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월사와 창경궁
풍경 1
겨울 3개월을 쉬고 다시 도봉산 망월사에 갔다. 2년 전 처음 망월사라는 절을 알고 난 뒤로 한 달에 한 번꼴로 갔다. 미리 갈 날을 정해 놓으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갔다. 그러다가 작년 12월부터 올 2월까지 산행을 쉬었다. 겨울 산행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날씨가 추운 것은 견딜 만했지만 빙판길은 위험했다. 1시간 남짓의 가파른 돌길은 내린 눈이 그대로 얼어붙어 때로는 엉금엉금 기어야 했다. 그런 길을 아이젠도 없이 올랐다가 미끄러져서 큰 부상을 입을 뻔했다. 작년 2월 두 시간이나 걸려 도착한 망월사 경내에서 참배를 마치고 하산하려는 한 아주머니를 만났다. 며칠 전 내린 눈으로 산길이 꽁꽁 얼어 있던 날이었다. 아이젠도 없이 산을 올라온 나를 보고 놀란 그분은 ‘나이 드신 분이 무슨 무모한 짓이냐’며 나무라듯 했다. 내려가는 길이 더 위험하다며 조심하라는 말을 몇 번이나 당부했다. 산을 내려가면서도 마음에 걸리는지 도중에 멈춰 서서 나를 올려다보았다.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이 이야기를 했다가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 아내의 만류를 뿌리치고 나선 산행이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아이들에게도 이 일을 알렸다. 온 가족의 ‘감시’로 결국 나는 겨울 산행을 접어야 했다. 좀이 쑤셔 도중에 몇 번이나 ‘금기’를 어기고 싶었지만 여의치 못했다. 결국 겨울 3개월을 쉬었다.
남쪽에서는 이른 꽃 소식이 들리고 동네 공원에서도 성미 급한 몇몇 나무들은 엷은 ‘화장’으로 봄맞이 치장을 시작하고 있었지만, 도봉산의 나무들은 아직 겨울이었다. 여전히 칙칙하고 메마른 모습이다. 속으로는 치열한 준비로 몸이 달아 있겠지만 겉으로는 시치미를 떼고 있는 것이다. 날은 포근했지만 아직 봄을 느낄 만한 풍경은 아니었다. 석 달 만의 산행길은 고단했다.
풍경 2
아주 오랜만에 창경궁에 갔다. 이상하게도 서울의 다른 궁궐에 비해 창경궁에는 잘 가게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내게는 가장 추억이 많은 곳이 창경궁이다. 창경궁은 내가 다닌 초등학교에서 가까운 곳이어서 갈 기회가 많았었고.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나들이 추억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닌 1960년대에는 일제가 만들어 놓은 동물원과 (지금도 남아 있는)식물원, 유원지(춘당지와 내농포를 합해서 만든 연못으로 뱃놀이하던 곳)가 그대로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두 해 전 여름, 창경원에 갔었다(가족 모두가 갔는지 아버지와 나만 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때 유원지 옆 바위 위에서 미군 장교와 내가 찍은 사진이 있었다(그 사진이 담긴 앨범을 잃어버려서 희미한 기억만 있을 뿐이다). 종이배 모양의 장교 모자를 쓰고 안경을 낀 미남자였다. 그는 환하고 인자하게 웃는 모습이었는데 나는 왠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고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아마 그가 내게 무슨 말을 걸었던 것 같다(물론 영어로였을 것이다). 창경궁을 생각하면 늘 그 사진이 떠오른다.
창경궁은 태종이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준 후 살기 위해 지은 수강궁을 성종 대에 확장한 것이라고 하는데, 조선시대 왕족의 곡절 많은 사연이 남아 있는 곳이다. 단종이 세조에게 양위 후 거처하다 유배 갔으며,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곳(남문인 선인문)이고, 왕비에서 후궁으로 강등된 장희빈이 거처(취선당)하면서 신당을 짓고 중전(인현왕후)을 모해한 곳이다. 또한 정조가 탄생하고(경춘전) 승하했으며(영춘헌), 헌종이 탄생하고 중종이 승하했다(환경전). 자경전은 혜경궁 홍 씨를 위해 지은 집으로 혜경궁은 이곳에서 『한중록』을 집필했다.
창경궁에 오면 소설 두 편이 떠오른다. 최인훈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과 최인호의 「돌의 초상」이다.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의 2장과 12장에는 화자인 구보 씨가 창경원 동물원에 와서 공작과 원숭이, 낙타와 호랑이 같은 동물들을 구경하며 온갖 상상에 빠지는 대목이 나온다.
중편 소설인 「돌의 초상」은 공원에 버려진 노인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내용인데, 인간성 부재의 비정한 사회 세태를 표현한 작품이다. 소설에서 노인이 버려진 곳이 창경원이라고 명시하고 있진 않지만 누가 보아도 그곳이 창경원임은 분명하다. 6,70년대 벚꽃이 만발하는 봄이면 전국 각처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창경원은 북새통을 이루었고 그 와중을 이용해 노망 난(요즘 말로 치매에 걸린) 노인을 버리는 사례가 심심찮게 일어나곤 했다. 소설에 나오는 묘사 가운데 지금도 기억나는 대목이 있다. 바람에 날리며 떨어지는 벚꽃을 ‘난분분하다’라고 묘사했는데 이는 고등학교 때 국어 교과서에서 배운 김진섭의 수필 백설부에 ‘백설이 난분분’하다는 표현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소설 속의 구보 씨처럼 ‘대문까지 남은 길을 천천히’ 걸어갔다.
최인훈의 소설 2장의 「창경원에서」는 이렇게 끝난다.
‘문을 나선다. 한편으로 들어서는 사람들, 눈길이 마주치는 것이 어쩐지 부끄럽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 그래서 구보 씨는 땅을 보면서 로터리 쪽으로 빨리 걸어갔다. 새벽에 매음굴을 빠져나가는 오입쟁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