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컴퓨터로 쓰는 글의 문제

<어느 날 책을 선택했다 2>

by 나승철

컴퓨터를 이용한 글쓰기에는 단점이 존재한다는 주장이 있다. 일본의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는 그의 책 '아직 오지 않은 소설가에게'(김난주 옮김, 바다출판사, 1994년 원작, 2019년 5월 출간)에서 워드프로세서로 쓴 글의 단점을 말한다. 지금은 컴퓨터로 글을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그의 말에 의문이 들 수 있지만 잘 생각해 보면 일리가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이 발동한다. 컴퓨터 자판을 사용해 글을 쓰면 글자가 너무 빨리 나타나 번뜩임을 얻을 기회가 없고, 인쇄 활자와 똑같아 '완성된 원고'라는 착각을 갖게 한다고 겐지는 지적한다. 글쓰기에 반드시 필요한 창의성 발현과 더불어 글의 수정이나 퇴고의 과정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주장이다.


나 역시 원고지를 사용하여 글을 쓴 게 언제인지 가물가물할 정도다. 독서 노트를 사용하지만 완성된 글이 아닌, 서평을 쓰기 위한 요약과 발췌를 하는 정도이니 온전한 글을 쓰는 건 컴퓨터 자판을 이용해서다. 효율성 면에서 자판으로 쓰는 방법이 월등하다는 생각에 원고지는커녕 종이에도 글을 쓰지 않는 상황이니 겐지의 말이 막연하게 들린다. 그렇지만 지금의 방법보다 더 글을 잘 쓸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말에는 귀가 솔깃하다. 과연 자판으로 치는 것보다 종이에 쓰는 게 훨씬 좋은 글이 나올까? 종이에 쓰면 정돈된 글이 아니고 속도가 더딜 뿐만 아니라 수정하기도 불편한 그런 방법이 좋은 글을 쓰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면 한번 바꿔볼까? 엄두가 나지 않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도를 해보기로 한다. 지금보다 나은 글이 나올 수만 있다면 물불 가릴 처지는 아니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 글쓰기 관련 책을 수도 없이 꾸준히 읽고 있지만 만족할 만한 성과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읽을 때는 적용 가능하다고 생각한 뛰어난 글쓰기 방법들을 감탄을 하며 인용하고 적용해 보지만 썩 훌륭한 문장을 쓰는 데는 늘 실패한다. 1943년 생인 마루야마 겐지가 당시 글을 쓸 때는 컴퓨터가 보편화되기 전이다. 자판으로 쓰는 게 익숙하지 않을 때이기도 하다. 하지만 겐지가 지적하는 자판 글쓰기 약점은 충분히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면 자판으로 글을 주로 쓰되 어떤 주제의 글은 종이에 써볼까? 두 가지 방법의 성과를 비교할 수 있도록 종이에 쓰는 글도 어느 정도의 기간을 두고 꾸준히 써야 한다. 일단 해보자.


인공지능이 글을 잘 쓰는 시대다. 이제 작가의 가장 큰 경쟁 상대는 인공지능이 틀림없다. 아무리 좋은 글이라도 인공지능이 쓴 것보다 사람이 쓴 글을 더 선호하는 문화가 우리들에게 찾아오기를 기대하지만 아직 단정할 수 없다. 사람과 인공지능이 쓴 글을 구별할 수 있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면 그 경계가 모호할지도 모른다. 인지신경학자인 매리언 울프는 읽기는 뇌의 배선을 바꾸고 인간 사고의 본질에 변화를 가져왔으며, 문해력은 호모 사피엔스의 가장 중요한 후천적 성취 가운데 하나라고 말한다. 불과 6,000년 만에 인간만이 유일한 성과를 낸 것인데, 쓰기 역시 읽기와 함께 인류 역사와 문화를 만들고 보존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방법이다. 읽기와 쓰기를 인공지능에 맡기거나 의지한다면 그것들로 인해 발전한 인간의 능력은 쇠퇴하고 말 것인가? 컴퓨터 자판을 이용한 쓰기와 종이에 손으로 직접 쓰기 그 둘을 비교하면서 쓰기의 향상은 물론 먼 미래까지 생각해 본다.



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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