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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ma Apr 20. 2023

[엄마, 안녕] 1. 명이나물

'아침밥을 먹어야지.'

아침 8시가 넘어서자 어김없이 배가 고파진다.

오랜만에 일정이 없어서 침대에 누워 늑장을 부리고 싶었지만 배가 고파서 일어났다.

남들은 아침에 밥 생각이 없다는데, 오랜 세월 아침마다 꼬박꼬박 밥을 넣어줬더니, 내 위는 시간이 지났다고 밥을 달라고 아우성이다.


밥솥을 열어 확인하지 않아도 밥솥이 비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도 굳이 밥솥을 열어 확인한다.

냉장고도 열어본다. 얼마 전부터 밥을 소분해서 냉장고에 넣어뒀었다. 그러나 역시 냉장고에도 밥은 없었다.

실은 냉장고를 열어보지 않아도 밥이 없는 건 알고 있었다.

그냥 밥솥을 열어보고, 냉장고를 열어 본 것뿐이었다. 그래야 하는 것처럼.

밥을 언제 했었는지도 까마득하다.

대신 냉장고에는 오래전에 씻어 둔 쌀이 있었다.

엄마는 늘 쌀을 씻어서 불려놓고는 했었다. 진밥을 좋아했던 엄마는 당뇨 때문에 현미를 섞어 먹어야 했는데, 현미가 깔깔해서 잘 안 넘어간다고 쌀을 불려서 밥을 지었었다.

나도 쌀을 씻어 불려놓았었다.

근데 너무 오래됐나? 쌀에서 쉰내가 났다.

버릴까? 물로 헹구고 밥을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물로 두어 번 더 헹구고 쌀을 밥솥에 안쳤다.



'뭘 해 먹지?'



요즘 내 가장 큰 고민이다.

이 나이 되도록 음식을 해야 할 일이 별로 없었다.

밥을 어떻게 하지?

뭘 해 먹지?

이런 고민은 늘 엄마의 몫이었다.

난 그저 엄마가 고민할 때 뭐가 먹고 싶다고 의견을 내거나, 엄마가 먹고 싶어 할 만한 메뉴를 말하면 되었다.

그럼 엄마는 새로 장을 보고, 새 밥을 지어서 밥상을 차려주셨었다.


냉장고 안에는 훈제삼겹살과 훈제오리가 있었다.

한동안 아침 일찍 집을 나서느라 사과나 떡, 빵 등으로 허기를 채우고 나갔었다. 아침마다 밥을 먹었던 난, 그렇게 사과나 떡으로 때우는 것이 밥으로 여겨지지 않았고, 그래서인지 기운도 없는 것 같았다.

목살을 구워 먹고 싶었다. 그런데 혼자서 목살을 구워 먹자니 너무 어색했다.

고기는 늘 엄마와 같이 구워 먹었었다.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엄마는 나를 임신했을 때, 처음 돼지고기를 먹었다고 했다. 이후 돼지고기를 조금씩 먹기는 했지만, 냄새에 민감해서 조금이라도 역한 냄새가 나면 돼지고기는 한 점도 먹지 못했다. 엄마는 비계가 있는 삼겹살을 좋아했다. 하지만 비계를 좋아하지 않는 나 때문에 삼겹살 대신 늘 목살을 샀다. 그럼 나는 목살을 구워 비계가 있는 부위를 엄마의 접시에 놓아줬고 엄마는  '비계가 맛있는 거야.'라고 하면서 맛있게 먹었었다.

목살은 못 사고 훈제삼겹살과 훈제오리를 샀다. 둘 중에 하나만 사도 충분했을 테지만, 고기가 너무 먹고 싶어서 두 개를 다 사버렸다. 하지만, 그것들을 사놓고도 한동안 먹을 시간은 없었다.

유통기한이 더 짧게 남은 훈제삼겹살을 먹기로 했다.

훈제삼겹살을 꺼내 프라이팬에 데운다. 

초벌이 된 제품으로 에어프라이기나 프라이팬에 조리해서 먹으면 되는 훈제 삼겹살은, 생목살이나 생삼겹살처럼 구워 먹는다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아니 실은 구워 먹는다는 표현을 써주고 싶지 않았다. 엄마와 같이 구워 먹던 목살의 가치를 지켜주고 싶었다. 어쨌든 훈제삼겹살을 데우니, 엄마가 작년에 담갔던 명이나물에 싸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이나물 장아찌를 꺼내고, 양파 장아찌도 꺼냈다. 마침 밥솥에서 밥이 다 됐다는 알림 소리가 들렸다. 핸드폰의 진동도 들렸다.


밥을 푼다.

갓 지은 밥 냄새는 그 자체로 군침을 돌게 했다. 이전에는 몰랐던 일이다. 아니, 관심을 두지 않았던 일이다. 아침마다 엄마가 해주는 새 밥은 늘 당연했었다. 그래서 밥 냄새를 맡아도 새로울 건 없었다. 하지만 엄마는 밥 냄새에 민감했다. 엄마는 새로 산 쌀로 처음 밥을 할 때, 밥 냄새로 그 쌀의 좋고 나쁨을 이야기했고, 난 그런 엄마가 너무 예민하다고 생각했었다. 난 오로지 엄마가 내 밥을 너무 많이 풀까 걱정이었고, 쪼끔만 푸라고 잔소리만 해댔었다.



밥 한 술을 입에 넣는다.

따뜻하고 부드럽다.

......

새삼스럽게 따뜻한 밥을 오래오래 씹는다.

부드럽고 달다.



훈제삼겹살에 명이나물을 싸서 먹었다.

핸드폰을 확인했다.

작년에 명이나물을 시켰던 곳에서 올해도 명이나물을 판매한다는 광고 문자였다.


'하필 명이나물 광고문자라니.'


명이나물 장아찌가 맛있다고 한마디 했더니, 엄마는 자기가 만들어주겠다며 명이나물을 시켜달라고 했었다. 엄마는 요리하는 것에 자부심이 있는 분이었고, 자신의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면 좋아했었다. 나이가 들어 일을 못하게 되면서 엄마는 요리하는 것에 더 정성을 기울였다. 나는 명이나물 2kg을 시켜줬다. 2kg이지만 명이나물은 중간 크기의 박스를 가득 채우는 양이었다. 엄마는 명이나물을 하나하나 손질하고 씻었다. 그것은 단순 작업이었지만 오랜 시간 고개를 숙이고 등을 구부리고 손에 흙을 묻히는 고된 일이었다. 씻어 놓은 명이나물에 식초를 넣어서 끓인 간장을 부었다. 그리고 며칠 후 명이나물의 간장을 덜어내어 다시 끓이고 명이나물에 다시 부었다. 그렇게 3~4번은 한 거 같았다. 명이나물 자체가 억셌지만, 명이나물 장아찌는 맛있었다.

'맛있네.'

엄마한테 말했다. 엄마는 내 반응에 기분이 좋았던지, 정작 자신은 좋아하지 않고 먹지도 않을 거면서  2kg을 더 시켜 달라고 했다. 난 그만해도 되겠다고 말렸지만, 오빠네도 주고 언니네도 주고 두고두고 먹으면 된다고, 목살 구워 먹을 때 명이나물 싸서 먹는 거라고, 엄마가 맛있게 해 주겠다고 하면서 더 시켜달라고 나를 꼬셨었다. 난 엄마가 더 힘들게 일하는 것도 싫고 너무 많은 양이 될 것 같아서 부담스러웠지만 못 이기는 척 명이나물 2kg을 더 시켜줬고, 엄마는 같은 작업을 반복했었다. 한동안 집에서는 간장 끓인 냄새가 가득했었다.


너무 많은 양에 질렸을까.

난 한동안 명이나물을 먹지 않았다. 언니나 오빠한테도 명이나물 가져가겠냐고 물으면 지난번에 가져간 것이 아직 있다고 하면서 더 이상 가져가지 않았었다. 그래서 명이나물 장아찌는 천덕꾸러기처럼 냉장고에서 공간만 차지하고 있었다.

엄마가 고생해서 만든 것인데, 먹지 않아서 엄마는 내심 서운했을 것이다.


언제 다 먹나 싶던 명이나물 장아찌는 통에 반 정도가 남았다.

엄마가 이 문자를 봤다면, 많은 거 같아도 다 먹었다고, 다시 맛있게 해 주겠다며 명이나물을 시켜달라고 나를 졸랐을 것이었다. 아마도 이번에는 한 번에 4kg을 시켜달라고 했겠지.

그럼 난  너무 많다고 잔소리를 하다가 못 이기는 척 시켜줬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맛있다고 짧게 말하겠지.

엄마는 내 무성의한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가 맛있게 먹는 걸 보며 즐거워했겠지.


명이나물 장아찌가 반 통 밖에 안 남았다. 

시간이 흘러 명이나물을 올 해도 판다고 연락은 왔는데,

작년 봄, 내 곁에 있엄마가 없다.

엄마가 없다.

엄마가 보고 싶다.


명이나물이 유난히 더 맛있다.

훈제삼겹살과 먹는 게 아까울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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