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는 여성들이여. Why not?

앞치마 두른 남편을 둔 여성에게

by 선배언니


후배들도 하나 둘 직장을 떠나기 시작한다. 나 이상으로 조직에서 힘껏 뛴 후배들이다. 그런데 그들에게서 강력한 공통점을 발견했다. 나를 포함해서 말이다.


얼마전 막 퇴직한 후배 A가 찾아왔다. 평소 깔끔하고 허술함을 보이지 않는 친구였다.

퇴직 때문일까? 그간 버티고 있던 마음의 벽이 느슨해졌는지 처음으로 남편이야기를 꺼냈다. 남편은 50초반 퇴직 한 후 근 10년이 넘게 집에 있단다. 그동안 본인 출근하느라 크게 거슬리지 않았고 가정경제도 본인 몫으로 생각하고 있던지라 별 문제는 없었다. 근데 퇴직 후 집안에 둘이 있다 보니 남편의 일거수가 점점 거슬리는 것이었다. 흔히 보는 퇴직한 가장의 집안 풍경이다. 남녀가 바뀌었을 뿐이다.


“그럼, 부군은 낮 동안 어떻게 시간을 보내나요?” 답답한 마음을 쏟아내고 있던 A는 훅 들어온 내 질문에 잠시 멈칫했다. “남편요? 살림해요. 장보고 청소, 빨래하고, 아이들과 내 식사 챙겨요. 끼니라도 거르려 치면 잔소리가 심하지요 ”


한때 대기업 다니셨다는 분이, 더군다나 경상도 남자분이? “와! 대단한 분이시군요. 제가 본 남편분들 중 제일 대단하세요.” A는 잠시 머쓱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요. 남편은 최선을 다해 가족을 돌봐요.“ “그런 남편에게 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고맙죠. 하지만 남자라면 뭔가 해야죠. 이제 환갑이 훌쩍 넘었는데 더이상 인생을 허비하고 있으면 곤란하죠” 헐! 이 친구, 남편을 자기처럼 살라고 쪼고 있네! 가정을 돌본 남편의 인생은 허비된 인생인가? 그렇다면 전업주부의 삶도 허비된 삶이란 말인가?


또다른 후배 중에 회사경영으로 머리가 아프면 내게 달려오는 여성CEO B가 있다. 조직관련 이런 저런 이슈를 두고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곤 했다.


얼마전 평소처럼 회사문제를 이야기하던 B는 하던 말을 멈추며 한숨을 쉬었다. “오늘은 껄끄러운 임원과의 관계개선에 대해 말하려 했는데… , 그건 어떻게든 해결되겠지요. 사실 개인적으로 무거운 돌덩이가 맘속에 있어요. 남편과의 관계예요.”


잘나가는 여성들도 쉰을 넘으면 완벽의 가면을 벗기 시작한다. 수년간 배우자 이야기는 언급한 적이 없었는데, 엉? 또 배우자 문제?


앞서 이야기한 A의 스토리와 닮아 있었다. 업계에서 독보적으로 성취를 이뤄낸 B와 살며 그도 일찍 조직을 떠났다. 처음부터 놀겠다는 생각은 아니었으나 탐색만 하다 10년이 흘렀다. 지금은 조그만 놀이터를 가지고 소일하면서 바쁜 부인대신 아이들과 양가 부모님을 챙긴다. B역시 남편이 인생을 허비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다 보니 부부간 대화도 줄고 남편 역시 부인의 눈초리를 느끼며 방어적이 되어 있었다. 이상태가 제법 오래 되었고 B는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될 때라고 느끼고 있었다. “이렇게 계속 함께 할 수는 없지 않겠어요?”


이번에도 나는 툭 질문을 던졌다. “여성 CEO모임에 나가시죠? 다른 분들은 이부분에서 어떤 것 같아요?” B는 찬찬히 생각해 보다 대답했다. “생각해 보니 3가지 부류로 나뉘네요. 첫째는 첨부터 싱글인 분들, 두번째는 갔다 오신 분들, 세번째는 배우자와 같이 사는 분들. 그런데 세번째도 남편분들이 일찍 손을 놓았거나 소위 한량들이네요. 어! 나만 그런 게 아니네요.”


내가 몸담았던 회사의 여성임원들을 떠올려봤다. 나를 포함해 모두들 상황이 비슷했다. 대부분의 남편들은 이른 시기에 뒤로 물러났거나 아예 처음부터 경제활동을 하지 않은 케이스도 있었다. 최근까지 입을 다물고 있었던 A를 포함하면 거의 같은 상황이었다.


왜 그럴까? 배우자 한쪽이 성공가도를 달리면 다른 한쪽은 느슨해 지는게 당연한가? 경제력에 대한 책임도 가볍다 보니 회사생활에서 인내심도 약해지고 승진과 성공에 대한 절실함과 동력도 떨어지는가 보다.


잘나가는 것이 남편일 경우에 직업을 포기한 여성에게는 우리는 쉽게 수긍한다. 그럴 수도 있지, 당연하지. 저렇게 대단한 남편 뒷바라지가 필요하겠지.


그런데 반대일때 문제는 다르다. 부인을 포함한 가족들은 이 상황을 쉽게 용인하지 않는다. 그가 다시 직업을 구할 것을 기대하고 그렇지 못할 때는 점점 싸늘한 시선을 던진다. 남성이 전업주부의 역할을 하게 될 경우 무직, 무능, 조롱으로도 이어진다.


우리보다 남성 전업주부가 자연스런 미국의 경우 2012년 자료에 의하면 전업주부의 16%가 남성이란다. 10년이 지난 지금쯤 한 20% 이상은 되지 않았을까? 우리나라도 3,40대에 앞치마를 두르고 육아를 선언하는 남성들도 늘어나고 있다. 영화 '인턴'의 여주인공의 남편의 케이스다.


그러나 미국사회조차 남성주부들의 일상은 쉽지 않다. 주변의 차가운 시선을 견뎌야 하고 맘공동체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러다 보니 자연히 주변 관계망이 위축되고 자존감도 떨어진다. 그러니 우리사회야 오죽하겠는가?


최근 대선을 앞두고 어느 후보가 여가부 폐지 공약을 내세웠다. 그들의 정확한 의도는 잘 모르겠다. 곁들인 설명처럼 현재의 여가부가 실질적인 역할을 못했기 때문이라는 건지, 이대남의 표심을 위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주목하는 발언은 대선주자의 ‘더 이상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라는 말 중 ‘구조적’이라는 단어였다. 발언자의 의도와 관계없겠지만, 이 발언은 내게 ‘이제 노골적인 성차별은 없지만 구조이면에 거대하게 자리잡은 성인식의 뿌리는 지금의 방식으로는 해소되기 어렵다’ 라고 들린다.


나는 여기서 젠더라는 거대 담론에 대해 핏발을 세우고 싶진 않다. 다만 정책과 구조는 보조일 뿐 핵심은 빙산아래의 인식과 문화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여기서는 여성이 스스로에게 뿌리내리고 있는 무의식을 먼저 언급하고 싶다.


이야기를 다시 잘나가는 여성들로 돌리겠다. 여성인 내가 남편보다 적응적이고 유능하다. 그리고 남편은 먼저 물러났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누군가는 해야 할 아이들과 가사를 돌보는 것이 남편인 것이 불편하고 부끄러운가? 수많은 성차별의 지뢰밭을 통과해 정상에 섰는데 정작 나 스스로는 고정적 성역할을 고수하고 있는가?


성차별 해소를 사회에, 남성에 요구하기 이전에 여성부터 생각을 바꾸면 어떨까? 전업남편을 인정하고 남성들의 비전통적 역할을 자연스레 수용하자. 주변의 시선에 나부터 why not?이라 말하자.


아끼는 여성후배가 있다. 신혼 초부터 일을 놓은 후 가사일도 하지 않는 남편을 모시며 회사일과 집안일을 혼자 해내는 억척 같은 후배다. 주변은 그런 그녀의 인내와 희생을 칭찬한다. 그런데 이건 나의 관점에서는 가장 나쁜 케이스다. 그녀는 남편에게 전업주부 역할을 요청하지 못했다. 그녀 스스로 남성의 비전통적인 역할을 용인하지 못한 거다. 그것이 동정을 받을 일이지만 칭찬을 받을 일인가?


‘줄탁동시’란 한자성어가 떠오른다. 패러다임을 뒤엎는 정도의 큰 변화에서는 외부의 도움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내부의 당사자들이 껍질을 쪼는 치열한 노력도 병행되야 하지 않을까? 성역할에서 사회적 기대감의 산물인 문화와 인식을 벗겨내면 뭐가 남을까? 물론 유전적 차이, 생물학적인 차이만 남게 되겠지만 지금의 성차별적인 성인식이 계속될까?


얼마전 여고동창이 무심코 한 말이 떠오른다. 주변 후배여성을 배려해 주는 착한 친구다. 그런데 이 친구, 사회초년생인 아들이 한 말에 화들짝 놀랐다고 한다. “어머니, 저는 전업주부를 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Why not! 딸 가진 나로서는 대환영이다.


딸들아! 그렇다고 모두가 여전사가 되어 남편을 집으로 불러들이라는 것은 아니다. 부부는 둘다 함께 성장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으로 의미를 찾고 성장하는 가의 성차이는 없다.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의 일방적인 성장은 상대방의 소외를 가져 올 수 있다는 것이다. 길어진 수명에 우리는 한번 뿐 아니라 두번 이상의 삶을 살아야 한다. 서로가 번갈아 가며 양보하고 배려하기 충분한 시간이다. 한 사람이 힘껏 뛸때 나머지 한 사람은 그를 지원해주고, 그리고 역할을 바꾸는 것이다.


퇴직한 후배들이여! 이제 고단했던 조직의 정글에서 빠져 나왔으니 내 인생을 즐기라. 그리고 위축되어 있던 남편에게 눈길을 돌리고 그를 응원해 주자. 묻어 두었던 그의 꿈을 물어보고 지지해 주자.


잘나갔던 여성들이 먼저 바뀌면 딸들의 세상이 좀더 나아지지 않을까?



keyword
이전 17화똑순이는 있어도 똑돌이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