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눈덩이의 힘
Snowball.
워런 버핏의 삶을 은유적으로 빗댄 단어다.
눈덩이는 처음엔 그저 작고 가벼운 덩어리에 불과하다. 그러나 언덕을 굴러가며 흙과 눈을 차곡차곡 품어내며 커지고 단단해진다. 작은 것들이 모이고 쌓여 어느 순간 '나'라는 무게를 만들어낸다.
워런 버핏만큼의 대가는 아니지만, 나 역시 17년간의 공직 생활을 통해 쌓아온 시간이 있었기에 40대 중반에 아이들을 데리고 먼 나라에서 살아볼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기회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회는 멀리 있지 않다. 내게 주어진 일 하나하나를 기회라 여기고 최선을 다하다 보면, 그 일은 어느새 '기회'라는 단어를 넘어 '운'이라는 결과로 바뀐다.
반면 그렇게 쌓인 시간을 보고 사람들은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같은 운을 말하지만 느낌은 다르다. 그 사람이 지나온 시간을 보지 않고 결과만 보고 운으로 치부해 버린다.
하지만 운은 하늘이 정해준 운명이 아니다. 나에게 주어진 상황을 나의 태도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주어진 일을 기회로 그리고 운으로 바꾸는 힘은 태도에서 나온다. 부정적인 말 대신 긍정적인 언어로 하루를 채워가는 것. 그 하루가 결국 내 운을 만든다.
공직 초년 시절, 내 태도는 좋지 않았다. 시험 합격 후 스스로 안식년을 부여하듯 영혼 없이 일했고 시키는 일만 했다. 그러다 시청 여성정책과에서 처음으로 정책을 만들어야 하는 자리에 앉았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생각을 바꾸자 태도가 달라졌다. 태도가 달라지니 결과도 달랐다.
그렇게 탄생한 사업이 <싱글우먼 하우스 케어>였다. 혼자 사는 여성들을 위해 보안업체와 협력해 집에 보안시스템을 설치해준 이 사업은 성취감을 안겨주었고 보상도 따랐다.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 즐겁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만약 내가 예전처럼 영혼 없이 일했다면 이 순간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삶이 항상 순탄하지만은 않다. 뜻하지 않은 어려움을 맞았고 그 결과 원치 않는 부서 발령을 받았다. 누구도 가고 싶어 하지 않는 환경위생과 청소 업무였다.
인사 발령이 있던 날,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신세 한탄을 했다. 왜 나를 청소 부서로 보내는 거야. 집에 와서 술에 취한 채로 신문 위에 청소 관련 기획안을 만들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내 힘을 보여주고 싶었다.
길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만들면 된다.
없는 예산을 만들어서 밤에 취해 적었던 기획안을 세상에 나오게 만들었다. <클린 보안관과 희망 담장> 사업이다. 주택단지 전봇대에 센서등을 달아 무단 투기하는 사람이 오면 불이 켜지고 "쓰레기는 버리지 마세요"라고 바닥에 글이 써지게 만들었다. 밝은 담장도 함께 만들어 무단 투기를 예방했다. 이 사업으로 정책 제안이 채택되어 성과금도 받았다.
불평만 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기회도, 운도 결국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작은 눈덩이가 굴러가듯 경험을 하나씩 쌓아가면 그것이 나만의 무게가 되고 또 다른 기회의 씨앗으로 자라게 된다.
그 씨앗은 수행비서로 이어졌다. 나의 모습을 지켜보던 분이 시의회 의장이 된 후 나를 택했고 2년간 비서직을 마친 뒤 나는 남들보다 빠르게 승진할 수 있었다. 승진 후 코로나19 시기에 역학조사관으로 근무했다. 힘든 시기였지만 즐거운 태도로 임하니 청와대 촬영 팀이 찾아왔고 그 영상을 본 SBS에서 연락이 와 <강호동의 밥심> 1회 초대 손님으로 출연하게 되었다.
17년간 공직을 통해 쌓은 여러 경험들이 하나의 스노우볼이 되어 지금 네덜란드에서의 삶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이 곳은 또 다른 나의 기회라 생각한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돌아보면 다른 공무원들과는 조금 다른 길을 걸어왔다. 나에게 다가온 일들을 기회로 삼고 최선을 다해 결과를 만들어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기회는 누군가 정성껏 만들어 입에 넣어주는 것이 아니다. 언제 올지 모르는 가능성을 붙잡기 위해 마음과 태도를 항상 준비해야 한다.
운은 내가 만드는 것이다.
한국에서 가져온 에너지로 여기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하려 한다. 그리고 더 큰 스노우볼을 만들어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