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많이 가 보아서 여행이 또 가고 싶어지고, 여행을 자주 가보지 못해서 마치 총량제처럼 숙제하듯 여행 가기를 갈망한다. 아니 여행 자체를 귀찮거나 힘겨워하는 경우도 많다. 경제적이나 시간적인 이유도 있을 것이고, 맛집이나 찾아 다니고 뻔한 풍경 사진이나 기록하는 것 같아서 반복되는 여행을 기피하기도 한다.
나에게 여행은 인생의 총량제와 같은 것이다.
가정과 자녀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이 본인의 치장이나 낚시, 장기, 여인들에게만 전념하는 아버지를 만난 덕분에 어린 시절에 가족과의 여행은 거의 기억이 없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만난 덕분에 생업에만 종사할 뿐 쉬는 날도 일정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 여행을 이야기 하는 자체가 불효이자 아무 생각없는 삶으로 보여질뿐만 아니라 가족의 일원이라고 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퍽퍽하기만 했던 서울생활에 주말에는 친구들과 여의도 광장에 가서 롤러스케이트를 타거나 자전거를 즐기던 것이 최고의 여행이었다. 326번 버스를 올라타고 여의도로 향하면서 50원 버스비를 아끼려 친구들과 “뒤에요”라고 외치며 버스 안내양에게 요금을 내지 않으려다가 마지막 친구는 항상 붙잡혀서 불호령이 떨어졌었다. 붙잡힌 친구를 보고 모두 놀라면서 쫓아가서는 다급히 50원을 내밀고 “죄송합니다”라고 굽신굽신 했었다. 민망하기는 하지만 참으로 어리석고 우스꽝스러웠던 시절이었다. 50원이면 여의도 광장 노점에서 떡볶이나 오뎅을 사먹을 수 있었으니 가난한 주머니 사정에 잔꾀를 부리려고 했던 것 같다. 여러번의 적발을 당한 이후에는 어리기만 했던 그 시절에 모두가 걸어서 여의도 광장을 가기로 뜻을 모으고 두시간여 거리를 걸어서 왕복 네시간을 길거리를 헤매고 다녔지만 어깨는 활짝 펴고 다닐 수 있었다.
어느덧 내가 돈을 버는 주체가 되고 결혼을 하여 자녀가 태어나고 주말이 되었다. 돈을 많이 벌지는 못했지만 집 근처 놀이터라도 여행을 가고 싶었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놀이터로 향하다 보면 꽉 잡은 작은 아이의 손의 촉감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처음에는 놀이터에서 모래놀이도 하고 그네도 타다가 음료수도 사 먹고 아이스크림도 먹었지만, 아이가 좋아하는 간식을 사서 놀이터로 출발하는 순간에도 행복했었다. 이후 작은 차량을 마련하고 지도를 펼쳐놓고 길을 연구하면서 가족과 떠나는 여행은 트렁크에 실린 짐만큼 행복이 넘쳐나는 순간이었다. 처음 가족을 태우고 차량을 운전하여 서해안으로 떠나던 그날! 서툰 운전 실력에 뒷 좌석에서 졸고 있는 아이들이 걱정스러워서, 어쩌면 아빠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고 싶지 않아서 발을 편하게 두지 못하고 거의 들어올리면서 브레이크와 엑셀을 밟아서 서해안에 도착했었다. 얼마나 서툴고 부끄러우며 우스운 추억인지 모른다. 도착 후 마신 맥주 한잔에 피로가 몰려와 거의 잠이 들어버린 여행이었다.
자녀에게 많은 재산을 물려줄 수 있을까? 지금 나는 행복한가? 아니면 부모님께 충분한 용돈과 기쁨을 전할 수 있을까? 나를 선택한 나의 그녀는 나와의 삶을 만족하고 있을까? 나에게 묻고 또 물은 결과는 추억을 만드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가족여행을 다니면서 추억이라는 선물을 주기로 결심하였으나 어떻게 보면 내 자신의 여행에 대한 결핍의 보상이라는 마음이 더욱 앞섰을 것이다.
월요일 아침 출근을 할때부터 토요일 떠날 여행 장소를 고른다. 맛집 위주로 떠나던 여행, 풍경 위주로 떠나던 여행, 교육과 관계되어 떠나던 여행은 이제는 당일치기로 알차게 가는 여행, 대중교통으로 가는 여행 등으로 발전하고 있다. 앞으로도 나의 여행은 계속 발전해 나갈 것이다. 패키지만 고집하던 해외여행도 이제는 자유여행을 생각하는 시점에서 캄보디아 보이스피싱 사태가 터졌다. 아직은 패키지로 떠나야겠다.
토요일에 가고 싶은 곳이 항상 있어서, 연중에는 가고 싶은 해외가 있어서 세월은 흐르고 나이는 들어가고 있지만 산화되고 있는 건강상태를 느끼면서도 하루하루가 즐겁기만 하다. 추억으로 대화할 수 있는 가족이 있어서 벗이 있어서 여행의 총량제를 지금 이 순간도 지켜가려 한다. 신에게 나의 여행 총량제 양을 많이 부여해 주시기를 기도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