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를 살아가야할 방법
검은 백조.
예상치 못한 사건이 세상을 뒤흔들 때 우리는 그것을 이렇게 부른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의 저서 <검은 백조>에서 소개된 개념이다.
1994년 인터넷이 대중화되었을 때, 2007년 아이폰이 등장했을 때, 2016년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꺾었을 때 나는 그냥 구경꾼이었다. 새로운 흐름을 읽지 못하고 그저 사용자로만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2022년 11월 30일, 오픈AI의 챗GPT가 세상에 공개되었을 때 내 삶에 처음으로 검은 백조가 나타나게 되었고 거대한 파도가 오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AI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었다. 새로운 종의 등장처럼 다가왔다. 고대 그리스 신화 속 인간의 일을 대신하던 헤파이스토스의 황금 하인과 청동 거인 탈로스처럼 인류는 오래전부터 자기 노동을 대신할 존재를 꿈꿔왔다. 이제 그 꿈이 현실이 되려 하고 있다.
AI는 하루아침에 등장한 것이 아니다. 1950년대 존 메카시가 인공지능이라는 학문을 제안한 이래 알파고를 거쳐 챗GPT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거대한 역사적 흐름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흐름이 인간의 삶과 사회, 제도와 가치를 근본적으로 흔들 수 있다는 것을 조심스럽게 느꼈다.
AI 시대에 우리는 단순히 새로운 기술과 마주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존재와 공존을 시작한 것이다. AI를 잘 다루려면 질문을 잘 해야한다고 하지만, 오히려 나는 반대로 생각한다. AI가 오히려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져주고 있다.
쓰나미가 될지 모르는 파도가 저 멀리서 밀려오고 있는데 우리는 예전 방식대로 삶을 살아야 하는가?
빅테크 기업이 사업 목적으로만 AI를 바라보고 있을까?
AI를 단순히 업무상 또는 내가 궁금할 때 궁금증을 풀어주는 도구로만 생각해야 할까?
끊임없는 질문 속에서 나는 한 줄기 빛을 보았다. 40대 중반, 조직에서 더욱 열심히 달려야할 나이에 나는 오히려 그 길에서 내려와야겠다고 생각했다. AI가 보여준 미래 때문이었다. 내가 살아왔던 시간과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시간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ChatGPT를 사용하게 되면서 깜짝 깜짝 놀랄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그냥 도구가 아니었다. 파트너이자 동반자였다. 서로 글을 주고 받으며 희미했던 형상이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경험을 했다. 함께 걸어갈 수 있는 동료였다. 그 순간 깨달았다. AI는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여러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을. 그를 이끌고 갈 리더십, 탐험력, 추진력 등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우리나라 교육을 돌아보게 되었다.
우리나라 교육은 정답 찾기에 최적화되어 있기에 다가올 시대를 준비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AI 시대에 필요한 것은 주어진 텍스트에서 "무엇"을 찾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텍스트 없이 "어떻게"와 "왜"라는 질문을 통해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AI가 이미 정답을 알고 있는 세상에서 우리 아이들이 갖추어야할 덕목은 질문하는 힘이다.
한편 아이들만 달라진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30대 이상도 함께 새로운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나는 직장을 내려놓고 아이들과 함께 낯선 나라로 건너올 결심을 했다. 영어 한 마디 못하는 나와 아이들이었지만 낯선 환경에 몸을 던졌다.
AI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우리의 기본값을 다시 설정하기 위해서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물을 벗어날 필요가 있었다. 시야가 갇히면 큰 사고를 할 수가 없기에.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교재가 없기에 분기별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선생님이 큰 주제만을 정해줄 뿐 우리나라처럼 나누어주는 텍스트 자료가 없다. 스스로 자료를 찾고 결과물을 만들어야 한다. 정답은 없다.
아이는 처음에 힘들어했다. 정해진 틀에서 공부하다가 틀이 없으니 갈팡질팡했다. 하지만 점점 여기에 적응을 했다. 한국 같으면 부모가 대신 숙제를 해주고 하지만 여기서는 수업 시간에만 프로젝트를 준비한다. 아이들이 학교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대략적인 감을 잡다가 부모들을 모아놓고 결과물을 발표할 때 아이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물리적 환경이 달라지니 아이들이 달라져 있었다. 다른 세상의 경험을 통해 세계는 넓다는 것, 대학 입시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 세상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알려주고자 했다. 나 또한 아이들과 함께 새로운 출발선에 서보기로 했다.
이 곳에서 나만의 직업을 가져보기로 했다. 직장은 나를 명함으로 표현하지만, 직업은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직장은 떠나면 직함과 함께 사라지지만, 직업은 평생 내 이름과 함께한다.
AI 시대에는 나만의 직업이 더 중요해진다. AI가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역할"이지 "사람" 그 자체가 아니다. 자신만의 관점, 자신만의 경험, 자신만의 목소리는 대체하기 어렵다. 그 부분을 알았기에 직장을 벗어나 나만의 브랜드를 만드는 시간을 갖고자 했다.
하지만 길은 쉽지 않았다. 지난 1년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이루고 싶은 것은 거창했지만 정작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버퍼링 상태였다. 계획을 세우고 다시 만들고 다시 수정하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러다 깨달았다. 시행착오 없는 삶은 없다. 중요한 것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다. 내가 생각하는 목표는 무엇인지. 내가 이루고자 하는 목적은 무엇인지. 목표와 목적이 구체화 되니 해야할 리스트를 작성하게 되고 그에 맞게 하나 하나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만 AI 시대에 맞게 리더십, 탐험력, 추진력 등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부모들도 똑같은 시대를 살아가야 하기에 아이들에게 요구되는 역량을 함께 키워야한다. 그것이 내가 깨달은 새로운 기본값이다.
AI 시대를 맞아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한다. "내 일자리가 사라지는 건 아닐까?" "나는 뒤처지는 건 아닐까?"
여기서 질문을 바꿔보면 어떨까. "AI 시대에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직장이 아니라 직업으로 나를 정의한다면, 나는 누구인가?"
질문을 통해 생각을 전환하면 AI 시대는 끝이 아니라 시작일 수 있다. AI와 함께 나만의 질문을 던지고 나만의 답을 만들어갈 수 있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첫째,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갖자. 때로는 멈춰 서서 내 생각과 감정을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 시선이 생길 때, 비로소 우리는 성장할 수 있게 된다.
둘째, 작게라도 시작하자. 완벽한 계획을 세우느라 시간을 보내지 말자. 오늘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행동하자. 글 한 줄을 쓰든, 새로운 도구를 배우든, 한 장의 책을 읽든. 하나의 행동이 달라질 미래를 만들 수 있다.
셋째, 평생 학습을 습관으로 만들자. 더 이상 학교에서 배운 지식만으로 평생을 살 수 없는 시대가 왔다. 하지만 그것은 부담이 아니라 자유다. 나이와 상관없이, 직함과 상관없이, 언제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시도할 수 있다는 의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우리는 반복적으로 하는 일의 결과다.
따라서 탁월함은 행동이 아니라 습관이다.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은 없다. 매일 조금씩 쌓인 습관이 결국 나를 만든다. 그렇게 만들어진 나는 어떠한 시련이 오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다시 시작한다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10년 후엔 더 늦는다. AI의 파도는 이미 우리 앞에 와 있다. 그 파도에 휩쓸릴 것인가, 아니면 그 파도를 탈 것인가.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