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에 몰린 한국, 국토를 고르게 사용하는 네덜란드

거미줄과 방사형, 다른 두 나라의 철도망

by 이루다니

"신은 세상을 창조했지만, 네덜란드인은 네덜란드를 창조했다.“


네덜란드 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속담이다. 네덜란드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낮은 땅'이다. 전 국토의 4분의 1이 해수면보다 낮기에 사람들은 물과 싸우며 국토를 만들어 왔다. 우리나라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땅을 가지고도 세계 강국의 위치를 지켜온 나라. 우리보다 땅도 좁고 인구도 적은 이 나라가 어떻게 최고의 선진국이 될 수 있었을까.




거미줄과 방사형, 두 나라의 철도망

그 답은 학문적 연구에서 찾을 수 있지만 1년간 살면서 몸으로도 체득할 수 있었다. 네덜란드 도착 후 차를 바로 구입하지 않았기에 몇 달 동안 기차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집 근처 역에서 탄 기차는 우리나라 전철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Sprinter였다. 모든 역에 정차하며 지역 내 이동을 담당하는 기차였고,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Intercity 기차와 함께 전국을 거미줄처럼 촘촘히 연결하고 있었다. 서울 지하철 노선도를 생각하면 쉽다. 차이점은 하나의 도시가 아니라 하나의 나라를 연결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기차 노선도를 보고 많은 생각을 했다. 기차가 지역을 균등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암스테르담도 헤이그도 하나의 도시일 뿐이었다. 노선도를 보고는 나라를 대표하는 중심 도시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다. 북쪽, 동쪽, 남쪽, 서쪽 어디에 있든 모든 도시가 고르게 네덜란드를 만들어주고 있었다.


우리나라 기차도 잘 되어 있지만 지역 균등과는 거리가 있다. 기차 노선도를 보면 하나의 도시가 유독 눈에 들어온다. 한국의 중심이 어디인지 기차 노선도만 봐도 알 수 있다. 한국의 KTX가 하나의 도시로 향하는 방사형 구조라면, 네덜란드의 철도망은 거미줄처럼 전 국토를 덮고 있다. 이 차이는 단순한 교통의 문제가 아니라 나라가 국토를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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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전통과 정부의 의지

네덜란드는 역사적 전통을 잘 따르면서 나라를 전체적으로 고르게 발전시켰다. 암스테르담, 로테르담, 헤이그, 위트레흐트 등 서부의 4대 도시가 네덜란드의 중심이었지만, 탈집중화 및 위성도시 육성과 그린 하트(Green Heart) 사업을 통해 4대 도시가 거대화되는 것을 막으면서 전국을 균형 있게 성장시켰다.


또한 대학과 기업이 골고루 분포해 있어 삶의 기반이 하나의 도시에 쏠리지 않는다. 암스테르담뿐 아니라 흐로닝언, 레이던, 위트레흐트, 마스트리흐트, 바겐닝언, 에인트호번, 델프트 등 대학들이 전국적으로 분포해 있으며, 각 지역 대학은 그곳의 혁신과 발전을 이끄는 거점이 된다. 정부도 대학을 지역 클러스터의 중심으로 키워 인재와 산업이 전국에 분산되도록 유도해 왔다. 이 흐름이 끊기지 않고 잘 연결되어 지금의 네덜란드를 만들고 있다.


한국도 처음에는 비슷한 길을 걸었다. 해방 후부터 전국에 국립대를 건립하고 각 지역의 인재를 길러냈다. 포항제철은 포항공대와 함께 포항을, 현대중공업은 울산을 세계적 산업도시로 만들었다. 대학이 중심이 된 곳도 기업이 먼저 들어선 곳도 있었지만, 그때만 해도 지역은 살아 있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취업 시장이 수도권 기업 중심으로 재편되고 연구 자원과 사회적 인식까지 서울에 몰리면서 수도권 집중이 심화되었다. 지역 대학을 졸업해도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가야 했고, 기업 본사들도 하나둘 수도권으로 이전했다. 포항과 울산처럼 대학과 기업이 함께 성장하며 지역을 세계적 거점으로 키운 성공 사례가 여러 곳에 있었다면, 우리나라도 네덜란드처럼 전국이 함께 성장하고 있었을 텐데 아쉬운 대목이다.




작은 마을에서 발견한 삶의 모습

내가 사는 마을은 우리나라로 비유하자면 양평과 비슷하다. 큰 건물보다는 3층짜리 주택 단지가 넓게 퍼져 있는 구조다. 3층 하나를 한 세대가 사용하고 집들마다 마당이 있다. 겉으로는 시골 같지만 안을 보면 삶의 질은 상당히 높다.


우린 역세권을 따지지만 여긴 숲세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마을마다 갓난아이부터 노인 세대까지 모든 세대가 함께 어울려 살고 있고 어딜 가도 젊은 사람들을 만나기가 어렵지 않다. 우리처럼 시골은 어르신들만 있지 않다. 또한 우리의 이마트나 홈플러스 같은 대형 마트가 마을 곳곳에 있기에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갈 수 있다. 차를 끌고 읍내나 시내로 나갈 필요가 없다. 기차역이 하나 있는 작은 마을이지만 우리나라 대도시 같은 느낌이다.


조그마한 마을에서 어떻게 이런 아우라를 풍길 수 있을까. 우리는 지역기를 본 적이 없지만 여기는 지역 행사가 있으면 지역기를 집 앞에 걸어 하나의 통일감을 갖으며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자부심을 가진다. 우리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라는 지역적 특색이 강한 민족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모두가 한 곳만을 바라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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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을 사랑한다. 대학과 기업이 멀리 있지 않기에 고향을 떠나지 않아도 되고 기차만 타면 다른 도시로 쉽게 갈 수 있기에 지방분권이나 균형 발전을 외치지 않아도 전국이 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한국에서 살다 이곳에 와서는 어색하고 이상했던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도시와 시골이라는 이분법, 대도시와 중소도시라는 계급 아닌 계급을 떠올리며 도시를 바라보던 시선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이분법도, 계급도 없다. 사람이 사는 곳은 어디나 똑같다. 내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로 나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이 단순한 진리를 먼 나라에 와서 살면서 체득하게 되었다. 1995년에 지방자치 시대가 열리고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을 외치고 있지만 현실은 더더욱 수도권으로 몰리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책이 아니라 인식의 전환일지도 모른다. 어디 사는 것보다 내가 사는 곳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초점을 맞추면 지금과 같은 수도권 집중은 완화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