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가 운전하는 차를 타면 항상 약속이라도 한 듯 블루투스를 연결하여 노래를 튼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다. 그냥 노래를 틀고 싶은 사람이 연결하고, 자기 플레이리스트에 있는 노래를 트는거다. 한 때는 오빠가 즐겨듣는 팟캐스트를 틀기도 했었는데, 내가 재미 없다고 노래나 틀으라고 한 뒤로는 노래만 듣는다.
나는 요즘 아이돌 노래만 주구장창 듣는다. 좋아하는 남자 아이돌, 요즘 핫하다는 남자 아이돌, 새로나온 인기 그룹의 신곡, 모두가 따라 부를만큼 유명한 아이돌의 스테디곡. 그런걸 틀어놓고 흔들흔들 리듬을 타고 따라 부르고 랩핑을 한다.
꼭 아이돌 노래만 듣는건...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냥 그 노래들이 나를 생각 없게 만들어주고, 덜 가라앉게 만들어주고, 잠 깨게 만들어줘서 그렇다. 그런 노래를 플레이스트 가득 담아둬야 출퇴근길에 잠도 안오고 덜 우울하게 이동할 수 있다.
오빠는 별의 별 노래를 다 듣는다. 뭐라고 하는건지 알 수 없는 힙합 음악부터, 특이한 알앤비, 팝송, 2000년대 인디밴드의 음악까지... 오빠가 틀어주는 노래를 듣다보면, 나는 계속 이건 뭐야? 이 사람은 누구야? 이거 유명한 노래야? 이렇게 질문만 자꾸 하게 된다.
그러면 오빠는 이거 몰라? 얘 상 받았잖아. 이것도 몰라? 너 아는게 뭐야? 라며 내 음악 지식을 깎아내린다. 그리고 내가 노래를 틀 때도 수시로 핀잔을 준다. 아이돌 노래 그만 들어. 플레이리스트가 왜이래? 너 취향이 이게 뭐야? 식견을 넓혀. 라면서.
물론 아이돌 노래가 음악적 수준이 떨어진다는 얘기는 아니다. 오빠가 듣는 그 어떤 음악들보다 많은 자원, 돈, 인력이 투입된 음악들일테니. 그리고 실제로 듣기 좋은 음악들이 대다수다. 어떤 의미에서든 들으면 기분이 좋고, 자꾸만 듣고 싶고.
그런데 오빠는 완전 홍대병 말기처럼 인기 없는 음악들을 찾아 듣고,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듣던 예전의 나와 다른 지금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음악을 틀면 다른건 안듣냐며, 진짜 이게 다냐며 의아해 한다. 음악 한다는 애가 이런것만 들으면 어떡하냐고 하는데...
그 때 내가 오빠한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질투 나서 그래! 라고. 좋은 음악, 신선한 음악, 듣기만 해도 감동이 쌓이는 음악을 들으면 질투가 나서 듣기 싫다고 그랬다. 나도 좋은 음악 하고 싶은데 못하고 있는게 짜증나서 그 음악들을 못듣겠다고.
그때는 그냥 와하하 웃어넘겼는데, 다시금 생각해보니 진짜다. 진짜 질투가 나서 못듣겠다. 지금 나는 쉐어하우스 생활을 한지 10개월차다.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살다보니 기타를 못치는건 물론이고, 씻으면서 노래를 부를 수도 없다. 내 노래도 못만들고, 하물며 남의 노래도 못 따라한다.
삶이 너무 팍팍하다고 느껴진다. 좋아하는 음악을 부를 수 없는것, 기타 치며 내 음악을 만들 수 없는것. 그 사실을 떠올리면 너무 슬퍼서 막 가슴이 답답해지는데, 좋은 음악을 들으면 그 사실이 더욱 뼈저리게 와닿아서 좋은 음악을 못듣겠다.
물론 지금 내가 자유롭게 기타 치고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해서 진짜 좋은 음악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직 나는 부족하고, 부족한 그 상황이 오랫동안 지속돼서 진짜 모자른 사람이다.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따라 시늉하는 사람일 뿐이다.
근데 나는 성격이 좀 이상해서, 내가 하기만 하면 진짜 잘할거라고 믿는다. 다시 기타를 잡고 음악할 기회를 준다면 어떤 누구보다 좋은 음악을 만들 자신이 있다. 그래서 더 질투가 나는 것이다. 지금 자유롭게 음악하고 아름답게 노래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시기하는 것이다.
이사까지 두 달이 남았다. 쉐어하우스 계약기간 1년. 그 중 두달만이 남아 있고, 이 계약기간이 끝나면 나는 드디어 나 혼자만의 공간을 가지고 자취를 시작하게 된다. 어떤 침대를 살지, 어떻게 방을 꾸밀지는 아무 계획이 없다. 그저, 그 방에서 은은한 간접등을 켜두고 무한으로 노래 부르는 나만 떠올린다. 똑같은 노래를 100번 이상 기타 치고 부르며 짜증도 냈다가 기뻐도 하는 나를 상상한다.
이사를 하면, 그리고 혼자 밤을 보내게 되면 나는 꼭 기타를 칠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눈물을 조금 흘릴 것 같다. 지나온 어느 날, 맨날 일만 하다가 간만에 시간이 나 내가 만든 노래를 아주 오랜만에 불렀던 그 날처럼, 몇 소절 부르고 울음이 나 울면서 노래를 했던 그때처럼.
그럼 이 글이 엄청 부끄럽게 느껴지겠지? 질투했던 내 마음이 초라하게 느껴지겠지. 그 날만을 기다리며... 오늘도 좋은 음악들을 듣지 못하고 쌓아만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