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급 교사였던 내가, 정신과에 앉아있었다.

괜찮아. 문제없어. 아니, 사실은 울고 싶어.

by 아당로그

“여보세요?

초진인데 오늘 진료 볼 수 있나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한참을 망설이다가,

나는 정신건강의학과에 겨우 전화를 걸었다.


하루에 초진 환자는 두 명만 받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내일 오전에 다시 접수해 달라고 했다.


텅 빈 커피잔 마저 서글퍼질 때가 있다. 나 같아서.


나 같은 사람이 또 있구나.

이게 뭐라고, 내일 오전까지 기다려야 한다니.

실소가 나왔다.


사실 그 전날까지도 나는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퇴근한 남편에게 아무렇지 않은 척 툭 던졌던 질문 역시 그 도망의 일부였다.


“여보, 내가 좀 우울해 보이거나 그래?”

“아니. 별로 그래 보이진 않는데?

일이 많아 보이긴 해.”


그래, 다른 과이긴 하지만 당신도 의사잖아.

나는 한 줄기 가느다란 희망을 발견한 사람처럼 다른 주제로 넘어가 신이 나서 재잘거렸다.


전문가인 남편이 괜찮다니, 정말 괜찮은 거라고.

엄마가 예민했던 거라고.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세뇌했다.


하지만 그날 밤, 기어코 사달이 났다.

신나게 재잘거리던 에너지는 자정이 넘자마자 거짓말처럼 꺼져버렸다.

아이가 깼을 때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버거웠다.

침대에 누운 채 괴로워하는 나를, 내가 바라보고 있었다.


머릿속에서는 ‘일어나야지’라는 명령이 비명처럼 울리는데 손끝 하나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몸이 물에 담긴 솜처럼,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 순간, 남편의 “괜찮다”는 진단보다

내 몸이 내뱉는 “안 괜찮다”는 비명이 더 거대해졌다.


다음 날 오전,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것을 직감하며 병원 문을 밀고 들어섰다.


처음 방문한 정신건강의학과 대기실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감기에 걸려 찾았던 내과 대기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콜록거리는 기침 소리만 없을 뿐이었다.

나의 초조함을 담요로 감출 수 있을까


나는 대기실에 앉아 다른 사람들을 훔쳐보고 있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들인 것처럼,

이곳에 온 이유를 제멋대로 추측해 보았다.


나처럼 보이는 아기 엄마에게는 산후우울증을,

직장인으로 보이는 중년 남성에게는

직장 스트레스로 인한 공황장애 같은 이름을 붙여주며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유치한 관찰은 사실,

끝까지 ‘나는 너희와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던

비겁한 발버둥이 아니었을까.


그 자리에 앉기까지는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엄마의 입에서 “병원에 가보라”는 말이 나왔던 그날,

그 한마디는 그 어떤 비난보다 나를 수치스럽게 했다.


움직일 수 있는 걸까. 움직일 없는 걸까.


수능 평균 1등급이었고, 대학에서는 항상 성적 장학생으로 지냈으며, 임용도 한 번에 붙었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스스로를

‘정신적으로 문제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 정도면 나름의 ‘정신적 유능함’을 증명하며 살아온 사람이라고 나는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그날의 말은

그동안의 나—아니, 내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비참함을 감추기 위해 침착함이라는

가면을 급히 눌러썼다.

울긋불긋해진 얼굴로,

아무런 내상도 입지 않은 사람처럼 말했다.


“다른 엄마들도 다 쉬고 싶어 해.

나만 유별난 게 아니라 다들 비슷할걸?”


결코 인정할 수 없었다.

아니, 인정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직장 생활은 올해 실적이 저조하면

내년에 만회하면 그만이다.

교직에 있을 때의 나도 그랬다.


하지만 육아는 차원이 달랐다.

한 생명을 키운다는 것은 흐르는 강물과 같아서,

결코 같은 시간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아이의 ‘오늘’은 지나가면 끝이다.

희망을 내년으로 유예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 숭고한 일을 수행하는 주체인 내가 만약 ‘정신적으로 문제 있는 사람’이라면?

내가 아이에게 돌이킬 수 없는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건 아닐까.


공포가 밀려왔다.

아니다.

아니어야만 한다.

나는 건강한 사람이다.

단지 조금, 많이 피곤했을 뿐이다.


대기실 전광판에 내 이름이 떴다.

나는 여전히 ‘피곤함’이라는 가면을 꽉 쥔 채,

무거운 진료실 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