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배우면 배울수록 모르는 건 더 많아지는 것처럼, 책을 많이 읽으면 그만큼 읽어야 할 책은 더 많아진다. 읽어야 할 책이 너무 많기에 아무리 책만 읽고 산다고 해도 벅찬 게 사실이다. 이 책을 읽으면 저 책이 기다리고, 저 책을 읽으면 더 많은 책이 기다린다. 책을 읽다가 본문에서 저자가 인용하거나 소개하는 책들, 또는 추천하는 책들은 대개 나에게도 읽을 만한 좋은 책일 확률이 높다. 반가운 마음에 그런 책 중에서 읽지 않은 책은 무조건 읽어야 할 도서 목록으로 저장한다. 문제는 그런 식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책 목록이 너무 많아진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책 한 권을 읽을 때마다 몇 권씩 필독서 목록으로 저장하니 뻔한 결과가 기다린다. 기대에 부풀어 저장한 목록이 책 읽는 속도를 훨씬 앞서니 목록이 하염없이 늘어난다. 가끔씩 너무 비대해진 도서 목록을 좀 줄이기도 하지만 늘 욕심이 앞서기에 늘어나는 걸 막을 수는 없다. 욕심을 부려 읽을 책 목록을 늘리기만 하고 줄일 때는 냉정하지 못한 마음으로 찔끔 줄일 뿐이다. 뭔가 대책이 필요하지만 늘 생각에 멈추고 실행에는 옮기지 못한다. 늘어나기만 하는 필독서 목록을 보고는 될 대로 돼라 하는 자포자기 상태 비슷한 상황이다. 읽지도 않을, 아니 읽지도 못할 책 목록만 대책 없이 늘어나는 주범 중에서 으뜸인 것들이 바로 '고전(古典)'과 '신간(新刊)'이다.
고전은 수백, 수천 년을 살아남은 책을 말한다. 인류 역사를 지탱해 온 시간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독서의 가치를 증명하는 책이기에 독서가에게는 고전을 맨 앞 순위로 놓을 수밖에 없다. 내가 정한 필독서 목록의 우선순위 역시 고전이다. 수천 년 전부터 20세기 초반까지의 책을 고전으로 여기며 안 읽은 책들을 목록에 올린다. 오랜 시간 동안 인류의 정신을 갈고닦게 한 고전은 독자를 매료시키지만, 막상 읽으려면 배경지식의 부족이나 시대 차이에 따른 정서나 공감대 부족은 물론 익숙하지 않은 단어나 용어 때문에 읽기 어렵다. 고전 중에는 책 자체가 두꺼운, 본문 내용이 너무 많은 책도 흔하다. 이처럼 여러 가지 이유로 고전은 교과서 등에 등장하는 덕분에 누구나 다 알고 있기는 하지만 잘 읽지 않는 책이기도 하다. 고전을 대하면 우리는 항상 '고전(苦戰)'하는('고전하는 십대의 이유 있는 고전' - 이재환, 풀빛, 2015년 출간) 이유다.
고전을 많이 읽으면 해당 책 이후에 쓰인 책들을 읽기가 쉬워진다. 해 아래 새것이 없다는 말이 있듯이, '모방'은 인간의 본능적 욕구인 동시에 습관이며 모든 배움에는 반드시 절대적으로 필요한 과정이다. 앞선 세대에 나온 책을 읽으면서 후학들은 지성을 벼린다. 중요한 내용은 세대를 이어가며 모양을 바꾼 채 전해진다. 진리와 진실의 본질은 변하지 않지만 전달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변한다.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실천은 쉽지 않다. 첨단 과학이 발달한 세상에, 최근 지식이나 기술도 배우면서 따라가기 쉽지 않은데 고전을 읽어야 한다니 말이다. 남들이 잘 읽지 않는 고전이기에 읽어놓으면 특별한 보람을 느낄 때가 많다. '준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이나 현대에 나온 수많은 좋은 책에서 고전의 원문 일부나 문장, 인물, 용어 등을 인용하는 경우가 많이 독서의 이해의 질이 높아진다. 고전 자체가 훌륭한 배경지식이 되기 때문에 어느 책을 만나든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줄어든다.
책 좀 읽었다는 사람들 앞에서도 당당해질 수 있는 건 고전을 많이 읽은 덕분이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말 중에서도 고전에서 차용한 내용이 많은 까닭이다. '지적 허세'를 부리기 좋은 게 장점이기는 하지만 가끔은 자동적으로 나오는 잘난 체에 주위 사람들이 '재수 없다'라고 생각하는 상황도 벌어진다. 고전을 선호하여 필독서 목록에서 고전의 수는 계속 늘어나니, 이래저래 고전은 나로 하여금 '고전(苦戰)'하게 만든다. 필독 도서 목록을 자꾸만 늘리게 하는 또 다른 주범은 바로 '신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