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용기

취약함을 드러낼 것인가? 갑옷을 입을 것인가?

by 선배언니

“새로 만나는 직원들과 어떻게 관계를 가져야 하나요?”

지점장으로 첫 발령을 받게 된 여성 후배의 질문이었다.


“ 때로는 지점장으로서의 어려움과 고민도 드러내고 나누는 게 좋지요. 직원들은 그런 지점장의 솔직한 모습을 보면서 리더와의 간격을 좁히게 되지요.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함께 할 것을 요청하는 리더를 보며 스스로 움직이려는 자발성도 커지고요.”


순간 후배 지점장은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네? 다른 선배들에게 들었던 이야기와 다르네요? 좀 혼란스럽네요.”


말인 즉, 처음 지점장으로 부임하면 직원들이 얕잡아 보지 못하게 틈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선배들의 충고가 있었다 한다. 직원들과 사사로운 이야기는 삼가고 되도록 권위를 세워서 직원들이 무시하거나 쉽게 다가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조언들이었다.


특히 여성 지점장의 경우 남성 직원들이 얕잡아 보지 못하게 허술한 모습을 보이지 말고 더욱 엄격하게 대하라는 충고였다.


이 충고들은 대부분 남성 선배들의 조언이었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승진하면 부러 목에 힘을 주고 말투도 바뀐다. 군대문화의 잔재일까? 아니면 완장의 효과일까?


이런 남자 선배들의 충고와 정반대의 조언을 들은 후배 지점장은 끝내 결론을 못 내린 것 같다. 자주 연락하겠다는 말 뒤에 두 번 다시 내게 조언을 구하지 않는 것을 보니 남자 선배들의 충고에 따르고 있는 듯하다.


무엇이 옳을까? 리더는 어떠해야 할까?

어떤 자세를 취해야 직원들과 소통도 원활하고 그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어 주어진 목표 달성에도 도움이 될까? 리더의 어떤 모습이 조직을 잘 이끌어 나가는 모습일까?


엄격하고 카리스마 작렬하여 일사불란하게 지시하고 높은 곳에서 진두지휘하는 알파형 리더일까? 부드럽고 유연하며 직원들 사이를 자유롭게 다니며 질문하고 경청하는 베타형 리더일까?


브레네 브라운은 <리더의 용기>에서 대담한 리더십의 전제로서 리더 스스로 ‘취약성’을 드러내는 것을 강조한다. 리더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자신이 해답을 갖지 못함을 솔직히 인정하고 팀원들의 의견을 구하는 것이 취약성 드러내기의 한 장면이다.


그러나 보통의 리더들은 취약성을 드러내는 것을 꺼려하고 자신의 약점을 공개하는 것으로 오해한다. 그래서 어려움이 있으면 더욱 취약성을 숨기고 갑옷으로 무장하고 센 척하며 직원들의 부족함을 비난하고 성과를 종용하며 자신의 두려움을 숨기려 한다.


브레네 브라운에 의하면 이런 행위 이면에는 자신의 불안전함, 두려움을 들킬 때 사람들의 무시와 비웃음을 받을 것이라는 수치심이 깔려 있다. 그러나 취약성을 드러내는 것과 수치심은 다르다.


취약성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부족한 면이 있고 완전하지 못함을 인정하는 것이 전제된다. 그럼에도 나는 리더로서 해야 할 일을 위해 실패할 수 있지만 전력을 다해 도전하겠다는 말하는 대담한 용기가 필요하다.


반면 수취심은 이런 대담한 리더십을 가로막는 방해물이다. 수취심은 우리가 목표를 해 낼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며 가치가 없는 부족한 사람이고, 이것을 들킬까 봐 전전긍긍하는 고통스러운 감정이다.


때문에 취약성을 드러낼 때는 리더의 솔직하고 인간적인 모습에 팀원들의 공감과 지지를 받을 수 있다. 이때 리더와 팀원들, 둘 간의 ‘연결’의 순간을 만들어질 수 있다. 반면 수취심은 자신의 두려운 감정을 숨기고 갑옷을 더욱 견고하게 함으로써 타인과의 ‘단절’을 부르게 된다.


한쪽은 ‘연결’을 한쪽은 ‘단절’을 부르는 것이다.


물론 취약성이 만병통치의 약은 아니다. 경계설정이 확실하지 않고 여기저기, 만나는 사람마다 취약성 드러내는 것은 자칫 고백, 자포자기, 두려움과 불안의 표현으로만 비칠 수 있다. 따라서 리더는 취약성을 드러내어 도움이 되는 상황, 상대를 잘 구별해야 하는 상황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지금은 얼굴도 가물가물한 한 상사가 떠오른다. 얼굴은 흐릿하지만 그의 목소리와 몸짓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사람 참 좋다는 소리를 듣는 그 상사는 항상 팀원들을 붙들고 우는 소리를 했다. 지금 상황이 어렵고 윗사람들이 이것을 몰라주고 팀원들도 동참하지 않아서 혼자 힘들게 끌고 나간다는 푸념이 단골 메뉴였다.


한참 아래였던 나는 상사의 말에 귀 기울이다 나중에는 속으로 반발심이 일었다. “쳇, 그럴 거면 그 자리 왜 있나? 능력 없으면 내려와야지. “ 주변의 선배들은 늘 징징거리는 상사에게 이미 무감각해지고 귀를 닫았다.


현직에 있을 때 나는 어떠했는가?

현재의 곤경을 정직하게 인정하면서, 불안감과 부족함을 드러내면서도 당황한 것이 아닌 차분함을 유지하고, 팀원들에게 솔직한 대화와 해결책을 내놓게 하는 안전한 분위기를 주도했던가?


그보다는 나의 부족함을 팀원들의 나태함으로 돌리고 채찍질을 휘두르며 돌아서서 나의 무력함을 들킬까 봐 전전긍긍하며 스스로 고립되어 있지는 않았을까?


지난봄 이후 연락이 없는 후배 지점장이 염려되고 궁금하다.

이러저러한 충고를 자기 것으로 잘 소화해서 자신의 신념으로 조직을 지혜롭게 잘 이끌고 있을까? 아니면 더욱 두터워진 갑옷의 무게에 휘청거리며 오늘도 지점장실에서 홀로 컴퓨터 속의 실적판을 들여다보고 있을까? 십 수년 전의 나처럼 말이다


후배여! 우리는 불완전하고 늘 휘청거린다. 누군가를 붙잡고, 또 누군가를 붙잡아 주며 체온을 나누고 서로 협력하는 것이 생존의 방식이다. 또 이런 기본적인 생존법칙은 조직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너무 늦지 않게 알게 되시길! 공감하며 협력하는 여성의 타고난 능력에 먼지가 쌓이고, 애초부터 가지고 있지도 않은 몸에 맞지 않는 갑옷을 입느라 끙끙거리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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