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패도 없고, 완승도 없다.

일 이야기

by 곽태영




근 20년을 살면서 눈물을 흘린 경험은 상황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정말 많은데, 밭에서 울어본 적은 딱 한 번뿐이다. 그럴 일이 뭐가 있나 싶지만 황당하게도 정말 밭에서 눈물을 흘렸다. 작년 가을 고구마를 수확할 때의 일이다. 약 천평 정도 되는 밭에 고구마를 심었고, 반년 동안 억세게 고생해서 길렀다. 고구마 싹부터 기르기 시작해서 자라난 순에 매일같이 물을 주고 키가 큰 순들은 몇 번이고 잘라주었다. 더운 여름에 햇볕 잔뜩 맞아가며 고구마 순을 심었다. 이후 할머니는 수시로 밭에 가 지겹게도 크는 풀들을 뽑아냈고 오빠는 캄캄한 밤마다 고구마 싹들에 영양제를 뿌렸다.



수확 날에는 일손이 모자라는 바람에 온 가족이 총출동하여 고구마를 캤는데, 야속하게도 결과가 좀 초라했다. 고구마를 수확할 때는 무성히 자란 고구마 줄기를 먼저 쳐내고, 비닐을 벗겨내야 한다. 트랙터에 수확기를 달고 두럭을 왔다 갔다 하여 땅에 묻힌 것들을 꺼내면 주렁주렁 달린 빨간 고구마들이 밭 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하나하나 손으로 캐고 뽑으면 기계에 다치는 것들이 적겠지만 그렇기엔 일손과 시간이 모자라서 기계를 쓰는데, 그러다 보니 찍히거나 잘려 상처 입은 고구마들이 많아진다. 게다가 이 밭에 굼벵이가 너무 많아서 굼벵이에게 먹힌 고구마가 정말 아주 많았다.



상태가 좋아서 판매할 수 있는 고구마와 그렇지 못한 고구마를 나누어 박스에 담는데, 정품 고구마가 너무 부족했다. 한뿌리에 다섯 개가 달렸다 치면, 세 개는 굼벵이가 먹고 하나는 기계에 찍혀 고작 한 개 정도만 정품 박스에 담을 수 있을 정도였다. '어, 이거 크고 예쁘다!'싶어 번쩍 집어 들면 보이지 않던 반대편에 굼벵이가 파먹은 자국이 선명했다. 누군가 이미 정품을 담고 간 자리에 좋은 고구마들이 많아 '누가 이렇게 대충 살폈어!'라며 한번 더 보면 또 그렇게 크고 작은 상처들이 나 있었다.



내 마음 같아서는 썩어 문드러졌거나, 기계에 찍혀 두 동강이 나지 않았다면 다 먹고 싶다. 다 팔아서 다 먹게 하고 싶다. 그런데 소비자들의 마음은 내 맘과 같지 않고.. 납품 업체의 규정도 내 마음처럼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래서 눈물이 났다. 이 고구마를 잘 키우기 위해 들어간 노력과 구슬땀을 생각하면 내 마음이 찢어지는데, 고작 굼벵이가 조금 먹었다고 다 애물단지 취급되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



특히나 우리 집은 유기농/무농약 농사를 짓는 집이다. 농약을 쓰지 않고 제초제나 살충제를 쓰지 않는다는 건 벌레를 잡느라, 풀을 잡느라, 병을 피하느라 더 많은 일손과 노동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애를 썼는데 그게 좀 심하게 말하자면 물거품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래서 눈물이 났다. 밭에 사람이 많아서 안 울고 싶었는데 삐죽삐죽 입술이 먼저 튀어나오더니 결국은 꾹 감은 눈꺼풀 사이로 눈물이 비집고 나왔다.



고구마를 담을 때는 콘테나 박스에 담는데, 고구마가 모여있는 곳에서 성한 고구마를 담고 박스가 덜 찼으면 다른 구역으로 옮겨서 또 담는 식이다. 박스가 가득 찰 때까지 담으려면 20킬로가 되도록 계속 담고 옮겨야 되기 때문에 2인 1조로 함께 담는 경우가 많다. 나는 그때 할머니와 함께 고구마를 담았다. 할머니는 담으시면서 '이런 것도 빼야 한다고?', '이런 건 정말 아깝다.' 하시며 버려지는 고구마에 대한 아쉬움을 표하셨다. '네, 그렇대요.'하고 할머니한테 대답하는데 더 눈물이 났다. 나보다 속상할 사람은 할머니일 텐데, 내가 대신 울었다.



사실 눈물은 혼자 흘릴 때보다 누군가 알아줄 때 걷잡을 수 없이 많이 나온다. 들키지 않으려 남몰래 훌쩍훌쩍 울고 있는데 할머니가 '너 우니?' 하시자마자 눈물이 줄줄줄줄 흘러서 정말 황당했다. 눈물 콧물 옷소매에 닦아가며 '아 정말 너무 속상해. 아 정말 분하고 억울해.' 했더니 할머니는 내 등을 두드리시며 깔깔 웃으셨다. 다 들키고 나니 이제는 눈물과 함께 속상한 마음도 막 터져 나왔다.



"굼벵이가 먹은 게 뭐가 어떻다고. 굼벵이도 먹고살아야지. 그래도 예쁘게 일자로 잘 먹었구먼. 굼벵이가 맛있는 것만 먹지 맛없는 거 먹겠냐구. ***(납품업체 이름)이 이래도 돼? ***이 이래도 되냐고. 우리가 뭐 일부러 이랬나. 살충제를 안 쓰는데 어떡해. 이 많은 굼벵이를 나가라고 내쫓을 수도 없고. 건강한 농산물 먹고 싶으면 조금 못난 건 봐줘야 되는 거 아니냐!"



... 라며 혼자 구시렁대고 있으니 할머니는 옆에서 '맞어, 맞어.' 하며 맞장구를 치시다가도 다른 식구들에게 쟤 운다고 소문을 내셨다. 넓은 밭에 깔린 고구마를 다 담는 내내 훌쩍거리고 나니 상품 고구마들이 한 트럭, 두 트럭 쌓여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밭에는 가져다 우리가 먹어야 할 하자 있는 고구마가 담긴 박스가 한가득, 또 그것도 안될 만큼 엉망인 고구마가 한 마지기 널려 있었다.



납품하지 못하는 아까운 고구마들을 쌓아두고 먹다가, 고구마를 좋아하는 친구에게 고구마를 사겠느냐 연락했더니 아주 좋다며 반겼다. 대신 하자가 조금 있다 했더니 괜찮다고 당장 가져오랬다. 근데 그 하자가 굼벵이가 먹은 자국 이랬더니 돌연 좀 그렇다며 아쉬워했다. 이 글을 읽던 중 이 대목과 마주하면 즉시 검색창에 '굼벵이'를 검색해보면 좋겠다. (징그러우니 안 해도 된다.) 굼벵이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아는 사람이라도 꺼려질 만큼 징그러운 벌레 사진이 나온다. 그래서 친구는 거절한 것이다.



나는 밭에서 고구마를 캐며 굼벵이를 많이 봤다. 하얗고 통통한데 또 작아서 자꾸 보면 그리 징그럽지 않은데, 굼벵이를 포털사이트 사진에서 처음 접한 친구는 그게 좀 충격이었나 보다.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 찰나에 다시 생각해보니 그럴 만도 하다 싶었다. 그리고 내 친구의 반응이 보통 소비자의 반응이라면, '우리의 굼벵이 고구마를 아무도 사지 않는 게 당연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의 굼벵이 고구마 배척에 대해 약간의 인정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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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농작물 수확에 대해서도 '완전히 실패'했다거나 '대박 성공'했다고 단정 짓지 않는다. 아무리 고구마가 죄다 굼벵이의 시식코너로 둔갑했더라도 그 와중에 잘 살아남아준 예쁜 고구마가 몇 박스나 있다. 또, 아무리 생강이 금강일 때 솥뚜껑만 한 생강을 수백 박스 수확했어도 잔뜩 썩어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생강이 몇 덩어리 있다.



수확물의 크기와 상태를 떠나서, 고구마를 캘 때 우리 온 가족은 오래간만에 모인 게 즐거워서 하루 종일 복작복작 떠들고 웃으며 신나 했다. 생강을 캘 때 나는 몸이 너무너무 안 좋아서 울상을 지은 채로 겨우겨우 생강 줄기를 잘라냈다. 고구마는 결과는 초라해도 내 마음은 행복했는데 생강은 결과는 좋지만 내 마음이 불행했다. 그럼 이 둘은 완승과 완패인가, 완패와 완승인가?



며칠 전 올해 수확한 고구마를 선별하는 작업을 했다. 양이 많이 나오진 않았지만, 그래도 대부분 썩거나 다치지 않아 보기 좋은 고구마였다. 이삼일에 걸쳐 오빠와 둘이 고구마를 골랐는데 거슬릴 만큼 모난 고구마들이 별로 없어서 작업이 무척 수월했다. 인터넷에 '고구마'를 검색하면 나오는 이미지 속 이상적인 모습의 고구마들도 많아서 정말 행복했다. 빨갛고 길쭉하고 동그랗고 예쁜 고구마를 보면 먼지를 털고 박박 닦아 품에 안고 잤으면 좋겠다 싶을 만큼 기뻤다.



고구마가 나갈 때는 썩은 것, 다친 것도 골라내야 하지만 그램 수가 모자라거나 넘치는 것도 빼내야 한다. 소위 '한입 고구마'라고 불리는 미니 고구마는 정품이 모자라면 조금 나갈 수 있지만, 그래도 대부분 남는다. 너무 커서 못 나가는 대왕 고구마들은 당연히 우리의 몫이다.



고구마를 다 캐고 난 직후에 가족들과 있으면서 내가 흘러가는 말로 "고구마튀김 해 먹으면 좋겠다. 왕고구마로."라고 했었다. 할머니는 그 말을 기억해두셨다가 내가 할머니 집에 놀러 가서 지내는 며칠 동안 덜 여물은 단단하고 큰 고구마로 맛탕을 잔뜩 해주셨다. 할머니는 검은깨가 없어 모양이 안 난다고 아쉬워하셨지만 그날 저녁 나는 배가 불렀다 꺼지고 다시 불렀다 또 꺼질 때까지 내내 달달한 고구마 맛탕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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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농사를 짓지'싶다. 이래서 아무리 힘들고 고돼도 농사를 짓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잘난 것만 팔고 못난 것은 못 파는 헛헛함이 종종 들지만 못난 것은 못난 것 나름대로 식구들에게 선물이 되고, 일용할 양식이 된다. 아쉽게 출하되지 못한 고구마, 양파, 감자를 가득 담아 친척들에게 보내주면 다들 그게 그렇게 고마워 두고두고 감사를 표한다. 올해의 고구마 맛탕처럼 재배한 제철 식물들로 요리한 음식을 먹으면서 "아~ 누가 농사지었길래 고구마가 이렇게 맛있냐~"라며 너스레를 떨면, 오빠는 머쓱해하면서도 그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무언가에게 함부로 말하지 말자. 내 보기 좋은 대로 함부로 평가하지 말자. 굼벵이 고구마도 예쁘고 좋은 고구마가 되려 수많은 노력을 했을 것, 미니 양파도 더 크고 씩씩한 양파가 되려 한참을 고생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사는 과정에서 먹이를 찾는 굼벵이에게 먹혀버렸고, 좀 더 힘센 양파들에게 양분을 뺏겨 오랫동안 굶었을 테다. 그렇게 조금은 아쉬운 채로 세상에 나온 고구마와 양파도 결국은 맛있는 고구마 맛탕이 되고 몸에 좋은 양파즙이 되더라.



우리가 자라는 동안도 수많은 굼벵이와 힘센 양파와 욕심 많은 고라니가 찾아온다. 한참 기웃거리다가 공격하기도 하고 괜히 건드려보기도 하고 쓸데없이 시비를 걸기도 한다. 그 바람에 때가 되어 어딘가에 나선 나는 굼벵이에게 파 먹혔거나 고라니에게 밟혀 조금 찌그러진 모습일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내가 사랑하는 것들의 힘을 받아 고구마 맛탕처럼 제법 그럴 듯 한 무언가가 된다. 기필코 그렇다. 나와 남에게 "에휴, 벌레 먹혔냐?"라며 초라한 단정을 짓지 말고,



'너도 나도 언젠가는 맛탕이 된다!'라는 응원을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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