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1
대학 1년 선배의 장례식에 다녀왔다. 올해는 대학 서클에서 그 선배를 처음 만난 지 꼭 50년이 되는 해다. 얼굴에 주름 하나 볼 수 없을 만큼 나이에 비해 젊고 건강하던 선배였다. 작년 6월 다른 선배의 딸 결혼식에서 본 것이 마지막이 되고 말았다. 사인은 심장마비라고 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초췌한 선배 부인의 손을 잡고 ‘왜 이런 자리에서 봐야 하느냐’는 말만 되풀이했다. 눈물이 났다. 조문에 동행한 후배 둘도 선배 부인과 포옹하며 등을 두드릴 뿐 입을 떼지 못했다. 조문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전철 안. 시공간이 어지럽게 얽힌 지난 50년 세월의 영상들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풍경 2
지난달 돌을 지낸 쌍둥이 외손주들이 우리 집에서 닷새를 지내다 갔다. 손주들은 뒤뚱거리다 넘어지기는 하지만 이제 제법 걷는다.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잠시라도 눈을 뗄 수가 없다. 빨래걸이 상단 철봉에 올라가 매달리고, 소파에 올라 등받이 위로 발을 들어 올리며 벽으로 오르려고 하고, 식탁 밑으로 들어간다. 한 아이를 잡아 오면 또 한 아이가 도망간다. 기어가는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온 식구가 ‘아이 감시에 총력을 기울인다’. 아내는 팔이 아프다며 여기저기 파스를 붙이고도 어느새 아이를 안고 있다. 아이는 할머니 품에 안기는 데 재미를 들여 할머니를 보기만 하면 팔을 내밀며 안아 달라고 조른다. 딸은 아기들 버릇 잘못 든다고 극구 말리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 귀여운 아기를 어찌 외면하겠느냐는 것이다. 닷새 동안 시달린 아내이면서도 제집으로 간 지 겨우 하루가 지났는데 벌써 아기들 동영상 보내라고 성화다.
친구의 사연이 생각난다. 무릎 관절 수술 후 바깥나들이를 거의 못하는 그 친구는 같은 동네에 사는 외손녀 둘을 보는 낙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고 했다. 그런데 최근 그 딸 가족은 호주로 이민을 갔다. 가끔 영상 통화를 한다고 하지만 곁에 두고 보던 즐거움에 어찌 비하겠는가. 사연을 이야기하던 친구가 눈에 선하다. 그 쓸쓸해하던 모습이.
풍경 3
아내와 함께 서울대 도서관에서 개최 중인 박완서 아카이브 조성 기념전을 보러 갔다. 재작년 말 김윤식 교수의 아카이브 조성 기념전이 열렸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 관람 기회를 놓친 적이 있어 일찌감치 서둘러 구경 간 것이다. 기념전은 작가가 10년을 산 구리시 아치울 자택의 서재(그대로 보존하여 옮겨온 것이라 한다)를 비롯하여 앨범, 일기, 편지, 메모, 읽던 책들, 생전에 사용했던 물건들 그리고 국내에서 출판된 작품 전부와 해외 번역본(작가의 작품 중 가장 많이 번역된 것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라고 한다)을 망라하고 있다. 13. 4년 전인가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하러 서울대를 와본 이후로는 처음이다. 서울대는 복잡하다. 넓고 건물도 많다. 단과대학마다 버스 정거장도 다르다. 전시회 구경을 마치고 전철역 가까운 초밥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18,900원짜리 점심 세트였다. 그래도 아내는 즐거운 나들이였는지 한 달에 한두 번은 이렇게 전시회 관람도 하고 맛있는 식사도 하자고 한다. 집에 돌아와 서가를 뒤져 세계사에서 발간한 박완서 소설전집 중 7권인 『엄마의 말뚝』을 꺼내서 아내의 책상 위에 얹어 놓았다. 한번 읽어 보라는 의미로. 단편소설 「엄마의 말뚝 1,2,3」은 박완서 선생의 작품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다..
(표지 사진은 박완서 선생의 서재 풍경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