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을 바꾸면 길이 보인다
"만약 당신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목표를 너무 높게 잡았거나 너무 낮게 잡았기 때문이 아니라 목표를 측정하는 방식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
경영학에서 나오는 말이다. 우리는 지금 한국의 저출산 문제를 숫자라는 잣대를 통해 목표 측정을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국 정부는 2006년부터 2023년까지 약 380조 원의 예산을 저출산 대책에 쏟아부었지만, 합계 출산율은 0.72명(2023년 기준)으로 OECD 최하위이다. 2024년 0.75명으로 소폭 상승을 했지만 저출산을 극복했다고 보기 어렵다. 수많은 정책에도 불구하고 흐름을 돌리기가 쉽지 않다.
출산율이 내려가는 이유는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이 어렵고 힘들기 때문이다. 치솟는 사교육비, 높은 부동산 진입 장벽, 맞벌이 부부의 고된 육아 현실. 부모는 아침 일찍 출근하고 아이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빡빡한 스케줄에 시달려 부모와 아이 모두 지쳐버리는 구조이다.
이렇게 힘든 구조에서 젊은 사람들이 아이를 낳고 싶을까. 법과 제도를 통해 출산을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있지만 현실은 정책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생각을 전환해서 숫자에 매달리기보다는 인구 감소를 기회로 보면 어떨까.
세계를 보면 인구수가 적어도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크고 삶의 질이 높은 나라들이 존재한다. 내가 지금 거주하고 있는 네덜란드도 그중에 하나이다. 숫자가 아닌 사회 시스템, 교육, 협력을 통해 국력을 키우고 있다.
네덜란드의 인구는 현재 약 1,790만 명이다. 1980년대는 약 1,400만 수준이었다. 40여 년간 완만하게 증가했지만 여전히 한국의 3분의 1 규모다. 그럼에도 세계적 영향력을 지닌 나라다.
흥미로운 점은 네덜란드의 합계출산율도 1.43명(2023년 기준)으로 인구 대체 수준인 2.1명에 한참 못 미친다는 것이다. 65세 이상 인구 비율도 20.5%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그런데도 네덜란드의 인구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비결은 개방적인 이민 정책이다. 출생아 수보다 사망자 수가 많아도 매년 순유입되는 외국인이 자연 감소분을 상쇄하고 남는다. 네덜란드 정부는 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부족과 연금 재정 압박을 해소하기 위해 이민 정책을 확대해왔으나 최근 반이민 정서가 확산되면서 정책 기조가 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고숙련 인력 유치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줄어드는 인구를 선별적 이민 정책을 통해 관리하고 있다.
그렇다면 네덜란드는 단순히 이민에만 의존하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적은 인구에도 불구하고 세계 5위권의 농식품 수출국이자 글로벌 혁신 강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적은 내수 시장의 한계를 일찍이 인식하고 글로벌 시장 개척에 집중해 왔다. 인구가 적어도 세계를 무대로 삼으면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동시에 네덜란드는 자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도 소홀하지 않는다.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문화가 정착되어 파트타임 근무가 일반화되어 있고 육아 친화적인 직장 문화가 뿌리내려져 있다. "저녁이 있는 삶"을 현실로 만든 나라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환경만큼은 우리보다 한결 여유롭다. 선별적 이민 정책을 통해 인구를 채우면서 자국민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가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국력은 단순히 사람 수가 아니라 그 사람들이 얼마나 행복하고 생산적인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AI 시대, 대학의 의미가 흔들리고 있다. 오픈AI 창업자 샘 올트먼은 "내 아이들은 대학에 보내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은 도발적이지만 많은 이들이 공감한다. 우리의 대학은 배움보다 취업을 위한 통로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대학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고 대학 입시에 대해 원점에서 고민을 해야 한다.
대학이 변하면 입시 위주의 경쟁도 완화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사교육 시장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게 될 것이다. 네덜란드처럼 사교육 시장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도 가능할지 모른다.
교육 개혁과 함께 육아 환경도 바뀌어야 한다. 네덜란드는 육아 친화적 사회로 유명하다. 정부가 보육비의 상당 부분을 보조하고, 파트타임 근무가 일반화되어 있으며, 유연근무제가 자리 잡혀 있다. 부모가 번갈아 가면서 주중에 자녀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구조다. 핵심은 '직장이 육아를 지원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실제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육아 관련 법 제도는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 육아휴직,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출산휴가 등 법으로 명문화된 제도는 상당히 우수하다. 문제는 이를 사용할 수 있는 곳이 한정적이라는 것이다.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이 아니면 육아 관련 제도를 사용하기 어렵고, 시간제 근무를 선택하면 승진에서 밀려난다는 암묵적 불이익이 존재한다. 법에 명문화되어 있는 것만이라도 제대로 지켜진다면, 지금보다 훨씬 육아 친화적인 환경을 만들 수 있다.
줄어드는 인구는 개방적인 이민 정책으로 보완할 수 있다. 물론 최근 네덜란드도 반이민 정서가 커지고 있지만, 여전히 고숙련 인력 유치는 계속되고 있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는 더 창의적이고 역동적이다.
인구 감소는 분명 심각한 문제다. 하지만 수년간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면, 이제는 숫자보다 방향을 바로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저출산을 위기로만 볼 것이 아니라 사회 구조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 대학이 본질로 돌아간다면 교육 정책의 변화를 통해 아이를 키우기 쉬운 사회가 될 수 있다. 기업이 현재의 이익보다 먼 미래를 보는 관점에서 육아 친화적인 환경을 만들어 준다면 아이를 좀 더 낳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 이민 정책에 대해 생각을 바꾸면 줄어드는 인구를 어느 정도는 만회할 수 있다.
관점을 바꾸면 길이 보인다.
인구 감소를 위기로만 볼 것인가 아니면 성장 방식을 재설계할 기회로 볼 것인가. 우리는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더 많은 사람으로 더 많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양적 팽창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지구는 무한하지 않고 우리 세대만의 것도 아니다. 이제는 더 나은 삶과 지속 가능한 구조를 만드는 질적 전환으로 나아갈 때다.
숫자에 집착하는 순간, 우리는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다. 사람답게 사는 것, 다음 세대에게 살만한 세상을 물려주는 것. 저출산은 경고등이 아니라 방향을 바꾸라는 신호다.
네덜란드가 보여주듯 적은 인구로도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사느냐가 아니라 그 사람들이 얼마나 행복하고 생산적으로 사느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출산율을 0.1명 올리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낳고 싶은 나라, 살고 싶은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진짜 목표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