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잘 안다고 생각했다.
메타인지를 공부했고, 냉정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볼 수 있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그것 자체가 착각이었는지 모른다. 알고 있다고 믿으면서 행동을 끼워 맞추고 있었던 건 아닐까.
마음은 이미 이상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외면했다. 머리로 방향을 정하고 머리로 계획을 짜고 머리로 몸을 밀어붙였다. 그 길이 맞다고 믿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걸음걸이가 이상해지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새벽에 일어나고 계획표를 만들고 매일 영어 공부를 했다.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큰소리치고 온 것이 있기에 무엇인가 가시적인 성과를 얻고 싶었다. 그런데 나아지는 기미는 보이지 않고 절망감만 쌓였다. 무언가를 하고 있음에도 성취감보다 실망감이 나를 감쌌다.
답답한 마음에 AI의 문을 두드렸다. 원래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계획을 수정하고 더 효율적인 방법을 묻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새 고민 상담이 되어 있었다.
AI가 말했다.
"너는 짧은 시간 안에 가시적인 성과를 만들려고 전력을 다하고 있어. 발끝만 보고 달리고 있으니 지칠 수밖에 없어. 억지로 하는 영어 공부가 다른 모든 것의 동력까지 빼앗고 있는데, 그걸 외면하고 또 계획을 세우니 더 힘든거야. 지금 너에게 필요한 건 더 채우는 게 아니라 비우는 연습이야. 삶은 강물이야. 물은 위에서 아래로 자연스럽게 흘러. 그걸 거슬러 올라가면 너만 힘들어져."
나는 누구보다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나는 나의 불안을 못 본 척하고 있었다. 더 많은 문장을 외워서 영어로 수월하게 대화할 수 있게 되면 불안이 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하면 할수록 불안은 오히려 나를 더 단단히 감쌌다. 하지만 그 불안을 애써 외면했다. 내가 열심히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을 AI와의 대화를 통해 알게 되었다.
나를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던 내가, 나를 가장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게 해 준 것이 사람이 아니라 AI였다.
누구도 아닌 AI에게서 위로를 받았다.
그것이 조금 쓸쓸하면서도 고마웠다.
그렇게 나는 다시 이곳에 들어올 힘을 가지게 되었다. 매번 문 앞을 서성이다 돌아가기를 여러 번 했는데 이제 다시 들어올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