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분증
반려견 하니를 입양하기 전에
소양 공부로써 그 당시 강형욱 훈련사가 출연하는 '세나개,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편을 모조리 섭렵했다.
나의 무지에 의해 개와 사람 모두에게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지기 전에 미리 예방하기 위해서이다.
결과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는데,
케이스 별로 단편적 적용을 넘어 개의 마음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여담이지만 내가 키운 하니는 참 훌륭한 반려견으로 커 주었다. 심지어 길에서 처음 마주한 행인들도 강아지가 품위 있다며 칭찬해 주시기도 한다.)
세나개 중 한 회차는 식분증(동물이 자신이나 다른 개체의 배설물을 먹는 증상)에 대해 다루었는데, 증상을 개선시키기 위한 방법에 대해 몇 가지를 제시하기도 하지만 우선 원인에 대해 접근했다. 강아지가 왜 그렇게 행동하게 되었을까... 충분히 이해가 가는 설명을 듣다가 내 가슴이 요동을 쳤다.
해당 강아지는 스트레스 상황이었는데, 환경의 변화에 의해 현재 자신이 속한 곳에서 소속감을 가지지 못해 불안한 상황이었다. 자신의 배설물이 남겨졌을 때 불안함을 느꼈기 때문에 먹어서 숨겨야 했다.
그제서야 나의 어린 시절 이상했던 내 모습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슬픔의 한 조각에 처음으로 다다를 수 있어서 가슴이 벅찼다.
수용되지 않는 불안함
나의 어린 시절은 나의 가족이랄 것도 없었고 소속감도 없었다.
초등학교 1학년때 수두를 앓아 전 학창 시절을 통틀어 한번 일주일간 결석을 한 적이 있다.
때에 맞지 않게 추레한 긴팔을 입고 2층 침대에 누워 있다가, 나를 제외하고 엄마 아빠 동생은 서울어린이공원으로 출발하면서 남겨진 내가 챙겨 먹을 베지밀을 식탁에서 확인시켜 주고는 떠났다. 베지밀 외에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식탁에 올려진 베지밀 하나와 주변 분위기는 그림을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정확하게 기억난다.
한참 잠을 자고도 밤이 늦도록 엄마아빠가 도착하지 않아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무서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할머니에게 전화하여 무서움을 달래는 것 밖에는 없었다. 웬만큼 통화에도 도착하지 않아 오랫동안 전화하다가 현관을 여는 열쇠 소리에 마치 못된 짓을 하다가 도망가는 것처럼 확 끊어버리고 방으로 도망을 갔다. 무서움을 견딜 수 있도록 오랜 시간 동안 통화를 해준 할머니에게 인사도 없이 전화를 끊은 것에 대해 어린 마음에 미안했다. 하지만 할머니와 나는 그 후 그 일에 대해 더 이상 아무 말하지 않았다. 할머니도 부모 손에 맡겨진 손녀에 대해 한 발짝 떨어져 가슴 아파할 뿐이었다.
평생 부모로부터 애정이란 감정을 느낀적은 단연코 1도 없었다. 냉대 속에서 버텨갔다. 어쩌다가 나를 대하게 되면 '말 안 듣는다', '못 됐다', '밉다' ‘인간 안된다’ 하면서 콱 쥐어박는 시늉을 하고 으르렁대고 소리쳤다.
취학 전부터 말을 하기 싫어졌고 자꾸만 움츠러들었다.
흔적을 숨기다
초등학교 3~4학년 즈음 어느 날,
매일매일 세탁기에 던져 넣던 속옷을 새삼스럽게 내놓기가 꺼려졌다. 점점 내놓을 수 없는 쪽으로 기울어져 갔다. 입던 팬티를 내방 침대 밑에 숨겼는데 일주일 정도 지나자 거의 모든 팬티가 침대 밑에 쌓이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입던 팬티를 한 번씩 더 입었다.
어린 아이이다. 미숙한 판단과 행동을 할 수 있다.
부모는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고 개선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러나 새엄마는 시동생들과 동서들 그리고 친구인 동네사람들을 불러 작대기로 휘~휘 휘저어 나의 입던 속옷들을 보여주고 내가 이런 어문 아이이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고 증명해 댔다.
4학년인 나는 팬티를 좀 더 잘 숨겨야 했다. 내가 없을 때 동네 쇼를 해대니까 생각해 낸 것이라고는 학교 갈 때 책가방에 넣어 가는 것이었다. 나는 나 자신과 나의 행동에 대해 새엄마와 같은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나 자신을 수치스럽게 생각했다.
불편한 마음에 속옷을 내놓지 못하고, 입던 속옷을 들키면서 스스로가 이런 인간이라는 것이 수치스럽고, 그 혼란한 마음은 중학교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정작 수치스럽고 반성해야 할 사람은 부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