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과 삶의 밀도 높이기

by 이하니


재택근무 중에 업무를 서둘러 끝냈다. 해가 있을 때 반려견 하니와 산책을 다녀오기 위해서다. 날씨가 흐리고 쌀쌀한 것 같아 니트 모자를 쓰고 등산복도 주섬주섬 챙겨 입자 하니는 벌써 눈치를 채고 신이 났다.


밖을 나가서 보니 비는 내리지 않지만 도로는 젖어 있었다. 하니는 젖은 땅을 밟지 않으려고 빌라 입구에 서서 망설이고 있었다. "괜찮아 이리 와"하자 하니는 이내 달려 나왔다.


오늘의 산책 코스는 동작구 흑석동과 본동의 골목길로 선택했다. 걷기 시작한 지 10분 정도 지났을 때 후드득 빗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아이고 하니 속상하겠다' 집으로 돌아갈까도 생각했지만 하니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고 마침 목욕할 시기였기 때문에 '에라이 오늘 진탕 즐기고 목욕시켜 버리자'라고 마음먹었다. 어쩌면 이런 상황이 펼쳐질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일기 예보 확인이나 우산도 챙기지 않고 대책 없이 흐린 날 산책을 나왔으니 말이다.

서울 한복판에 별장주택이 있을 정도로 산책길은 공원과 산이 많다. 비가 오니 풀냄새가 더욱 진해져서 하니가 냄새 맡고 다니기에 좋다. 처음에는 발이 젖을까 망설였지만 이왕 젖어버리자 더욱 맹렬히 즐기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나도 행복했다.

예사롭지 않은 흑석동 지형을 악착같이 삶의 터전으로 만들어낸 옛 분들의 치열함과 낭만이 엿보였다. 꼭대기 대문 앞에 한강이 보이기도 하고, 빌라 옆에 산으로 올라가는 직행 계단도 있다.

협소하고 세모진 돌무더기 공간을 일구어 예쁜 정원으로 만들고 있는 안주인은 나와 두 번째 안면을 익히고 하니와도 서로 인사를 나눴다. 그분의 여유로운 마음이 느껴졌다.

용양봉저정공원을 지나 본동에 들어섰는데 모퉁이를 돌아 나오는 할머니께서 "무지개다~" 하셨다. "어디요~?" 하고 친근하게 물으니 내 뒤에 있다고 가리켜주셨다. 선명하고 예쁜 무지개가 선물같이 느껴졌다.

기분 좋은 동네 마실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저렴이 프랜차이즈 커피점에 들러 에이드 하나를 사들고 나왔다. 상쾌한 기분에 상쾌함 하나를 더 추가했다. 소소하지만 더 바랄 것이 없는 하루였다.


만약 반려견 하니가 없었더라면 재택근무 후 아마도 넷플릭스나 시청하며 누워서 시간을 보냈을 것 같다. 집순이인 나는 하니를 입양하기 전에 늘 그래왔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 덕분에 집 밖을 나와 주변을 구석구석 느끼고 오감을 자극하게 된다.


그녀는 내게 가장 소중한 존재다.

처음 데려오는 날부터 헤어지는 순간을 걱정했다. 이 행복이 깨지지 않길 바랐기 때문이다. 길어야 십몇 년이면 깨지게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타임머신

사실 이 걱정을 다소 진정시키고 그녀와 행복을 더 즐길 수 있는 나만의 비법이 있다. 바로 타임머신이다.

내가 사고나 병에 걸려서 먼저 죽지 않는 한,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내게 가장 소중한 그녀는 나를 떠날 것이다. 나는 미래의 그 시점에 있다. 하니가 너무 그립다. 꿈에서라도 만나고 싶고, 단 10분이라도 내 품에 안고 느끼고 싶다. 하니의 따뜻한 체온, 털에 베인 먼지 냄새, 거친 털, 말랑말랑한 피부, 안고 있으면 내려달라고 버둥거리는 것까지 상상하며 간절히 바라지만 하니는 가고 없다. 그런데 다행히도 타임머신을 타고 지금 이 시간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살아있는 그녀를 느끼고 우리는 서로 사랑의 감정을 나누고 있는 것이다. 감사하고 행복하다.


이제 하니와 함께 할 수 있는 가을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대략 5~6번 아니면 그것도 안 될 수도 있다. 돌아오는 계절마다 꾹꾹 눌러 담아 느끼고 사랑하게 된다.


그녀를 사랑할수록 나의 삶도 사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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