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이야기
어느 순간의 기억으로 하루, 혹은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벅차오르는 기쁨을 안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두려운 절망을 등에 진채 무너질 듯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나도 어떤 기억들을 원동력으로 살아가는 사람 중 하나다.
그 기억들엔 어떤 것이 있냐면, 먼저 떠오르는 건 학교 건물 2층에 가족들과 함께 강아지를 키우며 살았던 초등학교 때이다. 학교로 쓰이다가 이제는 사람이 떠난 건물의 옥상 한편에 우리 집이 있었다. 방 하나를 두 개로 갈라 오빠와 내가 썼고, 거실 대신 있는 큰 방에서 엄마 아빠가 지냈다. 화장실 문을 열고, 다시 보일러실 문을 열고, 다시 보일러실 안 다른 문을 열면 바로 학교 옥상이었다. 학교는 길~고 우리 집은 작았으니 옥상이 우리 집의 두배는 되었을 거다.
우리 집에 에어컨이 생긴 건 고작 1년 전이다. 나 20년 사는 동안, 엄마 아빠 30년 사는 동안 우리 집은 모든 여름을 선풍기 서너대로 살았다. 그래도 괜찮은 여름들이었다. 버티다 못해 들인 에어컨이라 지금은 없으면 안 되는 상황이지만 그때는 없어도 살만한 여름이었다.
작은 집안에 선풍기를 틀어놓고 자는 게 좀 싫을 때면, 그러니까 좀 버겁거나 지루하거나 답답하면 우리는 이불을 들고 옥상으로 나갔다. 동그란 홈과 언덕이 계속 반복되는 초록색 돗자리, 그 위에 요를 깔고 이불을 덮었다. 사람 세명은 충분히 들어가는 파란색 모기장을 치고 들어가서 누우면 벌레 우는 소리가 아주 소란했다. 워낙 시골인지라 총총 박힌 별들도 와르르 쏟아졌다. 똑같은 잠 이래도 색다른 공간이나 장소에서 들려하면 무지 설레고 두근거리는 거 아는가? 오빠와 나는 시시한 이야기들을 하며 깔깔 웃었다. 그러다 왠지 오빠 목소리가 너무 크게 느껴져 좀 무서워지면 나를 사이에 두고 떠들고 있는 엄마와 오빠의 팔을 확 잡아채 조용히 하라고 으름장을 놨다.
꿀 같은 잠을 자다 아침이 되어 잠에서 깨면 나는 두꺼운 솜이불 밑에 깔려있거나 평소에 자던 내 방 잠자리에 누워있었다. 아무리 여름이래도 새벽이 되면 기온이 확 떨어지다 보니 엄마와 아빠가 자다 말고 추위에 떨 우리를 번쩍 들어 아늑한 방으로 옮겨준 거다. 그렇게 일어나 엄마에게 인사하면 '너 자다가 누가 업어가도 모르겠다!'라며 나를 놀리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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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기억엔 아주 어릴 때 살던 집에서의 일들이 있다. 내가 사는 지역부터도 벌써 시골인데, 우리 동네는 더 시골이고, 우리 집은 그중 제일가는 시골이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이웃이랄 건 산에 사는 들짐승들 뿐이니 거기서 우리는 뭘 하고 놀아도, 뭘 해 먹어도 흠이 될 게 없었다. 여름이면 물총을 들고나가 뜨거운 뙤약볕 밑에서 물놀이를 했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날에는 장화를 챙겨 신고 텀벙텀벙 물 웅덩이에 발을 구르며 쏟아지는 빗방울을 전부 맞았다.
그 집의 겨울은 정말 최고였다. 비록 허름한 집이라 자려고 누우면 한참을 웅크리고 있어야 겨우 따뜻했지만 아궁이에 고구마도 구울 수 있었고 작은 온돌방에 온 가족이 누워있을 수도 있었다. 눈이 오면 마당에 수십 개의 천사를 만들고 수백 개의 눈사람을 세웠다. 집 뒤로 펼쳐진 제법 가파른 선산은 나와 오빠에게 가장 좋은 눈썰매장이 되어주었다. 농사에 다 쓰이고 남은 비료포대를 깔고 앉은 채로 눈길을 내달리면 코와 볼이 빨간 사과처럼 단단하게 얼었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오빠와 나에게는 여전히 그 경험들이 선명하다. 경로를 잘못 잡아 눈썰매와 함께 마당에 세워져 있던 탑차 밑으로 들어갔을 때 얼마나 놀라고 웃겼는지, 야구 배트를 휘두르는 오빠 옆에 앉아 공을 던져주다 머리를 깡- 하고 맞았을 때 아픔을 이기는 황당함이 얼마나 컸는지.. 우리를 막고 제지하는 말보다는 함께 놀아주던 손과 발이 더 많았던 만큼 나는 그곳에서 쉽게 벅차고 쉽게 행복했다.
우리는 아직 그 근처에 머물러있다. 이미 키가 전봇대만큼 커버린 오빠도, 친구들과 만나면 소맥을 마는 나도 어디로 한번 벗어나 본 적 없이 그 주변에 있다. 우리 집은 좀 더 크고 따뜻해졌지만 역시 뒤엔 산이 있고, 주변을 둘러보면 온통 초록빛이다. 그래서 그런지 지난날의 기억들은 쉽게 우리의 입에 오르내린다. '그때 기억나?'로 운을 띄우며 같은 시간 속 각자의 기분들을 공유하거나, '근데 그거 알아?'라며 사실은 비밀이었던, 서로에게 말 못 하던 일들을 이제야 주섬주섬 풀어놓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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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그렇듯, 우리의 일은 많은 원동력을 필요로 한다. 특히나 힘과 성의가 무던히 드는 친환경 농사일이라면, 그냥 할 거라는 생각으로는 쉽지 않다. 돈보단 가치를 바라봐야 하고, 지위보단 의미를 바라봐야 한다. 매일같이 sns 통해 고급 아파트에서 잘 사는 사람들을 보고 해외여행을 떠난 친구들을 보게 되는 우리에게는 '아, 이걸 지금 누구 좋자고 하고 있나?' 하는 막연한 회의감이 찾아오기도 한다. 말이 좋아 가치와 의미를 따라가라지만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밭에 있는 일이 반복되고 주말을 잃는 것이 일상이 되면 당연스레 지치기 마련이다.
그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즐거웠던 여름밤과 장마, 눈놀이를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되새기는 것이다. 또, 그 기억들은 오늘이나 당장 내일 비슷한 감각으로 우리 앞에 또 나타나게 된다고 믿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실제로 우리 앞에는 그 즐거움이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난다. 밤하늘 별을 보며 잠을 청하던 설렘이 깜깜한 저녁 일을 끝내며 만난 반딧불이를 바라보는 기쁨이 되어 돌아오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감정들은 '어, 이거 어디서 겪은 느낌인데?' 하는 기시감을 주지만, 그게 전혀 불쾌하지 않아서 나도 몰래 '한번 더, 한번 더!'를 속삭이게 된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오빠가 사 온 트리용 꼬마전구들을 집 마당에 심어져 있는 측백나무에 둘둘 감았다. 너무 추워서 이가 달달 떨렸는데 엄마랑 오빠랑 셋이 사다리를 부여잡고 매달려 두 개의 트리를 만들었다. 전원을 켜니 수백 개의 전구가 수시로 반짝였다. 우리는 여느 백화점 장식 못지않다며 신나서 소리를 질렀다.
작년 겨울 눈이 많이 왔을 때는 오빠와 둘이 나가 하루 종일 눈사람을 만들었다. 손이 어는지, 코가 어는지도 모르고 눈을 다지고 굴려 만든 눈사람은 키가 나만큼 컸다. 집에서 당근, 병뚜껑, 목도리, 돌멩이, 왕관을 바리바리 들고 나와 커다란 눈덩이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주었고, 우리는 걔를 우리 집 막내라고 부르며 녹기 전 며칠간을 돌봐줬다. 어린애들처럼, 유치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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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 즐거움들을 알고 있다. 얼마나 갑작스럽게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나타나는지를 알고 있다. 게다가 걔네는 결코 사소하지 않아서, 생각만 해도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마치 작은 양만 넣어도 빵을 잔뜩 부풀게 만드는 이스트처럼 말이다. 나는 그것만 믿고 무모하게 산다. 일이 내 맘 같지 않고 너무 힘들어서 몸이 녹초가 되고 짜증이 나도 오빠가 이상한 말을 몇 마디 하면 그냥 웃는다. 작년 눈사람, 그저께 강아지 이야기를 꺼내면 신경질을 털어내고 다시금 일을 한다.
어쩌면 나에게 이 일이 내 목숨만큼이나 소중하지는 않아서 내 건강과 행복을 위해 적당히 할 수 있는 일이라 그럴 수 있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무리하지 않고 나를 갉아먹는 일 없이 건강하고 씩씩하게 일한다. 힘든 일도 짜증을 덜 내고 웃음을 자주 곁들이는 경험을 하다 보니 자신감이 많이 생기기도 했다. 새로운 일을 하게 될 때마다 '고구마 선별도 했는데, ' '생강 출하도 했는데 이걸 못해?'라는 어설픈 치기를 보이는 것이다.
하여튼 젊음이 좋아서 나는 매일 철없게 산다. 새해를 맞이한 내가 엄마에게 "엄마, 나 벌써 스물하나야. 어떡해?"라며 장난 섞인 투정을 했더니 엄마는 "뭘 어떡해! 너 애긴데. 신나게 놀아야지. 너 응애야~"라는 말고 나를 웃겼다. 그렇다. 2022년 새해가 밝았지만 나는 아직 응애다. 그래도 조금 똑똑한 응애라 일도 잘하고 밥도 잘 먹고 건강하다. 혼란과 격정의 시대를 이렇게 잘 살아남은 내가 너무 대견해서, 나는 나를 숨이 막힐 만큼 가득 끌어안아주고 싶다.
새해에도 좋은 농사를 지을 거다. 맛있는 고구마, 감자, 양파, 파 등등 많은 건강한 먹거리를 만들어 낼 것이다. 다만 지치지 않고 괴롭지 않을 만큼 나를 굴려서 건강하고 행복한 농부로 쭉 살아갈 것이다. 즐거움으로 꽉 찼던 소중한 순간들을 언제나 기억하고 되새기며. 또 찾아올 즐거움들을 두 팔 벌려 환영할 수 있을 만큼 너른 마음을 가지고.
이것이 씩씩한 농부가 되는 첫 번째 비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