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자유를 꿈꿨던 공무원의 첫 번째 실패

따라하기로 시작된 도전, 그리고 현실과의 충돌

by 이루다니

09.04.2026.

날씨: 정원이 점점 푸르러져서 자세히 보니 잡초가 쑥쑥 자라고 있음.

상태: 2023년에는 진심이었다.


내가 걸어가는 길에 의심을 품어본 적이 없었다. 공직에 합격한 순간 내 인생은 이미 완성된 퍼즐이라 생각했다. 60세까지 일하고 퇴직 후 연금을 받으며 사는 삶. 그게 가장 안정적이고 올바른 길이라 믿었다.

나에게 이 공식은 금과옥조였고, 사표를 던지는 상상은커녕 사표라는 단어 자체가 내 사전엔 없었다. 박봉이라 투덜대는 동기들도 있었지만 나는 만족했다. 어차피 월급표 다 보고 들어오지 않았나? 이제 와서 적다고 하는 건 반칙이다.


그렇게 별다른 의심 없이 살아가던 2023년 어느 날, 낯선 단어 하나가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


경제적 자유.


생각해 보니 내 삶에 유일하게 부족한 것이었다. 우리 집은 부부 공무원이다. 경제권은 100% 와이프가 쥐고 있다. 나는 주급을 받으며 살아왔다. 주급이라고 해서 프리미어리그 선수의 화려한 연봉을 상상하면 곤란하다. 내가 받는 돈은 딱 5만 원이었다.


5만 원으로 한 주를 버티는 건 생각보다 할 만하다. 하지만 문득 누군가에게 얹혀사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연차는 내가 더 높아서 더 많은 월급을 가져다주는데, 집안 서열은 늘 꼴찌였다. 아이들도 알고 있었다. 이 집의 모든 결정권은 엄마에게 있고, 아빠는 그저 성실한 납세자일 뿐이라는 것을. 그 단어 하나가 내 안의 무언가를 건드렸다. 그래, 경제적 자유를 얻어서 이 집안 서열 1위에 등극해 보자!


alla-kemelmakher-6RcwSEZdt_s-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 Alla Kemelmakher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아침을 지배해야 한다기에 그 당시 유행하던 미라클 모닝을 시작했다. 일찍 일어나는 건 기본이고 명상을 하고 차를 마시고 독서를 하고 일기를 쓰고 마지막으로 운동까지. 그 와중에 확언과 시각화라는 복병이 있었다.


이게 은근히 까다롭다. 과거형으로 써야 하고, 구체적이어야 하며, 머릿속으로 그림이 그려져야 한단다. 그런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컨닝할 곳을 찾았지만 내 인생을 대신 써줄 답안지는 없었다. 생각나는 대로 적었다.


"2025년 12월까지 내 이름으로 회사를 창업해 10억을 벌었고, 포르쉐를 가졌다.“


매일 읽었다. 설렘 같은 것이 생긴다고 했는데 딱히 그런 것은 없었다. 그때 또 하나의 지령을 받았다. 일상을 기록하면 좋다고 해서 검색만 하던 블로그에 한 편씩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발행이란 초록 단추를 누르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매일 올리다 보니 점점 익숙해졌다.


몇 달이 지나니 그래도 변화는 있었다. 네이버가 주는 선물인 애드포스트가 열린 것이다. 첫날 수익은 무려 5,000원! 단순 계산하니 한 달에 15만 원. 드디어 수입의 다각화가 이뤄졌다는 희열에 블로그에 매달리는 시간을 늘렸다.


하지만 기적은 딱 거기까지였다. 애드포스트는 가혹했다. 첫날 이후 100원, 300원... 그러다 어느 날은 1원 또는 2원이 찍혔고 이런 날이 훨씬 많았다. 10억을 벌려면 대략 1억 년 정도 블로그를 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하프 마라톤도 완주했지만, 남은 건 10억 자산가의 미소가 아니라 쑤셔오는 무릎 통증뿐이었다.


경제적 자유를 외치며 큰소리쳤지만 돌아온 건 현타와 망가진 몸이었다. 나의 첫 번째 도전은 그렇게 비참하게 막을 내렸다. 더 아픈 건 와이프의 비수 같은 한마디였다.


"내 그럴 줄 알았다. 그냥 얌전히 살아. 오빠는 나 만난 게 이미 로또니까 딴생각 말고 회사나 잘 다녀.“


로또는 당첨되면 말이 없는데, 내가 만난 로또는 왜 이리 잔소리가 많은지 모르겠다. 훨훨 날아다니는 독수리가 되려 했으나 나는 다시 목줄이 채워진 채 집을 지키는 강아지 신세로 돌아왔다.


하지만 내 노력은 끝난 것이 아니라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간 것뿐이었다. 2024년 8월, 네덜란드라는 낯선 땅에 발을 들이며 나의 꿈은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