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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디 Jan 07. 2024

고양이가 비둘기 사냥하기를 기다리며

인간은 세상의 주인이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가 사바나에 걸어들어갈 때 사자들이 "어? 인간 납셨다!" 하며 그때 우리가 볼 수 있도록 바로 사냥을 시작하지는 않는다. 자연은 우리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환경사상가 알도 레오폴드 (Aldo Leopold) 가 그의 Land Ethic (대지 윤리) 에서 피력하듯이, 이를 받아들이는 호모 사피엔스는 그 순간부터 지구환경의 정복자가 아닌, 일반 멤버이자 시민으로 살아간다. 오늘 이런 사실을 다시금 느낄 계기가 있었다. 


흰여울 문화마을의 바닷거리를 걸으며 절벽 쪽을 내다봤을 때, 회색 고양이 한 마리가 주변 건설 현장의 계단 아래로 몸을 눕혀 슬금슬금 앞으로 진출하고 있었다. 집중된 시선의 방향을 따라가니 비둘기 한 마리가 절벽 밑에 서 있었다. "아픈가?" 아빠의 추측은 저 비둘기가 다쳤거나 아프다는 것이었다. "저게 또 홀로 있잖아. 무리가 없고." 엄마는 비둘기가 멍청하다고 생각하셨다. "고양이가 근처에 있는데 저렇게 가만히 있다니." 언니랑 나는 주문이 걸린 듯 하염없이 고양이를 쳐다봤다.


우리가 기다린 10분 동안 고양이는 약 10센치 정도만 앞으로 더 나아갔고, 그새 비둘기는 다친 것도, 멍청한 것도 아니었던 듯이 고양이의 움직임을 눈치채고선 저 멀리 물웅덩이 쪽으로 뒤뚱거리며 도망갔다. 실패. 아빠는 고양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셨고 우리 여자 셋도 약간의 실망감을 안고서는 원래 계획대로 근방 카페에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사진을 찍으러 이동했다. 


기다려도 진행되지 않는 사냥. 애타게 바라보고 있어도 손끝을 벗어나는 목표물. 마치 우리가 파트너로 점찍은 이성을 쫓을 때, 또는 중요한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기를 애절히 원할 때처럼, 자연은, 그리고 우리 삶 속의 모든 일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계획하는 그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다. 모든 것은 자연이 지정한 순서대로, 자연이 출간한 이야기로. There is a bigger plot and we're just dropped in it like everything else. The world is a movie and we are mere actors dropped in it, like all who star in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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