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도피처가 된 독서

<어느 날 책을 선택했다 2>

by 나승철

언제부터인가 책 읽기는 나의 도피처, 안식처가 되었다. 책을 선택한 이후 줄곧 책으로 인해 마음의 위안과 안정을 얻었지만 코로나 19 영향으로 강연이 끊기고 폭발적인 동영상 시청 인기와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독서에 대한 대중의 전반적인 관심이 줄어들면서 독서 관련 일이 줄어들자 책은 나만의 완벽한 은신처로 변했다. 겉으로는 노숙자가 돼도 괜찮다는 허세를 부렸지만 책만 제대로 많이 읽으면 먹고사는 데 지장은 없을 줄 알았다. 책 많이 읽고 서평 많이 쓴 '국가대표'를 뽑으면 그 안에 들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설령 '독서가 국대'가 되면 뭐 하나? 세상은 책 읽는 사람들에게 별 관심이 없다. 연예인 같은 부류의 유명 인사들이 책에 대해 논하는 것만 알아준다. 책을 읽은 덕분에 큰돈을 벌거나 명문 대학에 입학하는 등 엄청난 효과를 보았다는 말에만 사람들은 열광한다. 특이할 게 없는 결과물을 내는 보통 사람이 책 많이 읽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책은 많이 읽지 않아도 글을 맛깔나게 잘 쓰는 사람들은 그나마 인정을 받고 어느 정도의 수입을 얻는다. 책을 읽은 만큼의 글쓰기 실력이 늘지 않는 나의 필력은 참 아쉬운 점이다. 생각은 많고 상상은 넘치는데 글로 표현하면 늘 그저 그런 글이 나온다. 머릿속에서는 그럴싸한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글로 옮기면 처참한 수준으로 전락한다. 그럴 때마다 한풀 꺾인 채 찾는 곳은 다시 책이다. 좋은 글을 읽을 때만이 정신은 맑고 개운하다. 나만의 동굴 속으로 더 깊이깊이 들어가는 모양새다. 글을 읽고 쓰는 데 있어 고립은 좋지만, 자립이 없는 고립은 비참하다.


선택을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프들이 유명세를 타는 상황을 보면 왠지 마음이 뒤틀린다. 웬만한 세프들은 시대의 유행을 타고 주류 인사들이 되어 부와 명예를 거머쥔다. 다양한 '요리 경연대회'처럼 '독서 경연대회'라도 있으면 나갈 수 있을 텐데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 유명 셰프들을 보고 있으면 시기와 질투가 솟아난다.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면 오를 수 있는 위치에 선 사람들인데, 독서 분야에는 왜 그런 사람을 발굴할 만한 토양이 없는 걸까?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고 하지만 그저 말뿐이다. 책을 읽지 않아도 사는 데 별 지장이 없는 시대다. 독서 표어처럼 말만 거창할 뿐 책 읽는 사람들의 수는 급격히 줄고 있고 읽는 사람들의 독서량은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다. 독서에도 극단적 양극화가 나타난다. 책을 소개하는 인기 동영상에도 온갖 자극적인 문구가 넘쳐난다. '어그로'에 충실한 내용과 문구는 분명 책의 가치를 설명하기는 하지만 긴 시간 동안 인내를 가지고 책을 읽는 행위보다는 그런 동영상 시청이 훨씬 '가성비'가 뛰어남을 은근히 과시하는 행태를 보인다. 책을 읽지 않아도 짧은 동영상만 보면 마치 책을 읽은 듯한 느낌을 준다. 몇 시간 혹은 수십 시간이 드는 일을 몇 분, 몇십 분으로 해결할 수 있다니!


여성은 자신만의 '방'이 필요하고, 남성은 자신만의 '굴'이 필요하다. 부모와 자식은 물론 부부 사이에도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게 좋다. 독립적인 인격체만이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고 자신의 삶을 개척할 수 있다. 책 읽기는 방과 굴에서 고독을 마주하며 벌이는 글과의 전투다. 단어와 문장을 이해하지 못하면 전투에서 진다. 다 읽은 후에 서평으로 치열했던 전투를 완성하며 승리의 쾌감을 누린다. 가끔은 굴에서 나와 세상을 거닐지만 이내 굴을 찾는다. 내게 굴은 곧 안식처이고 도피처이며 은신처다. 언제나 적당한 타협을 하며 굴과 세상 양 사이에 균형을 잡을 수 있을까? 아직은 요원해 보인다. 부족한 게 너무 많다. 갈 길이 멀다. 내 인생의 길처럼 나만의 독특한 책과 글의 세계를 창조하려 노력한다. 인공지능의 글을 보면서 두려움과 공포를 견디며 인간이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다시 굴로 들어간다.


수, 일 연재
이전 21화51. 그럼에도 불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