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넷
묵묵하게 채워진 시간이 정갈하게 머무는 공간. 400년의 세월이 산천을 품은 민 씨 종갓집 고택. 아버지는 그 고택 기둥의 갈라진 틈을 메우려 할 때 엄마를 처음 만났다고 했다. 아늑한 자태의 고택에 우직한 대들보와 들보는 평창으로 이어진 하봉 자락에서, 단아한 추녀는 북평면에서 중봉 쪽으로 오르다 보면 조그마한 사찰이 나오는데 그 사찰 뒤편 숲길에서 베어졌으며 하다못해 서까래며 마루며 올망졸망한 문살까지 갈왕산에 터를 잡았던 나무로 영월 민 씨 문헌공파 고택이 지어졌다고 했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았다. 나무에 족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400년 전 벌목한 장소를 그리 세세하게 알 수 있단 말인가.
“사실이야. 네 엄마가 다 말해줬거든. ······아니 엄밀히 말하면 대들보지.”
술에 취했는지 아버지는 도통 알아듣지 못할 소리만 했다. 하지만 경계의 무너짐엔 이해가 필요하니 나는 아버지의 말을 우선 믿어보기로 했다. 대들보가 하는 소릴 직접 들었는지 묻자 아버지는 고개를 저었다.
“나무의 소리를 들은 건 네 엄마였어. 대들보의 말을 나한테 그대로 전한 거지.”
갈왕산에 자기가 뿌린 씨들이 잘 자랐을 거라며 굵은 가지 몇 개만 있어도 갈라진 몸뚱이는 채우고도 남으니 제발 자기 새끼들로 속을 채워달라 애원했다는 대들보. 아버지는 자신의 팔자까지 꿰고 있는 엄마의 말을 믿지 않을 수가 없었으므로 그려준 약도대로 찾아갔다고 했다.
“그런데 그곳에 정말 금강소나무 군락이 있지 뭐냐.”
“그래서요.”
나는 7살도 아닌데 아버지의 말에 또 솔깃해하고 있었다. 술기운 때문인지 엄마에게 숲의 정령이 깃들었대도 이제 믿을 것만 같았다.
“맞아. 신병을 앓았으니까. 다시 만난 건 이듬해 비운사에서였어.”
“······.”
무당이 되기보단 비구니의 길을 걸으려 했던 종갓집 큰딸과 겁살의 팔자를 타고난 떠돌이 목수. 그리고 그사이에 내가 끼어 있었다. 아버지를 만나 산사를 떠나게 된 엄마가 신병에 시달리면서도 신내림을 거부했던 건 뱃속에 있던 내게 신이 들어설까 두려워서였다고. 아버지가 맘에 안 든다는 듯 풀린 눈으로 날 한참 노려봤다. 엄마한테도 그렇게 무책임했는지 물으며 나도 아버지를 노려봤다.
“네 엄마가 엄마면 난 아빠지 왜 아버지냐?”
“요양원 몇 군데 봐뒀으니까 주말에 같이 둘러봐요.”
아버지가 리모컨을 찾아 눌렀다. 기품 있는 기와집 한 채가 화면에 등장했다. 아버지도 나도 텔레비전만 노려보며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