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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디 Jan 23. 2024

[아이비리그 아이디어] '엄습'과 '응시'

역시 별명이 Heidictionary 라 이름대로 사는 건가...ㅋ


까먹고 있던 단어는 경험해봐야 기억이 잘 난다. 

['WORDROW' 국어사전]


오늘의 단어는 ‘엄습’. 엄하고 습한, 까맣고 끝이 없는 숲길을 말하는 듯한 단어이다. 

1. 뜻하지 아니하는 사이에 습격함.

2. 감정생각감각 따위가 갑작스럽게 들이닥치거나 덮침.

[네이버 사전]


예문은, '나보다 키가 크면서 더 어리고, 더 깡마르면서도 더 골반이 커서 더욱더 몸매가 날렵해보이는 여자아이들이 가득한 오디션장에서 기다리는 도중, 불안감이 엄습했다.'


2024년 1월 14일 일요일, 에스팀 엔터테인먼트에서 개최한 서울패션위크 오디션장에서, 바람에 깎여 날렵해진 기둥같은 맨 허리들이 모인 추운 대기실에서, 내 손은 자꾸만 피부껍질과 근육밖에 안 남은 내 배와 허리를 슬쩍슬쩍 꼬집어댔다. 내색하지 않으려 했지만 오디션 내내 살짝 멘붕 상태였다. 


불안감이 엄습해 온 이유는, 내가 최근까지만 해도 나 자신을 어떻게 봐 왔는지를 알아서인 것 같다. 내가 나를 보고, ‘아, 나 좀 괜찮네?’ 라고 생각하게 된 건은 정말 최근이다. 살을 확 빼고, 매일 식단조절에 운동을 하고 나서야 내 얼굴은 예쁘고 슬림하게 보이기 시작했고, 그제서야 나의 외모적 자존감이 바로 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난 항상 몸이 예쁘다는 칭찬, 늘씬하고 쭉 뻗어서 모델 해야겠다는 칭찬을 숱하게 듣고 자랐어서 ‘아, 난 좋은 몸매를 가지고 있지' 생각해 온지 오래였지만, 내가 거울에 내 모습을 보고 ‘아, 나 얼굴이 예쁘다' 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겨우 지난 여름이다. 날 때부터 조막만하면서도 화려한 얼굴에, 예쁜 몸매까지 겸비하고 있는 연예인들이 가끔씩 너무 부러워지는 이유이다. 내 얼굴을 거울에 직면할 때의 나는, 얼마나 위태로워지는지를 잘 알고 있기에. 깊은 구덩이 위의 외줄에 서 있는 듯한, 그 식은땀 흐르는 느낌이 얼마나 싫은 느낌인지 알기에. 내가 긴 팔다리와 예쁜 몸을 타고났어도, 좀 총명하게 생긴 듯한 눈과 선량한 웃음이 있어도, 절대로 남들의 눈에 예쁘게 보이지는 않을 거라 단정지으며 살아왔기에. 

그래서 얼굴도 예쁘장하면서 몸매마저도 나를 이겨먹는 그 애들이 부러웠나보다. 몸매가 그나마 내가 가진 무기라 생각했는데. 몸매도 비등비등하고 얼굴에서마저도 져 버리면 내게는 뭐가 남느냔 말이다. 


그 오디션장에서 내가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던 것은 그나마 내가 이제껏 해 온 운동량, 최근에 새로 다시 찍은 멋있는 프로필, 그리고 달라진 나를 향한 주변 많은 지인들의 피드백에 대한 자신감이 있어서였다. 나름 멋진 나를 만들어 왔다고, 준비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말 준비되었을지도 모른다. 그저 브랜드들이 원하는 이미지에 부합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에 나는 에스팀의 여러 전속 모델들과 수강생에 밀려, 서울패션위크 라인업에 뽑히지는 못했다. 



['바벨의 도서관_정신분석&인문학']


경험으로 기억난 단어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응시'. 

눈길을 모아  곳을 똑바로 바라봄.

시험에 응함.

[네이버 사전]


응시하는 행위, 관찰이자 시험이다. 오디션날, 환멸감 높은 자책을 떨쳐내고 싶은 마음에 나는 필사적으로 ‘무엇이 나를 특별하게 만드는가' 를 생각해 보았다. 그것이라도 하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창피하게 울어버릴 것만 같아서. 이 순간을 극복해 내야만 한다는 본능적 직감이 들어서. 그래서 도달한 결론은 바로 이것이다. 


나는 일상 속의 특별함을 응시할 줄 안다. 


이것은 내가 부모님과 선생님들께 들어온 평가들, 그리고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알고 있는 것에 기반해서 명확해진 결론이다. 나는 남들이 보지 못한 걸 볼 수 있다. 또, 생각이 깊다. 


예를 몇 가지 들자면, 나는 보도블럭에 떨어져 있는 가을 단풍을 보고 별이 가득한 밤하늘이 바로 우리 발밑에 있는데 우리는 굳이 저 높은 곳을 보며 그 광경을 찾으러 한다는 내용의 시를 2학년 때 썼다. 우리 아파트 밑에 죽어 있는 비둘기를 보면서 울지만 치킨을 먹을 때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나의 모습을 다시 생각하며 원효 대사와 해골물의 이야기에 빗대어 수필을 썼고, 우리나라에서 말도 안통하는 채로 온갖 차별을 받으며 살아가는 아프가니스탄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서울 지하철을 영원히 해메게 되는 한 아프가니스탄 소녀를 통해 전달했다. 이 밖에도 내 눈과 뇌가 인문학적으로 특별히 작용한 순간들이 많다. 이것이 바로 나를 특별하게 만드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내가 나 자신에게도 특별하게 느껴지지 못하는 상황일지라도, 갑자기 자존감이 속절없이 하락하는 순간일지라도,  내 그 특별한 두 눈으로 나 자신을 응시함으로써, 나 자신을 특별하게 만들면 되지 않은가. 그냥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나의 모습들조차 놓치지 않고 바라보며 특별한 점을 찾아, 내 자존심이 바로 설 수 있는 공간을 내가 만들어주면 되는 게 아닌가?


이 생각을 한 뒤로부터 내 기분은 정말 거짓말같이 좋아졌다. 이것만으로도 내가 내 자신에게 특별함을 증명한 바 아니겠는가. 


'엄습'과 '응시' 역시, 지난글의 프로스트 시처럼, 나에게 개인적인 의미가 생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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