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량제 봉투의 한국, 모든 쓰레기를 치워주는 네덜란드

청소의 기본으로 돌아가기

by 이루다니

네덜란드 집에 도착했을 때 우릴 반겨준 것은 세 개의 쓰레기통이었다. 검은색, 회색, 초록색 통이 집 앞에 근위병처럼 서서 집 앞을 지키고 있었다. 우리나라에 없는 이색적인 풍경이 네덜란드에 도착했음을 알려주었다.


청소 행정이 우리나라와 다를 거라 막연히 짐작은 했지만 정작 무엇이 어떻게 다른 지는 몰랐다. 부동산 중개인에게 물어보니 "지자체마다 조금씩 달라요. 아른헴 시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세요."라고 알려준 후 집 앞 쓰레기통을 가리키며 설명해주었다. "검은색은 폐지, 회색은 재활용품, 마지막 초록색은 음식물입니다."


우리나라와는 확연히 다른 청소 행정이었다. 종량제 봉투를 살 필요가 없이 모든 쓰레기를 분리해서 버리면 되었다.


며칠 후 아른헴 시청 사이트에 들어가니 폐지, 재활용품, 음식물을 한 달에 두 번씩 지정된 날에 수거를 하고 일반쓰레기는 동네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지하 수거통에 버리면 되었다. 청소 행정의 차이로 마을의 느낌이 다르게 다가왔다.

KakaoTalk_20250929_090259330.jpg




어디에나 있는 쓰레기통

우리나라의 청소 행정은 종량제 봉투를 기반으로 하는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내가 발생시킨 쓰레기는 내가 산 봉투에 담아 배출하는 ‘배출자 부담 원칙’이 적용된다. 반면 네덜란드는 모든 세대가 동네에서 발생한 전체 쓰레기 비용을 나누어 부담하고 쓰레기를 모두 치워주는 구조다.


이 차이가 거리의 풍경과 생활 모습까지 바꾸어 놓았다. 우리나라에서는 길거리에서 쓰레기통을 찾기 어렵고 규제를 피하려는 무단투기가 발생한다. 반면 네덜란드는 어디서나 쓰레기통을 쉽게 찾을 수 있고 비용을 더 내더라도 깨끗한 환경을 유지한다.


우리나라도 1995년 종량제 봉투 제도가 도입되기 전에는 집 앞에 아무 봉지에 담아 놓기만 하면 청소차가 모두 수거해 갔다. 음식물, 플라스틱, 종이 등이 뒤섞였지만 동네는 오히려 더 깨끗했다. 비용은 세금으로 충당되었고 쓰레기를 치우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쓰레기 양이 폭발적으로 늘고 매립지가 포화되자 종량제가 시작되었고, 그때부터는 무단 투기와 민원이 끊이지 않고 있다.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청소 민원은 주차 민원만큼이나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아파트 단지는 관리가 비교적 쉬웠지만, 주택 단지는 무단 투기와 분리배출 위반이 빈번했다. 지자체별로 거점 수거 방식, 음식물 전용 수거통 등 다양한 정책이 시도되었지만 뾰족한 해법은 찾기 힘들었다.




답 없는 청소 행정, 실마리를 찾다

반면 네덜란드에서는 “모든 쓰레기를 치워준다”는 원칙 아래 세대별 비용 청구를 통해 책임을 분담한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함부로 버리지는 않는다. 길거리에는 쓰레기통이 충분히 있고 시민들은 정해진 날에 맞춰 분리배출을 생활화한다. 비용은 더 내지만 청소의 본래 목적인 도시를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을 달성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청소 정책도 우리나라처럼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달라져 왔다. 1994년 <환경관리법>을 바탕으로 재활용과 분리배출 제도가 도입되었고 각 지자체가 직접 정책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분권형 체계가 자리 잡았다. 이 시기부터 종이, 플라스틱, 캔과 같은 재활용품을 따로 모으기 시작했고 일부 지역에서는 음식물 분리 수거도 시도되었다. 또, 도시 곳곳에 설치된 지하 수거통이 보급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지하에 숨어 있어 거리 풍경을 해치지도 않는다.

KakaoTalk_20250929_090202343_01.jpg

버릴 때는 좋았지만 첫 청소 고지서를 받고서는 솔직히 깜작 놀랐다. 비용이 생각보다 컸기 때문이다. 지자체마다 차이가 있지만 아른헴은 4명이 거주하는 세대의 경우 연간 370유로를 부과한다. 하지만 곧 이해가 되었다. 이 비용에는 단순히 쓰레기를 치우는 것 이상이 포함돼 있었다. 거리 곳곳의 지하 수거통 설치와 유지, 정기적인 수거, 재활용 처리 등 모든 비용이 포함된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종량제 봉투를 사서 버리는 만큼만 돈을 낸다. 평균 4인 기준으로 연간 약 16만원의 비용이 지출된다. 네덜란드의 1/3 수준이다. 적게 사용하면 절약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이 때문에 무단 투기가 발생하는 단점이 생긴다. 쓰레기 문제를 개인의 양심으로 돌리는 구조가 된다.


하지만 종량제 봉투 외에 무단 투기 단속 비용, CCTV 설치 및 관리 비용, 민원 처리 비용까지 모두 세금으로 지출되는 것을 생각하면 실제 비용 차이는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도 있다. 세금도 우리가 내는 비용 중에 하나이지만 내 주머니에게 바로 나가지 않으니 체감도가 떨어진다.


우리나라의 쓰레기 행정이 개인의 절약과 양심을 강조한다면, 네덜란드의 방식은 개인의 양심보다 사회의 시스템을 신뢰한다. 각 세대가 일정 금액을 내고 그 돈으로 모두가 함께 깨끗한 환경을 유지한다.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두 나라에 거주한 후 청소 행정에 대해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규제를 통해 행정을 하는 것은 아닐까. 쓰레기는 종량제 봉투에 담아서만 버려야 하기에 행정의 시작이 규제이다. 규제를 피하기 위해 무단 투기를 하고 이를 근절하기 위해 단속을 하고 CCTV를 설치하지만 개선의 효과는 미비하다. 그 비용을 쓰레기를 치우는 곳에 투입하고 근본적인 질문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면 어떨까.




청소의 기본으로 돌아가기

청소의 기본은 깨끗하기 위해서이다. 그럼 "깨끗하다"에 초점을 맞추고 행정을 만들면 어떨까. 규제를 통한 통제가 아닌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배출한 쓰레기는 모두 치워주고 네덜란드처럼 세대별로 비용을 청구하는 것이다.


예전에 수원시에서는 쓰레기 감량 정책을 펼친 적이 있다. 쓰레기 발생량을 동네별로 체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쓰레기를 적게 버리면 그만큼 비용이 줄어들고 세대별 부과 금액도 달라진다. 우리 마을의 쓰레기가 줄어든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주민들이 실천하는 문화를 만들면 어떨까.


청소 행정의 근간을 흔들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30년 가까이 이어온 종량제 봉투 제도를 바꾸는 것은 거대한 시스템의 전환이다. 하지만 네덜란드에 살면서 청소 행정의 기본에 충실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더 적은 비용으로 쓰레기를 처리하려다 오히려 더 많은 비용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종량제 봉투를 사지 않으려는 주민, 그들을 단속하는 공무원, 설치되는 CCTV, 끊임없이 발생하는 민원. 이 모든 것이 비용이다. 그 비용을 투명하게 세대별로 부과하고 대신 버린 쓰레기는 모두 치워주면 어떨까.


지키기 어려운 규칙을 촘촘히 만드는 대신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비용을 조금 더 내더라도 모두가 깨끗한 환경을 누릴 수 있다면 그 편이 좋지 않을까.


수원시의 쓰레기 감량 정책처럼 동네별 배출량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줄어든 만큼 비용을 환급해주는 방식도 가능하다. 통제가 아닌 신뢰로 처벌이 아닌 보상으로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다.


청소의 기본은 도시를 깨끗하게 유지하는 데 있다. 신뢰와 보상을 통해 청소 행정이 골칫거리가 아니라 주민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문화로 만들어가면 좋겠다.

이전 03화AI 시대, 변해야할 우리의 교육 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