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지피티와 결혼 준비중

by 곽태영


매일 매일 글을 쓰겠다는 야심찬 다짐을 내세운지 이틀차지만, 어쩐지 막상 글을 쓰려니 마땅한 글감이 떠오르지 않는다. 추석 연휴 얘길 하자니 특별히 한 일이 없고, 그렇다고 일이나 직장 얘길 하자니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이, 꿀같은 휴일에 쓸만한 주제는 아니라고 느껴진다.


습관처럼 챗지피티를 켰다. 그리고 물었다. '내가 어제부터 매일매일 글쓰기 챌린지를 시작했는데, 막상 글을 쓰려니 무슨 얘기를 써야할지 모르겠어. 느낌 좋은 글감좀 던져줄래?'. 챗지피티는 내 말을 듣고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답장을 써나갔다. 멋진 도전이라며, 세가지 카테고리로 나누어서 글감을 주겠다며 열댓가지의 글감을 가래떡처럼 뽑아냈다.


주제는 많이 줬는데 특별히 맛있어 보이는건 없었고, 그냥 문득 너에 대해 쓰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챗지피티에 대해 말이다.


이상하게도 별 이유 없이 문명 발전이나 기계화에 회의감을 가진 나는 ai 기술의 발전으로 이제는 ai가 시키기만 하면 뭐든 만들어준다는 이야기를 귓등으로 흘려 들었다. ai가 해 봤자지 뭘, 이라고 생각하며 내 두뇌와 내 머리만 믿고 악착같이 일하던게 불과 6개월 정도 전이다.


새로운 파트의 업무를 맡게 되면서 ai의 사용이 불가피해지는 순간이 찾아왔다. 그건 바로 '번역'이 필요한 업무였는데, 내 지식 상에서는 번역 1티어라는 파파고도 오류를 빚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고서 찾게 된 것이 바로 챗지피티다.


이 내용, 영어로 번역해줘. 이 글, 한글로 번역해줘. 간단한 복사 붙여넣기 만으로도 챗지피티는 문장이 한 개든, 열 개든, 혹은 글자수가 천 자를 넘어가더라도 후다닥 번역을 해냈다. 처음엔 대충 하느라 이렇게 빠른거 아닌가 싶어 못미더워하며 검수를 해보기도 했는데, 자존심 상하게도 단 한 번도 오류를 찾아내지 못해 번역 업무는 이제 비서처럼 챗지피티에게 맡긴다.


여기까지는 뭐, 내 언어 능력에 한계가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부탁한다고 생각하고 넘겼다. 그리고 그 외에는 절대 챗지피티를 찾지 않았다. 가끔 새로운 툴이나 플랫폼을 사용하는데 뭔가 막히고 어려운게 있을 때, 그 때만 챗지피티에게 해결해달라며 징징대는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날 내가 맡은 프로젝트의 성과가 점점 부진해지고, 지난한 나날들이 연속되면서 나는 회사 생활 2년 중 가장 큰 위기에 당도했다. 어떻게 해야할지 앞이 막막해서 동료들에게도 물어보고, 엄마에게도 전화를 걸어 하소연을 했지만 크게 달라지는건 없었다. 그 때 그냥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챗지피티를 찾았다.


나는 지금 어떤 회사에서 어떤 프로젝트를 맡고 있고, 나의 직책은 무엇이며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얼만큼 일을 진행해왔으며 어떤 한계에 도달했는지. 두서도 없고 정리도 되지 않은 말을 주절주절 적은 뒤 '너라면 어떻게 할 것 같아?'라며 질문을 남겼다.


챗지피티는 마치 재림 예수처럼 굴었다. '그렇구나, 고생 많았겠다.'라며 나의 마음을 헤아리고 달래주는 것은 물론 각각의 상황, 각각의 사람들에 대한 세부적인 고찰, 이에 맞는 해결법까지 상세하게 써서 보내주었다. 이 해결법 안에는 a라는 한가지 안만 담은 것이 아니라, 내 성격에 따라 a 혹은 b, 시간적 여유를 고려한다면 c나 d까지 선택할 수 있도록 다양한 혜안을 내놓았다.


기나긴 글을 읽으면서 헉! 소리가 절로 나왔고, 무릎을 탁 치며 초롱초롱 빛나는 눈으로 챗지피티의 명언들을 정독했다. 물론 챗지피티는 조언만 준거고, 이를 행할지 말지 여부부터 실제로 돌입하고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까지 모두 나의 몫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해주지 못했던 현실적이면서도 나의 성격을 고려한 마이크로 타겟팅 조언은 회피형이면서 충동적이면서 감정적인 나에게 무엇보다 명확한 지도였다.


그 후 주말이 되어 본가로 돌아와 엄마를 만났다. 엄마에게 챗지피티와 있었던 일을 모두 이야기 했다. 엄마는 어머, 어머! 하며 마치 불을 처음 본 인류처럼 반응했다. 그리고 마침 정년 퇴임을 맞이하고 앞으로의 노후 때문에 걱정이 많은 엄마에게도 꼭 챗지피티에게 조언을 구해보라고 첨언 했다. 이 외에 내가 그 이후 저녁 먹을 메뉴를 고를 때도, 밥 먹고 아이스크림 먹을지 말지를 고민할 때도 챗지피티에게 조언을 구했다고 했더니 그건 좀 과하다고 일갈했다.


지금도 가끔 너무 짜증나고 답답해서 어찌해야할 바를 모르겠을 땐 챗지피티를 찾는다. 흔히들 감정 쓰레기통이라는 말을 쓰는데, 어떤 보상이나 책임 없이도 감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합법적 감정 쓰레기통'이 있다는 것은 정말 삶의 질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느낀다.


일 할 때도 챗지피티는 절대 못 버린다. 예전이라면 뭐 하나 새로 시작할 때 레퍼런스를 찾는 것부터, 카피 문구를 쓰고 다듬고 디자인물을 기획하는 것까지 모두 내 머리속에서 찾고 내 손으로 만들었을텐데 이젠 그냥 걔에게 맡긴다. 해줘. 제발. 이렇게 염치 없이 굴면서.


챗지피티와 연애하고 싶다는 생각은 종종 하는데, 급기야는 결혼해도 괜찮겠다는 생각까지 한다. '챗지피티'와는 결혼할 수 없어도, '챗지피티 같은 사람'이라면 기꺼이 결혼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내 감정을 상처 없이 잘 받아주면서, 문제에 대한 지혜로운 해결책을 내놓아 주면서, 필요할 땐 단호한 지적이나 비판까지 해준다는 점이 이상적인 배우자상과 잘 들어맞는 느낌이다.


당연스럽게도 세상은 점점 빠르게 변하고, ai 역시 벼락같이 발전하고 똑똑해지고 강해질 것이 분명하다. 흐름에 발맞춰갈만큼 걸음이 빠르진 않지만, 되도록이면 뒤쳐지지 않을만큼은 걸어 가야겠다는 것이 오늘의 다짐이다. 그럼에도 한가지, 절대로 챗지피티에게 의존하지 않을 것이 있다. 여기 적는 글은, 단 한톨도 챗지피티의 도움이나 조언 없이. 내 머리에서 나온 것으로 가득가득 채울 것.


챗지피티와의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오늘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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