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그, 헤이리가 아니었다
06.04.2026.
날씨: 자전거 체인이 부드럽게 돌아가기 좋은 네덜란드의 봄.
상태: 전날 과음으로 속이 불편하지만 연재 일을 맞추어야 하기에 책상에 앉음.
2024년 여름, 비행기 안에서 나는 꽤 신이 나 있었다. 젊었을 때도 해보지 않았던 일을 마흔이 훌쩍 넘어서하게 됐다. 해외여행이 아니라 해외에서 2년을 사는 삶. 혼자도 아니고 와이프와 아이 둘을 데리고 낯선 나라에서 사는 일이었다.
조금 설렜고, 조금은 걱정도 됐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걱정보다 기대가 더 컸다. 어차피 인생은 가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니까.
우리가 이 선택을 하게 된 건 와이프 회사의 해외 연수 프로그램 때문이었다. 매년 몇 명씩 뽑아서 외국에서 공부를 시켜주는 제도였다. 지원은 누구나 가능했지만 붙는 건 아무나가 아니었다.
2023년, 우리는 한 번 떨어졌다. 영국을 썼다. 이유는 단순했다. 영어. 결과도 단순했다. 탈락. 2024년, 다시 도전했다. 이번에는 전략을 바꿨다. 영어권이 아닌 나라를 선택하면 가점이 있었다. 그래서 고민이 시작됐다. 비영어권 나라 중에 갈 곳이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찾기가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네덜란드 어때?”
“네덜란드?”
“작년에 간 직원 있는데 괜찮다던데. 영어도 다 통하고.”
“잠깐만. 거기 공용어 더치어 아니야?”
“맞아.”
“영어도 못하는데 더치어까지 하라고?”
“아니, 더치어 안 해도 된다니까.”
“그럼 왜 더치어가 있어.”
잠깐 정적이 흘렀다.
“그래도 한번 생각해 봐.”
“난 반대야.”
“미국이랑 영국은 어차피 안 되잖아.”
결정권은 와이프에게 있었다. 나는 조용히 한 발 물러났다.
그런데 운명은 엉뚱한 곳에서 작동했다. 외부 업무 미팅 자리였다.
“제가 살던 곳이 헤이그예요.”
나는 잠깐 멈췄다. 헤이그? 설마. 내가 헤이리를 잘못 들었겠지.
“파주요?”
“아니요. 네덜란드요.”
업무 이야기가 마무리된 후 질문을 쏟아냈다.
“거기 영어 돼요?”
“네, 다 됩니다.”
“진짜요? 더치어 몰라도요?”
“전혀 문제없어요.”
“치안은요?”
“좋습니다.”
“학교는요?”
“더치학교는 더치어로 수업을 하기에 국제학교 보내면 돼요.”
“비싸지 않아요?”
“보조금을 주는 학교도 있어서 생각보다 괜찮습니다.”
나는 계속 물었고 그 사람은 계속 대답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한마디를 덧붙였다.
“저는 네덜란드 추천합니다.”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우리는 네덜란드를 지원했고 붙었다. 그렇게 2024년 8월, 나는 자전거의 나라 네덜란드 아른헴에 상륙했다.
유럽의 작은 나라, 네덜란드. 처음에는 그냥 작은 나라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살아보니 작다는 말이 좀 미안해졌다. 어딜 가도 깔끔했고 도시 간의 차이는 별로 없는 작지만 강한 나라였다.
그리고 다들 자전거를 탄다. 정말로 다 탄다. 출근할 때도 타고 장 보러 갈 때도 타고 비 와도 탄다. 나는 비 오는 날 자전거를 타는 사람을 보면서 이 나라 사람들은 우산보다 의지가 더 강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영어. 이건 좀 당황스러웠다. 분명 공용어는 따로 있는데 다들 영어를 잘한다. 나는 영어 때문에 이 나라를 걱정했는데 정작 이 나라 사람들은 내 영어를 걱정하지 않는다. 단, 보이는 것은 전부 더치어다. 간판도, 영수증도, 고지서도.
이곳을 택한 것은 전략이었다. 영어권 말고, 가점 있는 나라, 경쟁 덜한 곳. 그렇게 고른 나라가 네덜란드였다. 그런데 살아보니 전략보다 운이 더 컸던 것 같다.
아직도 가끔 생각한다. 왜 하필 여기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