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시작의 두 글자-설렘

by 김현우 ㄱ첨벙


삶은 설렘이었다.

슬픔보다는 기쁨이 많았다고 기억하고 싶다. 모든 순간은 두근거림으로 시작하여 설레게 되고 그 과정이 지나다 보면 기쁨이나 슬픔이 되었고, 무의미한 순간이기도 하였다.


전라남도 구례읍내에서 태어나 첫 이사를 가던 설렘을 기억한다. 2월생으로 태어나 일 년 일찍 국민학교에 입학하여 2학년을 보내던 시절에 백 미터 정도 떨어진 이웃집으로 이사를 하였다. 바퀴가 달린 말 모양의 자전거를 타고 의기양양하게 이사하는 집으로 들어가 보니 같은 반 여학생이 주인집에 살고 있었다. 자존심이 조금 상하기는 했지만 방 하나를 사이 문을 통해 방 두 개를 사용하던 일본가옥 형태의 기존 집을 떠나 독립된 방이 두 개 있는 집으로 이사 간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내 공부방이 생긴 것이다. 게다가 방이 십여 미터 떨어져 있어서 더욱 독립된 느낌이었다. 책가방을 등에 메고 말 모양 자전거를 힘차게 운전하면서 8살 나이에 설레었던 그 순간들은 세월이 수십 년 지난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서울로 이사를 가기 위해 조그마한 트럭에 올라서던 그날의 아침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백련슈퍼 주인아주머니가 “이렇게 가면 언제 보나”하시면서 손에 건네주던 요구르트의 기억은 아직도 내 뱃속에서 꿈틀거리는 것 같다. 여름방학이었다. 친구들과의 이별도 하지 못했다. 그저 엄마 손에 붙잡혀 도망가듯 떠나가는 순간이었다. 무언가 아쉽고 억울했지만 엄격하신 엄마에게 아무것도 여쭈어 볼 수 없었다. 이런 상황 속에 연년생이었던 여자 동생은 울고 엄마는 엄숙한 침묵이 흘렀으며 나는 서울로 향하는 마음에 설레어있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걸려 도착한 서울은 조그만 방 한 칸에서 엄마와 나, 여동생이 셋이 함께 살아야 하는 슬픔의 순간이었다.


첫 직장의 설렘의 순간도 기억한다. 직장을 구하기 전에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경험했고 매형의 회사를 다녀보기도 하였지만 제대로 된 내가 선택한 직장은 처음이었다. 을지로 대한극장 뒤로 이십여분을 걸어가면 언덕배기 빌딩 4층에 첫 직장이 있었다. 면접을 보고 서류를 제출할 때의 마음과 취업 통보를 받고 사무실로 향하는 설렘은 많은 차이가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경계하는 눈빛의 경리 아가씨와 쳐다보지도 않고 업무에 열중이던 직원들 사이를 지나쳐 우물쭈물하였다. 설렘의 두근거림이 얼굴에 미소를 만들어 주었고 큰소리로 “안녕하세요 “하고 외칠 수 있는 자신감을 주었다. 작은 회사였다. 부부가 사장으로 경리 직원 한 명, 차장 한 명, 평 직원은 세 명이 근무하는 곳이었다. 차장이라는 분이 벌떡 일어나면서 “잘 부탁합니다”라고 말하며 안경 뒤편에 찡그리던 짜증스러운 얼굴을 지금도 기억한다. 무언가 계획하던 아침의 일상이 무너져서 불편해 보였던 차장의 얼굴은 시간이 지난 후 알아보니 퇴사를 결심하고 사장과의 거친 언행이 오간 이후의 순간에 사무실 내 적막이 흐르고 있던 시간에 내가 문을 열고 들어선 것이었다.


설렘의 순간들로 하루를 살아간다. 반복된 일상의 지루함과 나태함, 부정적 사고보다는 설렘의 순간들로 살아보려 한다. 조금만 생각을 바꾸고 설렘으로 시간을 받아들이는 순간에 세상은 무지개 빛으로 찬란히 바뀌어진다.


항상 설레고 싶다. 앞으로도 계속 설레면서 살아가고 싶다. 반백년을 살아왔던 순간들을 돌아보면서 아쉬움과 부정적인 기억들로 치부하기보다는 모두가 설렘의 순간이었다고 기억하려 한다. 남은 반백년도 설렘으로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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