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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재 선생을 추모함

by 청효당

<리어왕>을 보고 – 갈 길이 없으면 눈이 필요 없다


원로 배우 이순재 선생은 1956년에 연기를 시작한 것으로 나와 있다. 1950∼60년대에 연기를 시작한 분들 중에는 대학 연극 출신이 많은데 이순재 선생도 그러하다. 나는 이전에 이순재 선생이 출연한 연극을 본 기억은 없다. 내가 열심히 연극을 보러 다니던 1970년대 중, 후반은 연극을 하던 많은 연기자들이 이미 TV드라마로 진출하여 활동하던 시대였는데, 이순재 선생과 동년배이거나 몇 살 아래인 신구, 오현경, 김동훈(작고), 이호재, 전무송 같은 배우들이 출연한 연극은 더러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순재 선생을 <목욕탕집 남자들>을 비롯한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와 <거침없이 하이킥> <허준> 같은 인기 TV드라마와 연관해서 기억할 텐데, 나는 늘 그를 영화배우로 떠올린다. 1960∼70년대 이순재 선생은 그야말로 영화배우로 ‘이름을 날리던’ 분이었다. 당시 출연한 그의 영화를 꽤 여러 편 본 기억이 있는데, 특히 잊히지 않는 작품은 유현목 감독의 <막차로 온 손님들>이다. <막차로 온 손님들>은 홍성원(작고)의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내 기억에 이 작품은 한국일보에서 발행하던 주간지 <주간한국>에 연재되었던 소설인데 몇 회분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물론 당시 내 나이로는 줄거리만 따라가며 읽었을 것이다. 아무튼 소설의 이름은 알고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영화를 보게 된 것 같은데 ‘뭔가 멋져 보이는 제목’에 끌렸던 것 같다. 중학생이었던 내게 배우 이순재의 모습은 매력적으로 보였다. ‘냉소적이고 허무적이며, 우수에 찬 듯 고독해 보이는’ 인상이 그랬다. 그 작품 말고도 <지하실의 7인>을 비롯해서 몇 편을 더 본 것 같은데 기억은 나지 않는다. 당시 이순재 선생이 어느 영화잡지와 인터뷰한 내용 중에 지금까지도 잊지 않고 있는 말이 있다. “내 키가 3cm만 더 컸어도 영화계의 판도는 달라졌을 것이다”라는. 그때 그는 자신의 키가 165cm라고 했던 것 같다. 언젠가 우리 아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아빠는 어찌 그런 것까지 다 기억하고 있느냐”고 신기해했다.



예술의 전당으로 <리어왕>을 보러 갔다. 타이틀을 ‘이순재의 리어왕’이라고 한 만큼 이순재를 위한, 이순재의 연극으로 보아야 할 작품이겠다. 나로서는 오랜만(3, 4년만)에 보는 연극이다. 객석에 빈자리가 눈에 띄지 않는다. 코로나19 탓으로 공연에 ‘굶주린’ 관객들이 많은 것도 이유겠지만, 그 못지않게 이순재라는 이름 석 자가 커다란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나이 86세에 이 같은 대작을, 원작 그대로를 200분에 걸쳐, 그것도 싱글 캐스트로 20일 넘게 공연한다는 사실은 존경받아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80대에 접어든 리어왕은 자신의 영토를 세 딸에게 나누어 줄 계획으로 딸과 사위들을 모아 놓고 누가 가장 아버지를 사랑하는지 말해 보게 한다. 큰 딸인 고나닐과 둘째 딸 리건은 화려한 감언이설로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지극함을 말하지만 막내인 코딜리아는 ‘더도 덜도 아닌, 진실에 따른 사랑일 뿐’이라고 짤막하게 답하자 분노한 리어왕은 막내딸을 내치고 위의 두 딸에게만 영토를 물려준다. 코딜리아는 프랑스 왕의 선택을 받아 떠나고, 목적을 달성한 두 딸은 본색을 드러내며 아버지를 멀리한다. 리어왕은 실성한 채 폭풍우 치는 광야를 헤매고 고난을 겪으면서 뒤늦게 코딜리아의 진심을 깨닫지만, 영군군과의 싸움에서 프랑스군이 패하면서 코딜리아는 죽음을 맞게 되고 리어왕 또한 막내딸을 끌어안고 숨을 거둔다.

진실을 간파하지 못한 리어왕과 마찬가지로, 서자인 에드먼드의 간계에 빠져 적자인 에드가를 내치고 결국에는 리건의 남편 콘월 공작에게 눈알이 뽑히는 리어왕의 충복 글로스터 백작 또한 허위를 간파하지 못하고 시련을 겪고 난 뒤에야 진실을 보게 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글로스터 백작이 눈알이 뽑히고 나서야 겨우 ‘마음의 눈’을 통해 진실을 깨닫는다는 설정이 상징적이다.


15분간의 휴식 시간을 포함하여 3시간 40분이라는 긴 연극이지만 지루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셰익스피어 연극 특유의 기관총처럼 쏘아대는 긴 대사와 현란한 비유도 원작 그대로 가감 없이 전해진다. 한편 그 같은 대작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무대 활용에는 다소 아쉬운 점이 있었다. 무대 전면을 실내로, 후면을 광야로 표현한 intermission 직전의 무대 장면을 빼고는 대체로 단조로운 무대설정이었다. 첫 장면의 왕좌 뒤의 거울과, 기하학적 추상화처럼 수직, 수평으로 구성한 무대장치는 인상적이었다. 첫 장면에서의 두 딸의 화려한 의상과 코딜리아의 휜 색 의상은 인물 성격의 적절한 대비를 보여주었다. 광대 역을 여자 배역으로 설정한 것이 인상적이다. 코딜리아와 이중 배역이어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리어왕의 수호기사도 여자 배우로 설정한 것이 눈에 띄었다. 적절한 설정이었는지는 다소 의문이 들었지만. 지적하고 싶은 부분도 있다. 음향 실수가 있었다. 배우들의 대사에도 실수가 느껴졌다. 공연 초기 같았으면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공연 막바지에 본 내게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전체적으로 보아서 완성도를 조금 더 높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서두에서 말했듯이 이 연극은 ‘이순재의 리어왕’이다. 이순재 선생의 중량감 있는 목소리는 작은 체구임에도 불구하고 카리스마를 느끼게 한다. 노배우의 혼신의 열연에 존경을 표한다. 반세기 전 영화에서 본 그 우수에 가득 찬 청년의 얼굴과 리어왕이 자꾸 겹친다. 아! 정말 많은 세월이 흘렀다.


<이 글은 2021년 11월에 '<리어왕>을 보고 – 갈 길이 없으면 눈이 필요 없다'는 제목으로 블로그에 썼던 글이다. 나로서는 이순재 선생을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본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다. 이순재 선생의 별세 소식을 접하고 선생에 대한 글을 써볼까 하다가 아무래도 이보다 더 나은 글은 쓸 수 없을 것 같아 옮겨보았다. 작년 오현경 선생의 별세에 이어 올해 이순재 선생마저 가시니 마음이 말할 수 없이 허전하고 쓸쓸하다.

고인의 명목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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