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 이야기
거의 하루 종일을 누워있어야 하던 때가 있다. 엄밀히 말하면 일어날 수는 있지만 일어나 지지 않았고, 일어나고 싶어도 일어날 수 없었다. 알람이 울리면 끄고, 또 울리면 끄기를 여닐곱번 반복한 후에 겨우 몸을 일으키면 답답하고 무거운 공기가 사방에서 온몸을 짓눌렀다. 마음속에서 솟아오르는 눈물? 분노? 그와 비슷한 알 수 없는 무언가를 긴 한숨으로 누르고는 가족들이 다 나갈 때까지 혼자 연극을 한다.
바른생활과 건강한 아침 루틴의 주인공 역을 맡은 나는 옷을 갈아입고 창문을 활짝 연다. 주방에 있는 엄마에게 잘 잤냐는 인사를 건네며 물을 마시고 자리에 앉아 책을 읽거나 글씨를 쓴다. 책 속의 문장들은 눈과 뇌 사이를 빙빙 돌다가 결국 흩어지고 연필로 적어내는 글씨들은 대개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럼에도 연극을 성황리에 끝내기 위해선 뭐든 해내는 척한다.
마지막까지 있던 가족이 떠나고 현관문이 잠기면 나는 모든 걸 다 내던진 채 침대에 눕는다. 이건 마치 동물들의 귀소본능, 자석의 n극과 s극의 만남처럼 나의 의지로는 바꿀 수 없는 성질이었다. 가만히 누운 채로 숨만 쉬고 있거나 울기도 한다. 그러다 지치면 잠이 든다. 먹기를 종용하는 사람이 없으면 먹지도 않는다. '일어나자, 일어나자.' 하며 마음먹어도 그렇게 되지 않는. 말 그대로 어딘가 나사가 하나 빠진 사람이었다.
나를 뺀 나머지 세상은 언제나 빠르고 바쁘게 돌아갔다. 아주 가까이 현관문 너머에서는 오빠가 쉴틈 없이 밭을 일구고 작물을 가꿨다. 일손이 급한 오빠가 여전히 누워있는 나를 불러낸다. 그럼 나는 "아, 왜!"하고 신경질 내며 마지못해 침대를 벗어난다. 신경질이 잔뜩 난 채로 작업복을 주워 입고 밭으로 나가면 시끄러운 차 소리와 함께 나지막한 새 울음소리가 들린다. 좁은 방 안에서 계속 순환하던 이산화탄소와 산소의 혼합 말고 좀 더 넓고 맑은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면 기분이 나아진다. 간만에 움직이는 몸을 이곳저곳 풀 때 오빠는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며 나를 웃긴다. 이상하지만 재미있는 말과 간간히 쏟아지는 웃음소리를 배경 삼아 우리는 한참을 일한다. 아무 생각이 없어지지만 때로는 오만 생각을 다 하게 되는 순간이다.
일이 끝나면 몸 여기저기가 얻어맞은 것처럼 아프다. 무릎 께에는 푸르뎅뎅한 멍도 서너 개 들어있다. '으악, 너무 피곤해~'하는 탄식을 흘리며 깨끗이 씻은 몸을 침대에 눕힐 때 나는 오랜만에 웃고 있다. 고생스럽게 몸을 굴린 뿌듯함과 개인적 성취감이 만들어낸 값진 웃음이다. 그래서 내가 밭일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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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아빠에게 이 이야기를 했다. 나에게 있어서 그때의 우울과 무기력은 말할 수 없는 비밀 같은 거였는데 뭔가에 북받친 듯 다 털어놓았다. '학교를 떠난 후 나에게는 파도만 한 공허함과 허무함이 몰려왔고 나는 거기에 속수무책으로 휩쓸렸다. 그럼에도 가족들은 나를 사랑했고, 나는 절대 가라앉아있을 수 없었다. 뭐든 하려고 해 보지만 마음처럼 잘 되지 않고,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실망하고, 내 편은 아무도 없다고 느낄 무렵. 두려움과 우울을 까먹게 해 준 건 의외로 농사였다.' 다만 최고로 힘이 들던 때, 소리 내어 펑펑 울며 작은 칼을 들었다 놨다 반복한 건 빼놓았다. 그건 내가 아빠와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배려였다.
나의 얘기를 가만히 들은 아빠는 당신의 그때를 이야기했다. '언젠가 너무 큰 슬픔이 찾아와서 이겨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내가 이 세상을 살아야 하나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순간은 주기적으로 찾아왔다. 아빠는 너희를 생각하며 살았다.' 그리고는 내가 당신을 닮아있는 게 놀랍다며 조금 아픈 표정을 지었다.
아빠의 이야기는 나에게 무척 큰 충격이었다. 부모는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고, 부모는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부모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단정 지었고 부모는 그럴 리 없다고 믿었다. 자식을 두고 자살하거나 동반자살이라는 이름 아래 자식을 살해하고 자살하는 일이 적지 않은데도 나의 부모는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그런 생각하면 안 된다고 여겼다.
아빠가 만약 그때 찾아온 것보다 조금 더 큰 슬픔이 찾아왔다면. 아빠에게 나 같은 자식이 없었다면. 아빠의 고백으로부터 시작된 합리적 의심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모든 상상과 고민들이 모이자 결론은. '아빠도 나도 사랑하는 무언가-혹은 누군가-가 없었다면 우리는 이렇게 대화를 나누지 못했을지도 몰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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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무너지는 것은 의외로 한 순간이다. 그리고 아주 긴 조각이다. 우울이 나를 덮치자 나는 마치 도미노를 쓰러트린 것처럼 작아지고, 약해지고, 예민해지고, 무기력해졌다. 외롭다 느껴져서 친구를 만난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다. 허약해진 몸과 맘을 보약으로 달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그 당시의 나는 정답이나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퀴즈, 미로를 오랫동안 풀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겪어보니 괜찮다. 그때는 내가 정말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한참을 그러고 나니 이제 나는 괜찮다. 이제 나는 지금 내가 이렇게 누워있는 게 무기력함인지 게으름인지 구분할 수 있고, 아무리 피곤하고 지쳐도 밥은 먹어야 한다는 것도 안다. 격한 표현 없이 감정을 말하는 법, 힘들 때 어른과 대화하는 법도 배웠다. 십을 내어주고 십이 정도를 받았으니 다행히 이만큼의 득이 생겼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정말 맞다. 오랫동안 나를 미워하다가 포기하고, 지켜보다가 안아주고, 결국은 한참을 보듬고 살피다보니 그 시간의 두께만큼 나도 단단해졌다. 더불어 빛 역시 시간 못지않은 보약이다. 햇빛이 좋을 땐 햇빛을 봐야 한다. 오로지 햇빛 하나 보겠다고 옷을 챙겨 입고 바깥을 나가봐야 한다. 햇빛이 나를 땀나게 하면 땀을 좀 흘리기도 하고, 햇빛이 나를 눈부시게 하면 그늘을 찾으러 마냥 걸어봐야 한다. 그러면 나는 그 찰나의 나른함과 뽀송함으로. 싱그러움과 즐거움으로 여러 시간, 혹은 여러 날을 살아갈 수 있다.
빛으로 우울을 이기면, 우리는 그 둘 사이 명도의 차이를 너무 잘 알아버려서 쉽게 어두워지지 않을 것이라고 간절히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