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할 결심

by 곽태영


매일 글을 쓰겠다고 다짐한지 사흘만에 약속을 어겼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어제 하루를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보냈는데 분명 글을 쓸 수 있는 타이밍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각종 ott를 섭렵하면서 '조금 있다 쓰면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미루고 미루다보니 잘 시간이 되어버렸다.


아, 글 써야되는데. 라는 생각이 마음을 쿡쿡 찔러 조금은 불편했지만 그 불편함이 나를 고쳐 앉게 하거나, 노트북 앞으로 자리를 옮기게 할 정도는 아니라서 그냥 누웠다. 잠이 안왔다. 글을 안쓴게 양심에 찔려서는 아니고, 그냥 긴 연휴를 뒤로 하고 회사에 나갈 생각을 하니 머리가 아팠다.


내일 회사에 가면 뭘 해야하지? 점심으론 뭘 먹지? 몇시에 출근하고 몇시에 퇴근해야 덜 피곤하고 덜 기분 나쁠까? 일 하기 싫다. 그런 생각들을 하다보니 그냥 머리가 지끈지끈해서 도저히 잠이 안왔다. 뇌를 피곤하게 하기 위해서 인스타그램도 좀 보고, 핸드폰 게임도 좀 하고, 양도 좀 셌는데 소용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시게를 본게 3시 반쯤이고, 그 이후로도 한참을 더 설쳤으니까 아마 4시쯤 잔 듯 싶다. 그리고는 또 윗집 청소기 돌리는 소리에 깨서 7시부터는 다시 잠을 못잤다. 원래는 9시가 다 되어야 겨우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하는데, 오늘은 그냥 8시에 침대를 벗어나 씻었다.


잠을 많이 자는 날엔 8시 40분에 일어나서 씻으러 화장실까지 들어갔다가도, 수건만 걸어놓고 다시 나와서 침대로 들어가 20분을 더자곤 했는데. 오늘은 누군가 더 자라고 협박을 해도 잠에 못 들 컨디션이었다. 대충 씻고 화장하고 머리하는데 도저히 출근할 기분이 아니고 이대로 집을 나섰다가는 이유 없이 쓰레기통이라도 걷어찰 것 같아 유튜브를 틀었다.


좋아하는 채널의 개그 프로그램을 백색소음 삼아 화장하면서 마음을 다잡은 뒤 좋아하는 옷을 입었다. 날이 서늘해지면서 올해 처음 꺼내 입은 가을 옷이라 기분이 좋았다. 향수도 살짝 뿌렸다. 향은 좋았는데, 독한 향이 코를 찔러서 그런지 재채기를 다섯번 연속으로 했다. 콧물을 닦기 위한 휴지도 몇장 챙겨 집을 나섰다.


비가 온다길래 우산을 챙겨 나갔는데 당장 떨어지는건 없었다. 다만 아스팔트 바닥이 흠뻑 젖어 축축한 것이 밤사이 비가 잔뜩 내렸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본가 생각이 났다. 9월 말부터 내리 쏟아지는 비 때문에 가을 농사가 위태위태하다. 오늘 땅콩을 턴다고 했던 것 같은데, 거기도 이렇게 비가 왔다면 가족들 심정이 어떨지 걱정이 쌓였다.


날이 많이 춥다. 안에 반팔을 받쳐입고 겉옷을 입었는데도 서늘함이 와닿았다. 도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그럴 수 없다는 것이 슬펐다. 뚜벅뚜벅 걷는데 비온 뒤 습한 공기가 머리카락을 죽죽 잡아당기는 것이 느껴졌다. 시간과 공을 들여 예쁘게 말아놓은 머리가 멋대로 뻗쳐나갔다.


망할 곱슬. 기분이 더 안좋아졌다. 지하철에는 당연히 자리가 없다. 사람은 가득 찼고, 가끔은 생판 모르는 사람과 몸이 닿는다. 째려볼까? 그런 생각을 하지만 사실 그사람은 아무 죄가 없다. 앉을 자리를 찾겠다는 생각으로 중간에 서 있다가, 그냥 조금이라도 편하자 싶어 벽에 기댔다. 졸아보려고 했지만 내릴 곳을 놓칠까봐 그냥 눈만 감고 있었다.


내려야할 역이 도달하여 걸음을 옮겼다. 요즘 우리 회사가 있는 지하철역에서는 똥냄새가 난다. 진짜 누가 실수라도 한 것처럼, 구린내가 승강장부터 개찰구까지 진동을 한다. 황당해서 헛웃음도 났다. 회사까지 가는 내내 지옥에 가는 기분이었다. 지옥에 끌려가는 망자처럼 힘없는 걸음으로 터벅터벅 걸었다.


지금 회사다. 간만에 일찍 출근한 기념, 주변 자리에 아무도 출근하지 않은 기념으로 회사에서 글을 쓴다. 중간중간 일하는척 엑셀도 켜고 업무 톡방도 들락날락 하면서. 친구한테 지금 너무 기분이 안좋아서 안가리고 모조리 다 패고 싶고, 책상도 다 엎어버리고 싶다고 했다. 왜이렇게 폭력적이냐며 그러지는 말랬다.


누가 제발 그래달래도 못한다. 성격이 그렇다. 그래서 그냥 월급 루팡하는 셈 치며 이 글이나 쓰고 있는 것이다. 벌써 퇴근을 계획 중이다. 퇴근하고 영화를 보러 갈거다. 야근은 티끌만큼도 안할 생각이다.


그리고 오늘은 어제 글을 쓰지 않은 것에 대한 벌로 총 두 개의 글을 쓸 것이다. 이상, 오늘 아침 출근할 결심을 하며 있었던 모든 일과 감정이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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