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을 가지지 않는 새엄마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고 브런치에서 3개 정도를 썼더니
신기하게도 나를 괴롭히던 감정들이 한동안 잠잠해졌다.
글을 쓸 때 내 안의 감정들을 아주 질리도록 보고 또 보고 정리하다 보니 생긴 효과인 것 같은데
이런 치유 효과는 처음 겪어본다. 신기하다.
하지만 오래가지는 못하고
몇 주만에 상처가 다시 올라와서 이렇게라도 글을 출산하지 않고는 힘들게 만든다.
나는 아직도 나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실마리를 정확히 찾지 못했다.
첫째는 생존을 위해 나 자신의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고 완전히 억눌렀던 나의 역사 때문이고,
둘째는 주변인에게 이야기를 충분히 잘 전달한 경험도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학대를 당하던 시절에는 감히 입도 뻥긋하지 않고 죽도록 버텨내기만 했을 뿐이고,
성인이 되어서는 무겁고 힘든 얘기를 가깝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쏟아내면 듣는 이들이 하나씩 떨어져 나갔다.
상처 입은 나는 상대의 감정에는 관심을 가지지 못한 채, 상대를 감정쓰레기통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 나를 발견하면, '이게 무슨 짓인가' 하며 이내 진지모드에서 탈출하여 진심을 휘리릭 날려버린다. 그나마 내 이야기를 들어줄 이 사람에게 또 버림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로 내 이야기를 충분히 효과적으로 수면 위로 끌어올려 풀어내기에 어려움을 느낀다.
하나의 글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너무 많이 담아서 버거운 글이 되기도 하고, 덜어내고자 무거운 감정을 빼고 사실관계 위주로 담아보기도 하고, 또 심하게는 모든 것이 정리된 것처럼 과도하게 서둘러 해탈하는 입장이 되어 보기도 한다.
언제쯤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정리하여 감정들을 담아낼까?
그리하여 나 자신에게 치유 효과는 물론이고, 평범한 시선을 가진 다른 사람들로부터 공감과 위로를 받고, 궁극적으로는 나와 비슷한 처지의 그 누군가에게 위로와 도움이 되는 하나의 글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수 십 가지의 키워드는 카테고리와 순서별로 기록되어 있지만, 이야기를 풀어낼 적절한 방식을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다.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수는 있더라도 죗값은 받아야지
친아빠와 새엄마는 나를 양육하면서 정서적으로 학대하고 방치했다.
방학 때면 할아버지 할머니 부름에 할머니 집에서 잠시 긴장하지 않고 살 수는 있었지만
18년 중 3년을 제외한 모든 학창 시절은 친아빠와 새엄마 가정에서 보냈다.
생존에 필수적인 부모의 사랑과 보살핌을 20대 초반까지 간절히 바랐다.
수치스러운 이야기지만
나훈아의 <사랑>을 20살 넘어 처음 접하고는 새엄마를 생각하며, 사랑을 드리며, 사랑을 바라며 혼자 불렀던 적도 있다. 아이로써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부모의 사랑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고 갈구할 수밖에 없었다.
갈구하는 만큼 상처가 되기에 내 마음에 감당할 수 없이 너무나 큰 구멍이 만들어졌다.
내가 느꼈던 바를 표현하자면 '영혼이 망가졌다'이다. 이 망가진 영혼에 많은 관심을 두고 전념한 결과, 영혼은 망가지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 내가 느꼈던 망가진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존엄성'일 것이다.
부모, 그중에서도 가장 나쁘고도 중요한 역할이었던 새엄마에 의해 훼손된 '존엄성'에 대해 한마디 하고 싶어서 새엄마를 만나러 하동으로 갔다.
'네가 그렇게 된 것은 니 할머니 때문이야!' '니 할머니가 맨날 니 데려가서 키웠잖아' 버럭대면서 소리치는데 학대의 주체는 사라지고 핑계만 남았다. 엄마아빠 집에서 학교를 다녔던 십 수년간의 시간에 대해 왜곡시켜 말하는 통에 잠시 어질어질해졌다. (다른 이야기지만 사회에서 만난 사람 중에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상대를 혼란스럽게 만든 후 그 틈을 타서 숨어 버리는 경우를 본 적도 있긴 하다.)
그 여자의 입장을 요약하다면,
본인(새엄마)은 불쌍하고 힘든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해 살아온 선량한 사람이다. 전처자식인 나는 시집올 때부터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존재였는데 어쩌다가 함께 살게 되었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어쨌든 한 집에 살면서도 돌보지 않아도 괜찮았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할머니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도 잘 살겠지 하고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알콜의존성을 가진 남편이 죽은 현재는 아주 편안하고 마음에 걸리는 것 없이 삶의 행복을 누린다. 그 여자는 본인의 행동에 대해 조금의 미안함이나 죄책감 같은 것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배다른 남동생이 결혼할 때 상견례에 초대하지 않았고, 작은어머니와 고모에게까지 예단을 나누더라도 친누나인 나에게는 끝까지 전해지지 않았다. 결혼식과 예단에 대해 작정하고 물었을 때 ' 아 , 미처 생각을 못했다'라는 기가 찬 새엄마의 대답이었다.
그렇다. 내가 가족으로부터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버림받는 상처를 수십 년간 받았지만 처음부터 버려질 소속감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 여자의 내 식구 범위에는 내가 처음부터 없었기 때문에 애정과 사랑이라는 정신적 가치는 물론이고 경제적 공유도 처음부터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 여자는 개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집에서 늙어가는 노견에게 조차 '저것도 생명이라고 거두고 아껴줘야지'라는 말하는데
나는 생명도 아닌가?
이중성
보호자로서 책임감이나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않는 여자의 말과는 다르게 왜 다른 사람들 보기에 마치 보호자의 역할을 잘하고 있는 척하는 연기를 해 왔을까?
희미한 양심 저 밑바닥에서는 본인이 해야 할 역할을 알고 있었다는 것 아닐까?
그 죗값, 어떻게 다 받을라고
소중하고 가치 있는 한 생명, 그 존엄성을 짓뭉개 버렸던 그 여자의 행동은
언젠가 나 하나 소멸되어 없었던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 죗값, 어떻게 다 받을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