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ma May 04. 2023

[엄마, 안녕] 5. 잘 지냈어?

"잘 지냈어?"

"...... 어, 잘 지냈어."


오랜만에 본 K가 안부를 물었다. 난 잠시 생각하다가 잘 지냈다고 대답했다. 


잘 지내는 건 어떤 건가?


난 요즘 집중할 일도 있고, 밥도 지어먹고 다니고, 이제는 TV도 볼 수 있고, 사람들 만나면 아무런 일도 없었던 듯 수다 떨면서 크게 웃는다.

그런데 즉각적으로 대답을 하지 못한 것은 왜일까? 

한편으로는  '잘 지내도 되나?'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K는 나보다 12살 많은 언니다. 하지만 친구처럼 편하게 대해줘서 간혹 존칭을 빼먹었고, K도 그것을 용인해 줬었다. K는 작년 겨울에도  오랜만에 나를 보고 "잘 지냈어?"라고 안부인사를 했었다. 의례적인 인사에 나는 대답을 못하고 K 앞에서 아이처럼 울어버리고 말았었다.

"우리 엄마가 암이래요."


그러니, 이번의 "잘 지냈어?"라는 안부 인사에 시간 차를 두고 대답했지만, 대답을 한 것을 보니 잘 지내는 모양이다. 난.


그런데 아직, 집에 있는 날은 뭔가를 해야 할 거 같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어쩔 줄 모르겠다. 그래서 계속해서 할 일을 찾는다.

가장 만만한 것은 청소였다.

아주 오래전, 마음이 힘들 때도 청소를 했었다. 락스를 물에 풀어 싱크대를 닦고, 화장실을 청소하고 그동안 방치했던 것들을 끄집어내서 정리하고 먼지를 닦아 냈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내가 제일 먼저 한 것은 청소였다. 서랍을 뒤지고, 처박혀 있던 앨범들을 다시 끄집어내서 정리하고, 그릇장을 정리하고, 싱크대도 정리하고, 매일 청소기를 돌리고 묵었던 먼지들을 닦아냈었다.


오늘도 하루가 시작됐는데, 일정도 없었고, 급하게 처리할 일도 없었고, TV도 재미가 없었다. 나를 부르는 사람도 없었다. 읽다가 만 책이 내 앞에 있지만, 왠지 집에서 여유롭게 책을 읽는 건 아직 어려웠다. 그래서 이번에도 난 청소를 했다. 서랍장을 닦고 이불을 털어내고 책장을 정리하고 청소기를 돌렸다. 청소를 시작할 때, 분명 눈에 보이는 먼지는 없었는데 청소기 먼지통에 노란 먼지가 쌓였다. 해마다 5월이면 송홧가루가 날려서 먼지가 노랗게 되는데, 어김없이 송홧가루가 날리는 계절이 되었나 보다. 하긴 간밤에는 개구리소리도 들렸었지.

시간은 참 무심히 잘도 흐르는구나.

걸레질을 하고 걸레를 다 빨아서 널었다. 






"깨끗한데 뭘 또 힘들게 청소를 해?"

청소를 시작하면 엄마는 그렇게 말했었다. 그러나 청소를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었고, 내가 수고스럽겠다는 표현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이렇게 청소해야지. 딸내미가 청소해 주니 좋지?"

"그럼, 좋지. ㅇㅇ이 아니었으면 엄마는 먼지구더기에서 살았을 거야."


엄마는 허리가 아파서 청소기 돌리는 것도 힘들어했고, 걸레질도 어려워서 청소는 내가 전담을 했었다. 그게 엄마 마음을 불편하게 했는지 내가 청소를 시작하면 뭐라도 도움이 되려고 손걸레를 가지고 베란다를 닦거나 이불을 털기도 했었다. 그럼 또, 내 마음이 불편해져서 청소는 내가 하겠다고 그냥 가만있으라고 했었다. 그러나 가만있으란다고 가만히 있는 엄마는 아니어서 엄마의 영역인 주방으로 가서 설거지를 하거나 주방 정리를 하곤 했었다.


"여깄네, 엄마가 며칠 전에 찾던 거."

난 목소리를 키워서 의기양양하게 엄마한테 말했었다.

"어머! 찾았어? 그게 어디 있었어?"

"침대 커버 밑에."

"거기도 엄마가 찾아봤었는데. 그렇게 찾아도 없더니."

"그걸 내가 찾았네. 나 없으면 어떻게 할 뻔했어?"

"그러니까, 우리 ㅇㅇ이 최고다."

"말로만?"

"그럼 뭐? 돈 줄까?"

"됐어."

"엄마 돈 있어."

"누가 엄마 돈 없대? 맛있는 거나 해줘."

"뭐 해줄까? 호박전?"

"호박전 좋지~"

엄마는 잘 둔다고 하면서 침대 매트리스 밑이나 커버 밑에 메모지나 명함 같은 것을 넣어두고는, 꼭 필요할 때는 찾지 못해서 답답해했었다. 그것을 내가 청소하다가 찾게 되면 엄마한테 여지없이 생색을 내곤 했었다. 

 


"바닥이 매끈매끈 하네."

엄마는 내가 청소를 하면 그렇게 말해줬었다. 그럼 난 당연한 일을 했음에도 어깨가 으쓱해서,

"엄마, 과일."

"이미 깎아 놨지요."

"청소하는데 2시간이 넘게 걸렸어. 너무 힘들어."

"힘들지, 쉬면서 과일 먹어."

어리광을 부렸고 엄마는 내 어리광을 받아줬었다.

엄마는 아무래도 사람을 잘 부렸던 거 같다. 내가 한 소소하고 작은 일에도 칭찬을 아낌없이 해서 인정받는 느낌을 들게 하고 기분 좋게 일하게 했으니 말이다.

우리 엄마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것을 이미 삶의 경험에서 터득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ㅇㅇ이 청소하면 엄마가 또 어질러 놓고."

그렇기는 했다. 엄마가 집에 없는 날 청소를 하면, 엄마는 외출에서 돌아오는 길에 김치거리나 쪽파, 나물 거리를 사 오곤 했었다. 엄마는 일거리를 미루지 못하는 성격이라 사 온 김치거리를, 나물을 바로 다듬었었다. 엄마는 되도록 어지럽히지 않으려고 노력을 했지만 마음대로 잘 되지 않았고, 거실 바닥에는 흙이 밟혀 다시 걸레질을 해야 했었다. 내가 걸레질을 하는 것을 보며 미안한  엄마는 자기가 하겠다고 말은 했지만, 이미 다듬은 재료를 씻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은 새로운 나물이나 겉절이가 밥상에 올라왔었다. 


봄이 시작되었을 때, 엄마의 겉절이가 너무 먹고 싶었다. 

엄마는 묵은 김치 대신 생김치를 좋아해서 겨울에도 배추를 사다가 생김치를 담아 먹기도 했고, 봄이 오면 해남배추로 겉절이를 하고 봄돔, 머위 등 봄 채소를 무치고, 냉이, 쑥 등으로 된장국도 끓여 주셨었다.

난 겉절이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느새 엄마가 철마다 해주는 음식에 길들여졌었나 보다. 올봄, 엄마의 겉절이가 너무도 먹고 싶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얼마 후, 청소를 하다가

'왜 이렇게 헛헛하지?'

하는 생각을 했었다.


내 곁에서 나를 조건 없이 사랑해 주던 존재가 사라졌구나.

나 혼자 남았구나.


나에게 엄마의 죽음은 그것이었나 보다. 

가슴에 구멍하나 생긴 듯한 느낌을 이제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엄마와 같이 살던 집은 엄마의 기억이 곳곳에 묻어 있어서 좋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다. 그래서 집에 있으면 더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난 그럭저럭 잘 지내는 거 같다.

누구나 가슴에 구멍 하나는 갖고 사는 거니까.


청소가 끝났는데도 아직 한 낮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 안녕] 4. 편백나무침대가 딱딱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