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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디 Jan 11. 2024

[아이비리그 아이디어] 솔로지옥 3과 프로스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에 개인적 의미가 생긴 계기가 솔로지옥??

    <솔로지옥> 시즌 3 10, 11화를 언니와 같이 관람중, 민우-시은-규리 삼각형을 따라가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그중 가장 크게 남는 생각은 '정말 작은 차이로 선택이 아예 바뀔 수 있구나' 였다. 시은씨, 규리씨 둘 다 어디 가서 외모로 꿀리시는 분들이 아니시고, 둘 다 자신만의 매력이 충분히 있다. 그런데 시은씨와 민우씨 사이에 좀 더 마음이 통하는 부분이나 설렘이 컸고, 또 규리씨가 보여주신 세련되지 못한 모습들이 민우씨의 선택에 크게 작용했다. 방송에서는 그 과정의 드라마틱한 연출 때문에 정말 큰 차이가 그 선택을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리고 이건 내가 규리씨를 대변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냥 사람 관계상에서, 메타적인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사람의 한 면이 마음에 안 든 것이라 정리할 수 있다. 그런데 또 민우씨가 만약 규리씨의 성격적 결함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었더라면 그의 선택이 완전히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출처: SBS 뉴스

    11화가 끝난 후, 난 아침부터 읽고 있던 로버트 기요사키의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를 재개했는데, 놀랍게도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란 시가 등장했다. 이 시는 8학년때부터 알고 있었다. 배웠을 때 당시에도, 최근까지도, 그저 가지 않은 길을 택한 화자가 사회의 편견에 불구하고 용감한 선택을 했다, 라는 개념적인 의미로만 이해했다. 그렇지만 솔로지옥을 본 후 시를 한 번 더 자세히 살펴보니, 내 해석의 방향도 의미도 완전히 달라졌다. 

출처: 10x Lessons

    노란 숲에서 두 길이 갈리고, 여행자는 겨우 한 사람이니 두 길 다 걸어갈 수는 없어 최대한 열심히 살펴보고 비교한다 (=솔지에서 참가자들이 이성 참가자들을 비교하며 어느 분이 더 나은지 판단하는 과정). 한 길이 정말 예쁜데 다른 길도 "just as fair" 그만큼이나 예뻐서 (=솔지에 외모 1등만 모아놨으니 어느 한 참가자를 선택하기 어렵고, 결국 취향차이로 선택이 갈리는 현상) 서로 비등비등하다 ("Though as for that the passing there had worn them really about the same" = 덜 걸어진 길을 갔지만 사실은 두 길 다 걸어서 평평해진 정도가 거의 흡사했다는 걸 표현). 시 끝에서의 화자는 somewhere ages and ages hence, 즉 80세 백발노인쯤이 되어서 이 선택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한다.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두 길 중에 자신은 좀 덜 걸어진 길을 택했고, 그게 모든 차이를 만들었다. 민우씨 마음의 결정에 규리씨의 결함적인 한 부분이 결국에 큰 차이를 만들어낸 것과 같지 않은가. 

출처: 위키피디아 (Wikipedia)

    나는 "가지 않은 길"이 아까 말한 '용감한 선택'의 거창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시라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사람들이 어떤 삶의 기로에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 시를 접했는지에 따라 해석이 그리 될 수도 있겠지만, 언어를 유심히 살펴보면 화자는 계속해서 두 길이 정말 비등비등했다는 것을 강조하고, 그 선택의 이유는 개인적 취향 차이였다는 것을 설명해 준다. 그리고 나중에 노인이 되어서 회상하는 것도 그렇고, 성공과 실패의 기로에서 한 거창하고 무거운 선택을 통해 얻은 인생레슨을 전파한다기보다는, 솔로지옥의 감정적 선택, 로맨틱한 관계상의 조금 더 소박한 선택을 통해 배운 것을 후대에게 공유하는 것 같이 읽힌다


    긴 시간 동안 "가지 않은 길"이 내 머릿속에서 1+1=2라는 개념같이 원론적으로만 존재해서 늘 아쉬웠다. 하지만 <솔로지옥> 시즌 3과 이 시를 연결지음으로써 마치 시장에서 사과를 하나 사고 또 하나 더 사서 두개를 사게 되는 걸 목격함과 같이, 이 시가 실생활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와 더불어 나에게 개인적인 의미도 생기게 되어 너무 신이 났다. 시가 물론 이미 존재하는 대로, 적힌 대로 의미가 있지만 그게 나에게 와닿지 못하고, 내가 느끼는 바가 없다면 그 시는 나에게는 의미가 없게 되어 버리지 않는가


    이런 연결을 지을 때의 그 찰나에는 불꽃과 같은 즐거움과 만족감이 확 피어오르면서도, 그 감정들이 식자마자 바로 '아, 이런 연결 짓는 걸 제일 잘하는 나는 정말 영어 전공이 맞겠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피식 웃게 된다. 그래. 이런 소소한 생각들 하면서 벌어먹고 사려면 생각들이 정말 탁월해져야 함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계속 브런치에 글을 올리며 연습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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