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변화해야 한다는 강박에 살아온 것 같다.
사회적 분위기와 주변에서는 변화를 당연한 듯 이야기했고 변화하지 못하면 경쟁에서 뒤처진다고 늘 강요당해서 변화는 나에게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심지어 결혼생활에서도 나의 생활 패턴은 변화해야 했다.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였으나 서로 변화하지 않으면 불편한 것들로 인해 수시로 갈등할 수밖에 없었다. “미안해. 내가 변화해 볼게. 그리고 사랑해”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행복한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고 노력하고 있다. 나의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아빠는 아이에게 맞추어야 했다. 방송에 나오는 너무나 멋진 연예인은 아내에게도 아이에게도 최고의 변화된 모습의 배려를 손보이고 있었고 훌륭한 요리솜씨에 돈까지 많이 벌고 있으니 나의 변화에 대한 노력은 선택이 아니라 반드시 당연한 과정이었다.
변화를 가장 많이 느끼는 것은 매일 겪게 되는 날씨이다.
해가 뜨고 구름이 지나고, 비와 바람도 더하고, 때론 눈이 나리며 추웠다가 따뜻했다가 시원했다가 자꾸 변한다. 하지만 그러려니 한다. 이전에도 그랬고 그 이후에도 그랬으니 내가 변화시킬 수도 없기에 그러려니 지나친다. 이미 날씨의 변화에 많이 익숙한 나날이다. 오히려 변화하지 않으면 “요즘 날씨가 왜 이래? 여름답지 못하네”라는 말을 뱉곤 한다.
무더운 날, 등줄기 가득 땀을 흘리면서 기진맥진 걷고 있다 보면 시원한 커피숍에서 춥다며 긴팔을 입고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먹고 있는 모습을 마주할 때가 있다. 물론, 눈 내리는 너무 추운 날에도 반팔에 아이스크림을 먹는 모습을 경험하기도 한다. 이렇듯 날씨를 대하는 사람들은 모두 다르다.
살아가는 일상 중에 날씨에 변화처럼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가는 것도 심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눈을 뜨면 밝은 햇빛에 아침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어두워지면 저녁이라고 그냥 생각하고 있다.
사람을 대함에도 그럴 때가 있으리라. 특히 가족에 대해 무덤덤하게 날씨처럼 시간처럼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당연함을 편안함을 감사함을 내세워 그들의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너무 가깝고 사랑하기에 나와 동일시하여 중요성을 맨 하위로 목록에 정하여 놓고 항상 나를 이해해 줄 것이라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반대로 생각하면 나의 아내와 자녀에게 나는 중요성 목록 최하위로 생각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애써 외면한 채 스스로를 합리화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회사에 입사만 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한 결과, 간신히 입사에 성공하고 나면 이제는 무시를 당하고 싶지 않아 승진에 허덕이고 매달려 산다. 가족여행을 가다가도 상사가 찾는다고 자동차 핸들을 꺾어 회사로 향하고, 지하주차장에 아내와 아이들을 차량에 감금해 놓고 사무실로 뛰어올라고 일을 처리하던 적도 많았다. 일을 마치고 지하주차장으로 향해 보면 아내와 아이들이 감금당한 차 안에서 잠든 모습을 보면서 가슴 아픈 시절이었으나 이러한 생활은 계속 반복되었다. 결국 그러한 노력과 충실함을 인정받아서인지 승진을 하였지만 다시 승진을 하고 싶은 늪으로 빠져드는 생활이었다. 퇴직을 몇 년 앞둔 지금의 시각에서 되돌아보면 내가 잘 살아온 것인지 아니면 잘못한 것인지 아직도 구분이 되지 않는다.
육군사관학교를 가고 싶었다. 우리 시절은 대통령을 세명이나 배출한 육군사관학교의 인기가 굉장했었다. 어쩌면 돈을 벌기 위해 버둥거리면서 어느덧 모성애보다는 냉정한 경쟁의식만을 가진 독기 어린 어머니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심정이 더욱 앞섰을 것이다. 사관학교는 기숙학교라고 하니 가정을 떠나 합법적인 가출생활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게다가 교복을 입지 못한 세대로써 교복을 입고 싶다는 충동도 사관학교는 나에게 매우 매력적이었다. 국가에 대한 충성심보다는 잿밥에 관심이 많았던 사관학교의 꿈은 결국 실패하였고 나는 이등병으로 군복을 입었다. 가출과 교복의 꿈을 모두 이룬 것이다.
마음은 수시로 변화하지만 생활태도의 변화는 극도로 게으르다. 나의 삶이 모두가 싫어하는 블랙아이스, 도로의 빙판길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아무도 걷고 싶어 하지 않는 도로의 블랙아이스!
하지만 숨 가쁘게 언제까지 변화해야 할까? 지중해 커피숍에서 한가하게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턱수염 많이 난 채 비니하나 둘러쓴 배 나온 외국인처럼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면 안 될까? 변화보다는 그냥 오래된 노포 맛집처럼 고집스러운 태도로 올곧게 살아가면 안 될까? 항상 변화하여 무언가를 성취하고 경쟁에서 이겨내면서 버텨내야 할까?
부족하지만 그동안 나로서는 충분히 변화해 왔는데라는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방금 끓여놓은 라면은 국물을 가득 머금고 푹 퍼져버린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