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폭풍의 언덕> 감상평: 변질된 사랑의 지옥

by 나승철

1847년에 나온 에밀리 브론테의 유일한 소설이며 작품 속 언쇼 가의 저택 이름이기도 한 ‘Wuthering Heights’는 한글로 적당히 풀어쓴다면 ‘폭풍이 몰아치는 언덕 위의 집’ 정도이겠다. 황량하고 거친 들판 가운데서 주인공 히스클리프의 광기 어리고 격정적인 사랑과 처절한 복수극이 펼쳐진다. ‘히스클리프’라는 이름은 ‘heath'(들판에 흔한 들꽃 혹은 히스 무성한 황야)와 ’cliff'(절벽)의 합성어로 볼 수 있어, 천한 신분으로 복수를 위해 극한으로 치닫는 의미를 예상케 한다. 에밀리 브론테가 살던 영국 요크셔의 하워스에는 히스가 무성한 황야가 있었다고 한다. 출간 당시 이 소설은 잔인한 폭력성과 사회 정서를 무시하는 비도덕성으로 평론가와 독자 모두에게 혹평을 받았다. 하지만, 누가 선정했는지는 모르지만 영문학 3대 비극(셰익스피어의 ‘리어 왕’과 허먼 멜빌의 ‘모비 딕’과 함께)으로 꼽힌단다. 복수의 실현을 위해서는 자식까지도 얼마든지 희생시키는 소름 돋는 광적 탐욕이 묵직하고 강렬한 여운으로 남는 작품이다.


원작을 바탕한 이 영화에서는 많은 부분이 잘려나갔다. 히스클리프의 광기는 여전하지만 자식을 이용한 더 큰 비극은 나오지 않는다. 단지 캐서린에 대한 애증과 복수만 그려질 뿐이다. 원작의 내용이 거의 그대로 나오리라는 기대를 무참히도 짓밟은 영화다. 히스클리프가 죽은 캐서린을 안으며 한 없는 슬픔을 표현하며 영화는 끝나지만, 원작에서는 히스클리프가 캐서린의 유령에 시달리며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침상에서 굳으면서 최후를 맞는다.


훨씬 복잡하고 처절한 원작을 그나마 살린 건 영상 화면이었다. 언쇼 가와 린턴 가가 위치한 눈 폭풍이 몰아치는 황량하고 거친 들과 산을 영화는 너무도 서늘하게 잘 묘사했다. 아무리 험한 자연이라도 인간들의 욕정과 증오와 분노에는 미치지 못하리라. 히스클리프의 사랑은 거대한 집착에 불과했다. 어떤 사랑이 그토록 파멸을 부르는가. 그건 사랑이 아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이 있지만, 원작에서의 히스클리프는 대를 이어서까지 복수의 칼을 휘두르며 오뉴월 서리 이상을 보여준다.


캐서린 역의 마고 로비와 히스클리프 역의 제이콥 엘로디는 원작의 주인공 역을 훌륭하게 해내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욕정과 증오와 분노를 눈빛과 몸짓을 통해 실감 나게 표현한다. 모든 장면마다 촌스럽거나 이질적인 부분은 없다. 두 시간이 훌쩍 넘도록 단 한순간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히스클리프와 캐시의 욕정의 눈이 가는 곳마다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영화에 대한 평은 극과 극인 모양이다. 원작을 훼손했느니, 욕정과 욕망만 그렸느니, (원작을 훼손했기에) 에밀리 브론테가 분노로 무덤에서 벌떡 일어난다느니 하는 평도 있으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원작의 입체적이고 풍성하며 폭포수 같은 내용을 가느다란 실개천으로 묘사한 면이 없지는 않으나, 그 천에도 용암 같은 액체가 흐르니 마음을 졸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뷔페 같은 훌륭한 만찬은 아니었지만, 어느 노포의 한 구석에서 진미를 맛본 기분이다. 극장을 나오자 차디찬 밤공기가 시원하고 상쾌하게 다가온다. 인간 본성의 바닥은 그토록 파멸적이다. 우리 모두 그런 심성을 가지고 태어났다. 다만, 자제하고 또 자제하며 살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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