분해졌다. 사유의 여백에 잡동사니만 가득하고 쌓인 먼지는 굳어 덩어리가 되었다. 생각은 자유롭게 상상의 공간으로 넘나들지 않는다. 병목현상처럼 뭔가에 막혀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다. 모든 문제의 원인은 무엇일까. 지금 이대로 허공에 뜬 채로는 그 무엇도 이루어낼 수 없을 것 같다. 아니, 이 상태로 무언가 된다는 게 이상할 정도다. 나만의 생각의 결정체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책을 읽고 글을 써도 핵심에 다가가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 뿐이다. 겉모습은 그럴듯하나 속은 비어있다. 주제를 선정하고도 주제의 고갱이 속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이것저것 본보기로 삼아보려 하지만 중심이 흔드리는 상태이니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모방하거나 배우기 어렵다. 이제 또 다른 선택의 시간이 다가왔다. 모든 문제의 원인은 나에게 있으니까.


오랜 시간 동안 들인 습관을 하나 버리기로 했다. 이제껏 살아온 시간 동안 몸에 밴 행동이었다. '멀티태스킹'이다. 무슨 일을 해도 가능하면 음악을 틀어놓았고, 밥을 먹을 때는 거의 TV를 보았다. 글을 쓸 때에도 음악을 들을 때가 많았고, 인터넷 검색을 할 때에는 음악 아니면 영어 라디오라도 켜놓았다. 웬만한 일에는 시간을 이중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실행하려고 노력했다. 한 가지 일보다는 두 가지 일을 하면서 효율성을 기대했다. 음악을 듣고 영어 리스닝 공부도 하면서 하는 일이라면 한 가지 일을 할 때와는 좀 더 시간을 효율적으로 쓴다는 생각이었다. 결과도 좋으리라는 막연한 기대였다. 그런 효과를 기대한 멀티태스킹을 완전히 버렸다. 한 가지 일만 집중해서 하기로 했다.


이제는 모든 행동에서 멀티태스킹을 버린다. 밥을 먹을 때는 밥만 먹고, 글을 쓸 때에는 글만 쓴다. 인터넷 검색을 해도, 설거지를 할 때에도, 하다못해 샤워를 하거나 화장실 용무를 볼 때에도 음악을 듣지 않는다. 멀티태스킹을 버린 이유는 한 가지 일에 집중하면서 그 일을 보다 충실하게 수행하고 정신을 산만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아무리 허튼 일이라도 그 일이 내게 미치는 의미를 되새긴다. 오로지 일에만 몰두하면서 일의 결과를 바라보고 완성된 상태가 주는 안정감을 감상한다. 노동의 가치 같은 고상한 개념의 발현보다는 정신과 몸이 일체가 되어 행한 수고로움을 인정하고 결과물에 만족한다. 음악이 듣고 싶을 때는 편안한 자세를 유지하면서 음악만 듣는다. 음악의 존재 자체가 더 가깝고 친근하게 다가온다. 음악의 종류와 관계없이 음악의 본질 자체에 집중하니 감상의 질이 높아진다. 음악의 탄생 배경과 구성 및 선율의 움직임이 춤을 추며 가슴속을 파고든다. 무뎌진 몸의 모든 감성이 조금씩 살아나는 듯한 느낌이 온다. 피부도 숨을 쉬는 것 같고 모든 감각이 동시에 움직인다.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만지는 과정의 시간이 예전보다 느리게 흘러간다. 사물과 환경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익숙했던 시공간이 낯설고 새롭게 느껴진다. 습관적인 행동이 아주 세밀한 정도의 차이로 달라진다. 멀티태스킹을 버리니 몸의 모든 세포가 집중하기 좋은 상태이면서 역동적으로 움직인다.


책을 보는 시간은 물론 모든 시간이 대체로 고요한 상태다. 정적 속에서 한 가지의 일에 집중하며 그 일의 본질에 매달린다. 화분의 식물이 자라는 소리가 들리거나 잎새의 미세한 떨림이 보이는 건 환청이나 환상이 아니다. 무생물인 책상이나 의자, 노트와 필기도구, 전등이나 커튼, 벽에 걸린 그림이나 책장의 책들도 그것들만의 존재 이유를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며 잠깐 또는 연속되는 시간에 몰입한다.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시간이면서 모든 시간의 정점은 책 읽기와 글쓰기 시간이다. 펄떡이는 심장 소리가 들릴 정도로 글에만 빠진다. 귓가에는 약하지만 지속적으로 들리는 '츠츠' 소리만 들린다. 멀티태스킹을 버린 대가는 조금씩 쌓여갈 것이다. 긍정적인 효과가 훨씬 우세하다. 내가 어디에 있든 시공간의 초점을 찾아 그곳에 집중한다. 한 순간 시간은 멈추고 움직이는 사물도 찰나만큼 정지한 것처럼 보인다. 늘 같은 환경이지만 시퍼렇게 살아 있는 감각이나 감성 때문에 새롭게 보인다. 숨을 들이쉴 때의 공기마저도 이동 경로를 따라가 본다.


책을 더 깊게 읽을 수 있고, 글을 더 제대로 쓸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부풀어 오른다. 많은 일에 군더더기가 사라진 느낌이다. 사물과 환경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식한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인정하고 어떻게 채울 것인지 숙고한다. 서두르지 않되 멈추지도 않는다. 만족할 만한 결과물이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한참이나 걸릴 것이다. 멀티태스킹을 버린 후에야 여유라는 것이 찾아왔다. 조급한 마음은 삼가고 섣부른 기대도 접는다.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면서 일의 결과와는 상관없이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 평안은 곧 겸허한 마음으로 계획하고 선택한 일에 몰두하게 한다. 번잡하고 불안한 삶이 제자리를 잡고 안정을 찾는다. 모든 일이 책 읽기와 글쓰기처럼 정성이 담긴 일로 서서히 바뀌어간다. 신비한 경험을 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사는 느낌이 온몸을 감싼다. 멀티태스킹을 버린 덕분이다. 내 감성이 어디까지 벼려질 것인가, 작은 기대를 품는다.

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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