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두 달간 피부비뇨기과 병원을 다녔지만 효과가 없어 다른 피부과 병원을 찾아갔다. 딸아이들이 몇 번 다닌 적이 있는 병원으로 제법 용한 병원이라고 했다. 아이들은 처음부터 이 병원을 권했지만 나는 굳이 피부과가 아닌 피부비뇨기과를 수소문해서 일부러 더 멀리 있는 병원을 선택했었다.
서너 달 전부터 엉덩이 꼬리뼈 부근에 통증이 있어 바로 앉기가 힘들었다. 뼈에 이상이 있나 해서 동네 정형외과에 갔다. 척추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며 정밀 검사를 해보았으나 이상이 없었다. 의사는 근육에 무리가 와서 나타난 증상일 수 있으나 걱정할 일은 아니라며 3일분의 약 처방을 해주었다. 그 후로도 여전히 엉덩이 부근의 근육이 쓰리고 따가워서 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 있기가 힘들었다. 오히려 엉덩이 아래로 팥알 만 한 종기 같은 것이 부풀어 올라 옷이 스치면 통증이 있었다. 아무래도 피부 문제인 것 같아 동네 피부비뇨기과를 수소문해 보았다. 환부가 엉덩이라 일반 피부과에 가는 것이 꺼려졌다. 요즘 피부과는 피부 미용을 주로 하는 병원이 많은 것 같아 나와 같은 증상 치료에는 ‘적합하지 않을 것’이라 지레짐작하고, 굳이 피부과보다는 피부과와 비뇨기과를 겸하는 병원을 고른 것이다. 병원마다 전화를 해서 피부과 의사와 비뇨기과 의사가 따로 있는지, 남자 의사인지 여자 의사인지를 물어보고 남자 의사가 진료하는 병원을 선택했다. 병원에 환자들이 많아서 꽤 긴 시간을 기다렸다. 기다리는 환자들 중에 나이 든 사람들이 많아서 ‘안심이 되었다’. 내 차례가 되어 간호사의 지시대로 진료실 침대에 엎드려 엉덩이를 까고 의사를 기다렸다. 의사가 환부를 보더니 ‘이거 너무 앉아 있어서 생기는 증상이에요’ 하면서 나이 들면 근육의 살이 빠져서 이런 경우가 있다고 했다. 의사는 가급적 앉아 있는 시간을 줄이라며 사흘 치 복용약과 연고를 처방해 주었다.
사흘 동안 열심히 연고를 바르고 약을 먹었지만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다. 의사의 권고대로 앉아 있는 시간을 줄이려고 컴퓨터를 보는 시간도 최소한으로 줄였다. 꼭 해야 할 경우에는 30분은 앉아 있고 20분은 일어나서 어슬렁거리다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침대에서도 모로 눕거나 엎드려 있으려고 노력했다. 그래도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다. 외출을 하고 온 날은 더 심했다. 전철 안에서, 식당에서, 카페에서 몇 시간 동안 계속 앉아 있어야 하는 시간이니 엉덩이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었다. 작은 종기는 거의 사그라들었지만 꼬리뼈 부근의 통증은 조금도 차도가 없어 2주가 지난 뒤 다시 그 병원에 갔다. 의사는 ‘앉아 있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고 같은 말을 했다. 상태가 심해지면 욕창이 될 수도 있다며 ‘겁을 주었다’. 나는 속으로 ‘아니, 앉아 있는 시간을 줄이는 것도 한계가 있지, 그럼 하루 종일 서 있거나 걸으라는 말인가’ 하고 원망을 했다.
의사는 먼젓번과 같이 사흘분의 약과 연고를 처방해 주었다. 그 후로도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다. 집에서는 앉아 있는 시간을 줄이려고 바닥에 방석을 깔고 그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컴퓨터를 보거나 책을 읽었다. 침대에서는 엎드려 있는 시간이 많았고, 나머지 시간은 거실을 계속 ‘방황’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며칠을 지냈으나 여전히 증세가 호전되지 않아 결국 ‘용하다고 소문난’ 동네 피부과를 찾은 것이다.
다행히 의사는 남자였다, 이름난 병원이라 환자가 많았다. 1시간쯤을 기다려 내 차례가 되었다. 다시 침대에 올라 엉덩이를 까고 같은 설명을 했다. 의사는 나이 들면 흔히 있는 증세라며 샤워할 때 엉덩이로 흘러내린 물을 완전히 닦아내지 않으면 그럴 수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완전히 물기를 닦아내야 한다고 했다. 의사의 ‘처방’이 내게는 납득이 되지 않았으나 더 이상 말을 붙일 겨를도 없이 의사는 침대를 떠나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연고 1개를 처방해 주는 것으로 끝냈다. 나는 적이 실망스러웠지만 다른 수가 없어 약국에서 연고 하나를 구입해서 돌아왔다. 아니 실망스럽다기보다 ‘이거 쉽게 나을 병이 아니지 않을까’ 하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집에 와서 아내에게 진료 결과를 말하고 아무래도 ‘종합병원 피부과’에 가보아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아내는 별 희한한 병도 다 있다며 이번에 받은 연고를 ‘열심히’ 발라보고 나서 큰 병원엘 가든지 하라고 했다.
이제 한 달 반만 지나면 돌이 되는 쌍둥이 외손녀의 재롱을 보는 일이 요즈음 우리 부부의 가장 즐거운 일과이다. 매일 보내오는 동영상을 기다리며 오늘은 어떤 새로운 재주를 보여줄지 설렌다. 둘 다 발달이 빠른 편인 것 같다. 배밀이와 무릎기기를 지나 이젠 무언가를 잡고 일어서서 한 발 두 발 걸음을 옮기며 이동한다. ‘엄마’, ‘아빠’, ‘맘마’를 비롯해서 ‘다했다’, ‘까까’, ‘까꿍’ ‘안돼’ 등 몇 마디 말도 한다. 아마 제 엄마가 자주 쓰는 말을 기억했다가 따라 하는 것 같다. 특히 두 아이 다 ‘안돼’라는 말을 또렷한 발음으로 자주 내뱉는 것은 아마도 제 엄마가 저들더러 위험한 행동을 못 하도록 주의를 주면서 ‘ㅇㅇ야 그건 안돼’라는 말을 자주 해서일 것이다. ‘만세’도 잘하고, ‘박수’도 잘 친다. 하지만 지 엄마가 계속해서 만세와 박수를 요구하면 잘 따라 하다가도 갑자기 외마디 소리와 함께 하던 짓을 그만둔다. 이제 좀 그만하라는 뜻일 것이다. 쌍둥이이지만 두 아이의 성격은 많이 다르다. 하나는 활동적이며 개구쟁이이고, 다른 하나는 차분하고 집중적이다. ‘쌀튀밥’ 비슷한 자잘한 유아용 간식을 각각 용기에 담아 주면 한 아이는 욕심껏 한주먹 가득 집어서 입에 넣지만 정작 입에 들어가는 건 몇 개 되지 않고 대부분 다 흘린다. 그런데 다른 아이는 엄지와 검지로 차분하게 하나씩 집어서 입에 넣는다. 비슷한 장난감 하나씩을 나누어 주면 한 아이가 제 것은 제 것대로 두고 나머지 하나를 빼앗으려 승강이를 벌이다 결국 빼앗아 도망가고, 빼앗긴 아이는 서럽게 울며 쫓아가지만 요리조리 도망가는 게 여간 민첩하지 않다. 중간에 멈추어서 계속 쫓아오는지 살피다가 다시 도망간다. 깔깔거리고 웃기까지 하며 약을 올린다. 뺏고 뺏기는 역할이 바뀌기도 한다.
차곡차곡 정리해서 담아 놓은 빨래 바구니에서 옷이며 수건 같은 것을 하나하나 들어내서 바닥에 팽개치는 일에 몰두하기도 한다. 딸에 의하면 제 딴에는 그것이 정리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단순히 꺼내기만 하는 게 아니라 꺼낸 후에 흔들어서 완전히 ‘해체‘를 시킨다. 급기야 거실 바닥은 어질러 놓은 빨래들로 발 디딜 틈도 없어진다. 그런 행동을 되풀이하면서 쉴 새 없이 무슨 말인지를 중얼거리거나 큰 소리를 내기도 한다. 가만히 그런 광경을 보고 있으면 신기하기도 하고 또 얼마나 귀여운지 모르겠다. 그럴 때 다른 아이는 노래가 나오는 장난감 키보드를 이리저리 눌러보며 신기해하고 또 깔깔대며 웃는다. 이유식을 먹는 태도도 영 다르다. 하나는 숟가락이 다가오기 무섭게 받아먹지만 다른 아이는 그리 적극적이지 않다. 먹는 일보다 식탁 위의 무늬나 틈새를 살피고 만져 보는 일에 열중한다. 한 아이는 책을 읽어주면 좋아하고 한 아이는 노래를 불러주면 좋아한다. 주말이면 딸 내외는 아이들을 문화교실에 데려가거나 찜질방에 데려간다. 찜질방 모자와 옷을 입은 그 ’ 쪼끄만 ‘ 아이들의 귀여운 모습은 보고 또 봐도 질리지를 않는다.
딸아이는 쌍둥이 키우는 일에 많은 주의를 기울인다. 옷도 서로 다르게 입힌다. 디자인이 같더라도 색깔은 달리한다. 아이들을 서로 비교해서 말하는 것에는 질색을 한다. 특히 아기들 앞에서는 더 그렇다. 아기들이 다 듣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무심결에라도, ’ㅇㅇ는 ㅇㅇ보다 말을 빨리 배우는 것 같다‘느니, ㅇㅇ는 ㅇㅇ보다 성격이 급한 것 같다’는 등의 비교 말을 하는 걸 조심한다. 딸아이는 쌍둥이 육아에 대해서 많이 생각히고 공부를 한 것 같다. 친가든 처가든 친지 중에 쌍둥이가 처음이어서 신기하고 귀엽지만, 키우는 일에는 더 많은 생각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느낀다. 무어라 해도 올 한해 우리 가족이 얻은 가장 귀한 보물은 쌍둥이 손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