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인생의 두 글자-고향

by 김현우 ㄱ첨벙

“고향이 어디야?” 지내다 보면 자주 듣는 이야기이다.


고향을 말하기에 항상 주저하면서 살아왔다. 전라도 출신이라는 게 자랑스럽지 못했던 시절을 지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에게 장착된 트라우마이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가까운 구례에서 전해 듣고 그다음 해에 서울로 전학을 갔으니 전라도 출신의 서울 생활은 쉽지 않은 시작이었다. 국민학교 5학년이었지만 그래도 구례에서는 반장도 수차례 하고 어머니는 육성위원이었으며 공부도 거의 상위권을 차지하다가 갑작스러운 서울행이었다. 그런 나에게 친구들은 시골학교는 다 올 ‘수‘를 주는 것 같다는 둥, 사투리를 해 보라는 둥, 전라도 사람들은 괴물이라는 둥 관심과 미움이 팽배했었다. 친구들과 갈등이 내 인생에 가장 극심했던 1981년이었다.


고 향

아련한 단어이다. 술 먹은 다음 날 속병앓이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의 불림이다. 좋은 기억만 남기고 싶은 두 글자이다. 드라마를 접하다 보면 고향에는 정겨운 부모님과 형제가 있고 언제 봐도 나를 이해해 주는 친구들이 있는 곳이다. 되돌아오는 길에 참기름, 고춧가루 등 정을 흠뻑 나누어 주는 곳으로 표현되는 곳이다. 하지만, 나의 현실은 고향이 없는 것 같다. 11살 여름에 떠나온 고향은 이제는 찾아가 봐도 친구나 친척이 전혀 없는 곳이다. 이후에 서울에서 25여 년을 살았건만 내 주변 사람들은 내 고향은 전남 구례라고 확정하였다. 그로부터 20여 년을 대전에서 살고 있지만 나를 아는 동료들에게 나는 전라도 사람이다. 공교롭게도 군 생활을 논산훈련소와 전남 담양의 기갑부대를 다녀왔으니 거의 대한민국의 서쪽으로만 기울어진 삶이다. 그래 이제는 전라도 사람이 아닌 백제인이라고 불러달라고 하자! 이제는 세상이 변하여 전라도 사람이라고 쉽게 말하곤 하지만 선입관의 세상을 스스로 인정하면서 서울에서 초중고 졸업했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부끄러운 과거이다. 어차피 주민등록번호에 지역번호 6을 받았으면서 뭘 그리 숨기려고 애를 썼는지 지금 생각해도 명확한 이유를 모르겠다. 기쁜 일도 있다. 요즘은 전남 구례가 관광명소로 핫한 곳이 되어 살아보고 싶은 장수 마을로 불리어 조금은 자랑스러워지곤 한다.


고향은 나의 울적한 기분이 씻겨나가게 하는 곳이다. 나의 가장 순수한 시절과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혹한 같은 어려움에서 살아가면서 견디고 버티다가 그로 인해 단단해지고 야무져지는 과정이 되면서 다시 고향이 그리워지곤 한다. 그 고향 속에는 젊고 잘 생긴 아버지와 예쁜 어머니가 내 머릿속 추억과 함께 남아 있으니 고향이라는 단어는 행복해지는 단어이다. 마을회관에서 꽹과리를 치시면서 농악을 이끄시던 할아버지의 모습도 있고, 마징가 로봇을 타고 우리 집 마당 위로 날아오겠다던 거짓말쟁이 친구도 떠오른다. 마당에 서서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곤 하였던 기억에 혼자 미소 짓곤 한다. 서울로 떠나오던 날, 작은 트럭에 이삿짐을 싣고 해가 뜨기 전 출발하려는데 구멍가게 할머니가 요구르트를 쥐어 주시면서 잘 가라는 인사를 하던 풍경이 아직도 나의 뇌리에 남아 있다. 고향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5학년 여름 방학이었다. 많은 친구들과 어울림과 약속들로 꽤나 분주한 시절이었다. 사업이 실패하여 아버지는 사라지셨고 어머니는 우리 남매를 데리고 서울행을 결정하셨다. 나는 그날의 출발이 나의 고향과 마지막 날이 될 거라고 조금도 예측하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아쉬움이다. 단호한 행동이 깔끔한 인생의 수레바퀴를 숨 돌릴 틈 없이 정리하였다.


빗방울을 맞고 있으면 무언가 깨끗이 씻어내리는 것 같아 행복하다. 우산을 건드리는 소리와 바닥에 부딪히는 빗방울 소리는 나의 오감을 자극한다. 나에게 고향은 빗방울 같다. 맞으면 흠뻑 젖어 불편하지만 그 빗소리는 아득하게 기분 좋아지는 느낌. 딱 그것이 나에게는 고향이다.


할아버지의 산소에 인사를 하러 일 년에 한두 번은 고향을 갔었다. 작은 삼촌의 판단으로, 아닌 강한 주장으로 산소가 없어지고 고향 가는 일은 드물어졌다. 참 묘한 일이다. 할아버지는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 돌아가셨음에도 고향으로 찾아가는 구심점이 되었던 것 같다.


고향을 가 보아야겠다. 퇴직을 하게 되면 고향에 머물러도 보아야겠다. 찬란하고 소중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고향의 이곳저곳을 오랫동안 걸어보아야겠다. 산수유가 피어오른 시절이 다가온다. 마음 급한 산수유는 벌써 나를 부르는 것 같다. 산수유 축제를 핑계 삼아 구례역으로 그 옛날 어린 시절처럼 기차를 타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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