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용한 ADHD입니다.

A 아니다, D 당신도 H 할 수 있다D |교사를 내려놓고 쓰는 아당로그

by 아당로그

오랜만에 글을 써보는 듯하다.

그동안 아이를 키우면서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왜 엄마들이 미혼일 때를 전생, 출산 후의 세계를 현생으로 표현하는지를 이제야 알게 됐을 정도.

한 생명을 낳고 키운다는 것은 나라는 존재를 내려놓고 새로 고침 하는 일이었다.


정확하게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새롭게 변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주부들이 남이 해주는 음식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남편은 1년간의 '육아 퇴직' 후 함께였던 동기 생활을 마치고 다시 사회로 돌아갔다.

현관문이 닫히고, 나의 진정한 육아가 시작되었다.


독박육아라는 거창한 말보다 더 무거웠던 건, 온종일 아이와 단둘이 마주하며 '나'라는 사람의 밑바닥을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밤낮없이 일하는 남편을 대신해서 아기를 돌보는 것은 온전히 나의 몫이 되었다.


나름대로 이유식은 모두 만들어먹였다.



그러다가 나에게 이상한 일이 생겼다.

이상 신호는 엉뚱한 곳에서 터져 나왔다.

일주일에 한 번 육아를 도와주러 오시는 친정엄마와의 관계였다.

엄마가 나에게 던진 가장 아픈 말은 나의 '무기력함'과 '게으름'에 대한 질책이었다.


아이를 돌보는데 왜 이토록 몸이 천근만근일까.

남들 다 하는 육아인데, 왜 나는 집안일 하나를 끝내지 못하고 멍하니 앉아만 있을까.


나는 유능한 교사는 못되었지만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게으른 교사도 아니었다.

항상 치열하게 살아왔고 고민했다.


나에게 "너는 게으른 엄마야"라는 말이 가시처럼 가슴에 박혔다.

그때는 몰랐다.

이것이 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내 뇌가 보내는 소리 없는 비명이었다는 것을.


단순히 피곤해서가 아니었다.

머릿속엔 수만 가지 할 일이 떠다니는데, 정작 손발은 어디로 움직여야 할지 몰라 고장 난 기계처럼 멈춰버리는 순간들이 계속되었다.


그 막막함의 정체가 '조용한 ADHD'였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는 언젠가였다.

친정엄마가 아이를 봐주러 오신 날.

일주일 내내 혼자 밤낮으로 사투를 벌이던 나에게 엄마의 방문은 가뭄 속 단비였다.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외출한 몇 시간, 나는 침대와 한 몸이 되었다.

미혼 시절에는 당연했던, 하지만 지금은 꿈속에서나 가능한 '일요일의 늦잠' 같은 단잠에 빠져들었다.


현관문 소리가 들렸다.

이제 다시 '엄마'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다시 손발을 기민하게 움직여 아이를 씻기고, 입히고, 먹여야 한다.


머리로는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 이상하게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잠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이대로 침대 속에 파묻혀 영영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때, 거실에서 나를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는 아기 좀 봐야지. 대체 언제까지 누워만 있을 거니."

사실 엄마의 목소리엔 이미 묵직한 짜증과 피로가 섞여 있었다.


정리안 된 방보다 정리되지 않은 머릿속이 더 힘든 법


지난 몇 달간, 엄마가 오실 때마다 내가 보여준 모습은 늘 비슷했다.

산더미처럼 쌓인 설거지거리, 정돈되지 않은 거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서 넋이 나간 채 무기력하게 앉아 있거나 누워 있는 딸의 모습.


엄마는 그동안 '일주일에 단 하루 있는 날인데, 피곤해서 그렇겠지' 하며 묵묵히 집안일을 돕고 아이를 봐주셨지만, 딸의 이해할 수 없는 느릿함과 무기력은 엄마의 인내심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었다.


나도 안다.

이제 내가 나서야 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하지만 내 몸이 내 마음 같지 않았다.


그날, 결국 쌓여온 엄마의 불만과 나의 날 선 방어가 크게 충돌했다.

엄마는 "어떻게 애 엄마가 이렇게 게으를 수 있냐"며 매몰차게 쏘아붙였고,

나는 "엄마가 내 힘듦을 어떻게 아냐"며 야속함에 눈물을 쏟았다.


한바탕 폭풍이 지나가고, 빨갛게 부어오른 눈으로 엄마와 마주 앉았을 때였다.

한참을 내 얼굴을 살피던 엄마가 전과는 다른, 아주 낮고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떼셨다.


"기분 나쁘게 듣지 마라. 내가 옆에서 한참 지켜보니까... 이건 네가 게으른 게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아서.. 병원 한번 가보는 게 어떻겠니?"


그날 엄마의 그 한마디가, 내가 평생을 걸어온 '정답의 세계'에서 벗어나 진짜 나를 만나러 가는 첫 번째 안내장이 될 줄은 그때의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