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김치에서 첫 매출까지
네덜란드에 오기 전 호기롭게 친구들에게 이야기했다.
"요즘 K푸드가 대세니 네덜란드가서 김치 만들고 음식 장사해야지."
"멀 한다고? 너가 김치를 만들고 장사를 한다고. 김치 만들어본 적 있어?"
"없지. 주말에 그래도 요리를 해보았으니 되지 않겠어."
"그러지 말아라. 괜히 고춧가루 썩히고 스트레스만 받는다."
누구도 나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았다. 하긴 나도 말은 했지만 구체적인 것은 하나도 없었다. 김치는 한 번도 만든 적이 없었고 장사의 "장"자도 모르는 직장인이었다.
도착하자마자 김치를 만들지 못했다.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기에 두려운 마음이 있었다. 김치를 사먹으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문제는 사먹는 김치가 가격도 비쌌지만 맛이 아쉬웠다. 하지만 선뜻 행동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았다. 매일 하는 요리와 김치는 차원이 달랐다.
그러다 아른헴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 분을 따라 회원제 마트에 갔다가 운명적으로 무를 만났다. 네덜란드 일반 마트에는 무가 없다. 외나무 다리에서 무를 만난 느낌이었다. 더 이상 피할 수가 없었다.
"그래 해보자. 맛이 없으면 익혀서 먹으면 되지."
2024년 9월 29일, 첫 김치.
배추를 절이고 속을 만들어 맛을 보았는데 나쁘지 않았다. 손이 많이 가기는 하지만 생각보다 할만 했다. 배추 하나 하나를 김치로 변신 시키기 시작하고 맛을 보았다. 엄마가 해주던 맛까지는 아니여도 괜찮았다. 아이들도 신기한 지 같이 버무리고 첫 김치를 무사히 마무리했다.
시작하기 전에는 할 것이 많아서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막상 결과를 보니 도전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김치는 우리 집 밥상에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해가 바뀌어 2025년 어느 날, 아이들 학교에서 국제 음식 축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집에 놀러오는 한국분들에게 음식을 해주면 맛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내 음식을 평가 받고 싶어졌다. 외국 사람들은 내 음식을 어떻게 생각할까.
참가를 결정하고 회의에 참석해보니 많은 이들이 이미 김치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 먹는 김치 맛이 아쉽다며 진짜 한국 김치를 원했다. 김치가 승산이 있을 것 같았지만 김치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아서 닭갈비와 소불고기로 진영을 갖추고 출전을 했다.
2025년 5월 24일, 국제 음식 축제.
긴장된 마음으로 첫 손님을 맞이했다. 그는 생소한 음식이기에 이런 저런 질문을 하고 매콤한 닭갈비를 주문했다. 맛을 본 그의 반응은 놀라움이었다. 떡을 먹으면서 자기가 떡볶이를 안다고 했다. 닭과 떡의 맛이 훌륭하다며 하나 더 주문을 했고 준비한 음식은 모두 팔렸다. 결과를 알 수 없기에 양을 적게 준비했다. 매출은 145유로였다. 수익은 전부 기부했지만, 내게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성과를 계속 이어가지는 못했다. 그 다음 단계를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 수가 없었고 시간은 또 그렇게 흘러갔다.
아이들 학교에서 과일 자르기 봉사 활동을 하기에 일주일 2번씩 학교를 간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 일하는 분들과 인사를 하게 되고 친분이 쌓이게 되었다. 그 중 한 관계자 분이 나에게 하나의 요청을 했다.
"김치를 맛있게 만든다고 하는데 정식으로 팔 생각이 없어?"
"있죠. 방법을 몰라서 못하고 있어요."
"메뉴를 정해서 나에게 알려줘. 그럼 내가 주문을 받아서 알려줄게."
생각하지도 못했던 질문에 깜짝 놀랐지만 이 기회를 잡고 싶었다. 김치, 닭갈비, 소갈비찜으로 메뉴판을 만들어 그녀에게 보내주었고 그녀는 나에게 주문 받은 내용을 알려주었다.
2025년 9월 15일, 첫 정식 판매.
첫 주문으로 김치 15개, 닭갈비 10개, 소갈비찜 6개가 들어왔고 내가 만든 음식을 고객들에게 양도를 했다. 내 손을 떠난 음식들. 과연 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국제 음식 축제 때의 경험이 있어 맛에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떨리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엄지척과 칭찬이 이어졌고, 다음 판매 일정을 묻는 이들도 있었다. 그중에는 일본 축구 국가대표 오가와 고키 선수도 있었다. 김치를 맛있게 먹었다며 다시 주문하고 싶다고 했다.
첫 정식 매출, 300유로. 출국 전 농담처럼 던진 말이 현실이 된 순간이었다.
작은 시작이 삶을 바꾸고 있었다. 조언을 해주는 사람도 생겼다. 한국 음식의 기본은 밥이 있어야 하니 밥까지 넣어서 도시락으로 만들어 보라고 하는 사람. 컨셉과 계획을 세워서 제대로 판매를 해보라고 하는 사람. 수기로 항상 할 수 없으니 구글폼을 만들어 해보라는 사람 등 생각하지 못했던 말들을 해주었다. 김치 하나가 사람들과의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주었다.
스티븐 킹은 이렇게 말했다.
아마추어는 영감을 기다리지만 프로는 그냥 일어나서 일을 시작한다.
내가 김치를 처음 만든 날, 나는 완벽한 레시피도 장사 계획도 없었다. 그저 회원제 마트에서 만난 무와 마주했을 뿐이었다.
세상의 많은 성공 스토리는 완벽한 준비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나이키의 창업자 필 나이트는 일본에서 운동화를 수입해 자기 차 트럭에서 팔며 시작했다. 에어비앤비의 창업자들은 월세를 내지 못해 에어매트리스를 거실에 깔고 아침 식사를 제공하며 시작했다. 그들 모두 구체적인 목표나 완벽한 계획보다 "일단 해보는 것"을 선택했다.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움직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 해보는 것이 정답이다. 그것이 음식이건 글이건 유튜브이건 인스타건 일단 만들고 써보고 올려보는 것이다. 처음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그런데 꾸준히 하나하나 하다 보면 길이 조금씩 보인다. 내 경우 첫 김치를 만들고 몇 달간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가족끼리 김치를 먹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경험이 쌓여 국제 음식 축제에 참가할 용기를 주었고, 축제에서의 경험은 다시 정식 판매로 이어지는 길을 열어주었다.
만약 영어가 부족하다고 주저하며 봉사를 나가지 않았다면 관계자와의 대화는 없었을 것이다. 김치를 만들지 않았다면 그녀의 제안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다음 문으로 가는 열쇠가 되었다.
중국 속담에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이 있다. 내가 300유로를 벌기까지 걸린 1년이라는 시간은 김치 하나를 만드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그 첫 걸음이 없었다면 지금 이 자리도 없었을 것이다.
첫 정식 판매의 성공은 나에게 확신을 주었다. 이제 2주에 한 번씩 주문을 받고 음식을 팔기로 했다. 아직은 아이들 학교라는 작은 무대지만, 이 작은 성공이 더 큰 도전으로 이어질 것이라 믿는다.
1년 전 친구들에게 던진 농담 같은 말이 현실이 되었고 그 현실을 더 크게 키우려고 한다. 중요한 건 완벽한 계획이 아니라 준비가 덜 되었더라도 일단 시작하는 용기였다. 김치를 통해 한 계단 올라갈 수 있게 되었다. 그 다음 계단을 위해 한 걸음 또 나아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