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 단상 24
새해가 된 지 두 달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책을 6권이나 주문했다. 황석영의 신작 소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자서전, 함돈균의 평론집, 에드먼드 포셋의 『보수주의』 등. 요즘은 책도 ‘총알 배송’인지 아침 일찍 주문한 책이 오전 10시도 되지 않아 배송 완료했다는 문자가 왔다. 책 주문한 걸 알면 혹 아내가 잔소리나 하지 않을지 염려하여 아내가 주방일을 마치고 안방으로 들어가기만을 기다렸다가 얼른 현관문을 열고 배송된 책을 들여왔다. 책 주문한 사실을 알게 되면, 집에 ‘쌓여 있는’ 책만 해도 주체를 못 할 형편인데, 또 그 책 중에 안 읽은 것이 태반일 텐데, 무슨 책을 또 사들이느냐고 못마땅하게 생각할 것은 불문가지일 터이다. 사실 최근 몇 년 동안은 거의 책을 사지 않았다. 집에 쌓여 있는 책들이 많고, 야금야금 들어가는 책값도 만만치 않은 데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억지로라도 끝까지 다 읽지만 구입한 책은 몇 쪽 보다가 나중에 읽지, 하고 밀어 놓는 경우가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뒤에 이야기할) 어떤 사연이 계기가 되어 보고 싶은 책은 모두 동네 도서관에서 빌려 보기로 했기 때문이다.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2주일 간격으로 네댓 권씩 꼬박꼬박 빌려 보았으니 결코 적은 양은 아니다. 그러던 것이 그 도서관이 리모델링을 하느라 1년이나 휴관을 하는 바람에 그런 작업은 중단되어 버렸다. 그렇지 않아도 시력 저하와 집중력 부족으로 차츰 책 보는 일에 진력이 나 있던 것도 한몫을 했다. (이전 글에서도 썼듯이) 독서를 대체한 것은 유튜브 시청이었다. 휴대폰을 끼고 앉아 온갖 종류의 유튜브 프로그램 서핑이 일과가 되었다. 당연히 눈은 점점 더 침침해졌고 머리 안은 먼지가 가득 찬 것처럼 어지러웠다. 그렇지만 달리 특별한 소일거리가 없는 시간에는(특히 잠자기 전) 누군가에게 조종이라도 당하는 듯 핸드폰에 손이 갔다. 이건 ‘할 짓이 아니다’는 생각에 한동안은 음악만 들었는데 그것으로만 시간을 메꿀 수는 없어 다시 책을 잡게 되었다. 오래전부터 보려고 작정만 해오던 (집에 있는) 책들을 읽는 일에 더해서 요 두어 달 동안 새로 나온 책을 한 권, 두 권 사게 된 것이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기 시작한 이후로는 구매한 책이 10권도 채 되지 않는 것 같다. 도서관이 비치하지 않고 있거나, 읽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두꺼운 책이거나,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읽어야 할 어려운 책 같은 것만 1년에 두세 권을 샀을 뿐이다. 책 사는 걸 그만둔 데는 또 다른 (어쩌면 이게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다. 몇 년 전 우연히 읽은 문학평론가 유종호 선생의 어느 글 때문이었다. 시내에 나간 김에 서점에 들러 책을 한 아름 사 들고 전철을 타고 오면서 선생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동안 사들여서 쌓인 책만 해도 넘칠 지경인데, 이 나이에 아직도 살 날이 창창하게 남아 있다고 생각하고 새 책을 사들이는 자신에게 문득 자괴감을 느꼈다’는,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으나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나는 선생보다 한참 연배가 낮기는 하지만 그 글을 읽고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읽고 쓰는 일로 평생을 보낸 선생도 저런 생각을 하시는데, 70 나이에 이른 나 같은 ‘아마추어’가 꾸역꾸역 (다 보지도 못할) 새 책을 사들이는 행위란 어쩌면 ‘허영이나 사치’가 아닐까 하는 반성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 새 책을 사서 책장에 꽂아 놓고 흐뭇해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이제 그런 나이는 지났어. 책꽂이에 꽂힌 채 선택을 기다리는, 아직 읽지 않은 책에게 기회를 주자. 예전에 읽어서 좋았던 책은 다시 읽고, 새로운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 보면 되지. 이젠 정리할 나이가 된 것이지‘ 그런 생각으로 책 사는 일을 그만두었던 것 같다. 요 며칠 책 몇 권을 사들였다고 그런 각오가 달라진 건 아니다. 새 책 구매는 동네 도서관이 재개관하는 날까지만 하기로 한 것이니.
새해가 되면 동창회에서, 종친회에서, 직장 OB 모임 등에서 연회비 납부 ’독촉‘을 받는다. 노후 대책을 잘 마련해 놓은 분들에게야 대수롭지 않은 금액일지 모르겠으나 퇴직 후 별다른 소득이 없이 연금에 의지해 사는 사람에게는 만만치 않은 금액이다. 다음 해에 내야 할 연회비를 고려해 미리미리 비축해 놓아야지 하면서도 어디 그게 쉽게 되던가. 나처럼 속해 있는 모임이 몇 개 되지 않는 사람도 그럴진대 모임이 많은 사람에게는 적잖은 부담이 될 것이다. 작년 하반기에 이어 올해는 초반부터 친지의 경조사가 한꺼번에 몰려서 그럴 때마다 이전에 내가 받은 경조사 목록을 뒤지는 궁색한 짓을 되풀이하는 자신이 초라해 보이기도 한다. 축의금과 부의금 목록에 이름이 보이지 않는 친지의 경조사 소식에는 ’안도의 숨‘을 내쉬는 꼴이라니!
작년 말과 올해 초에는 유독 나와 같은 연배의 사람들이 유명을 달리한 소식이 많았다. 이름난 연예인과 정치인을 비롯하여 예전 직장 동료와 학교 동창에 이르기까지 한두 달을 간격으로 잇달아 세상을 떠났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읜 것을 시작으로 재작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기까지 숱한 죽음들을 보아왔지만 그냥 ’타인의 죽음‘으로 대해온 것이 이즈음 들어서는 ’바로 내 앞으로 바짝 다가온 듯한‘ 실감이 들었다. 십 년, 이십 년 전에도 또래 친구나 친지의 죽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때는 그냥 특별하게, 예외적으로 그 사람에게 닥친 불행이라는 생각밖에 없었던 것이 이제는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그럴 나이가 된 것이다. 앞에서 연회비 이야기를 했는데 사실은 지난달에 세상을 떠난 고등학교 동기동창의 일이 마음에 남아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친구는 지병이 악화되어 중환자실에 입원한 지 열흘쯤 지나 세상을 떠났다. 친구가 세상을 떠난 후 알게 된 사실인데 친구는 1월 초에 올해 연회비를 납부했다고 한다. 동기들 중 제일 먼저였다. 친구는 어쩌면 죽음이 임박한 순간에 연회비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런 절박한 상황에서 친구는 어떤 생각으로 연회비를 냈을까? 그게 그에게 세상을 떠나기 전 마무리해야 할 만큼 중요한 일이었을까, 나는 그 친구의 행위를 선명하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냥 덧없고 안타까움 같은 감정을 느꼈다. 친구가 세상을 떠난 뒤 아내와 아침 산책을 하면서 이 이야기를 했다. 나는 내 생각을 말하진 않고 그냥 사실만을 말했다. 내 말을 들은 아내가 이렇게 말했다. ’친구는 아마 죽는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겠지. 삶의 의지에 대한 표시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과연 그랬을까?
책상 서랍을 정리하다가 오래된 노트 속에 적어 놓은 글들이 있어 읽어 보다가 그중 몇 대목을 옮겨 적는다.
···그래, 먼 뒷날에 그냥 담담한 추억으로 남는 아빠면 족한 거지. 설움으로 남지 말고, 원망으로 남지 말고,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네 애비 떠난 뒤, 어느 날에 불현듯 생각이 날 때면 눈에 물기 조금 하고 입가에 조그만 쓸쓸한 웃음으로 그렇게 남으면 되지. 그리 큰 욕심은 아니겠지······.
···절여놓은 김장 배추 위에 슬쩍 앉았던 살얼음. 그 위로 비껴 떨어지던 겨울날 해질 무렵의 침침한 햇살, 바람 먼지 곱게 앉은 대청마루, 땟국 흐르는 얼굴로 자고 일어나 인기척 없는 고요한 집에서 혼자 울었던 기억, 골함석 지붕을 타고 떨어지던 낙숫물 소리, 그런 날 오후의 어둡고 조용하기만 하던 빈 방, 겨울밤 늦은 골목을 돌아 나가는 게 장수의 처량한 목소리, 안개 낀 이른 아침 학교 운동장에 조용히 떨어져 있던 감꽃들, 누우런 신작로 길에 줄지어 서서 흙먼지 뒤집어쓴 채 벌서고 있던 버짐나무들, 기름종이로 지붕을 얹었던, 신작로보다 지붕이 낮았던 구멍가게의 젖은 개 흙바닥, 높은 하늘에 박제처럼 떠 있던 솔개, 조용한 흙마당 뜨겁게 달구던 여름 오후 햇살, 배추꽃 피어 있던 남새밭, 다 삭은 남새밭 울타리에 젖어 있던 지린내, ······ 이런 한도 끝도 없는 기억들이 순간순간 떠올랐다가는 사라지고 뒤섞이기도 한다. 왜 이런 기억들은 하나같이 쓸쓸하고 슬플까? 나만 그런 걸까? 왜 별것 아닌 이런 작은 기억들이 사람의 마음을 스산하게 할까? 왜인지도 모른 채 쓸쓸해지고 까닭도 없이 서럽고 막막한 기억들.
정제호 산문집 『아빠, 죽으면 때릴 거야』에서 인용한 글인데 작가의 표현처럼 ’나는 왜 이런 글을 보면 눈가가 흐릿해지며 눈물이 핑 도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