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털 뽑아내기
“사무실에 있으면 숨이 막혀요. 팀장님 눈치보기도 힘들고 다른 직원들과 따로 외딴섬에 떨어져 있는 느낌이 들어요. 하루하루 괴로워요."
얼마 전 찾아온 입사 7년 차 A는 그간 맘고생이 심했던 듯 평소의 밝은 얼굴이 누렇게 뜨고 다크서클이 뺨까지 내려와 있었다.
사연인 즉, 이랬다. 연초 인사이동으로 해외기업 협력 부서에 배치받은 A는 자신에게만 유달리 다르게 대하는 팀장 때문에 점점 숨이 막히고 있었다.
팀장은 워라밸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회식을 소집하거나 야근을 강요하는 일도 없었다. 스스로도 칼퇴근을 했기에 팀원들도 시간이 차면 눈치 보지 않고 자리를 떴다.
옆 부서 팀장처럼 빡시게 일하며 불필요한 업무지시를 내리지도 않았다. 업무를 지시할 때는 친절했다. 이러다 보니 사무실 분위기는 좋았다.
그런데 단 한 명의 직원, A에게는 달랐다. 업무 지시는 딱딱했고 기본적인 가이드도 주지 않았다. 그에게 지시하는 순간에도 A와의 눈 맞춤을 피했다. 툭 하니 일을 던졌고, 배경 설명 없이 결과를 요구했다.
부족한 정보에 쩔쩔매며 어설프게 작성된 보고서를 가져가면 비로소 관련 자료를 주며 재작성을 지시했다.
똥개 훈련시키기인가? 똥개도 간식이라는 명확한 피드백이 있는데 말이다. 이런 식으로 여러 번 퇴짜를 당한 후 에야 과제가 통과되었다. 이런 불편한 관계에서 A는 점점 위축되고 마음이 조여왔다. 한마디로 A는 상사에게 콕 찍혔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일 인가? 태도인가? 일의 문제라면 간단하다. 열심히 하면 된다. 그러나 여기에 감정이 수반되면 꼬여 버린다.
일 인가? 태도인가?
나의 질문에 A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둘 다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A는 이번 이동에서 본인이 원치 않는 부서로 오게 되었다. 자타가 공인하는 B급 부서였다. 그래서 업무를 만만하게 보고 긴장감 없이 몇 달을 보냈다.
어떤 업무도 대충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더구나 새로운 업무는 빠른 파악을 위해 첫 3개월은 과거의 자료를 샅샅이 뒤지며 출발선을 땡기는 시간 투자가 필요하다. 중요한 업무라면 첫 6개월은 자신을 갈아버릴 각오로 붙어봐야 한다. 이래야 이후가 편하다.
아! 하는 A. 역시 새로운 일에 시간 투자가 충분치 않았다. 그는 뒤늦게 업무 파악에 집중 노력했고 업무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첫 3개월의 golden time을 놓쳤다.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했겠다 싶을 무렵 다시 찾아온 A의 얼굴은 더욱 심란해 보였다. 일은 어느 정도 커버하는 것 같은데 팀장의 냉랭함은 바뀌지 않았다. 그새 더욱 예민해진 A는 자신만 제외하고 농담과 웃음으로 서로를 대하는 팀장과 팀원들을 바라보며 소외감을 느꼈다. 평소 주변과 활발하게 어울리는 그에게 낯선 감정에 밀려왔다. 외로움. 막막함. 벽을 앞에 두고 선 무력감.
심리적 자본- 나를 지지해 줄 동료를 만들자
새로운 부서에서 A가 동료직원과의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살펴보았다. 애고! A는 석 달이 지나도록 동료들과 밥 한번 돌지 못했다. 이런! 아무리 세대가 바뀌어도 함께 밥을 먹는다는 의미는 마음을 여는 첫 단추인데!
이제부터 한 명 씩, 또는 두어 명씩 묶어 점심을 청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팀장에 대한 성향도 알아내고 마음을 열 수 있는 동료도 탐색하기로 했다. 나와 팀장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알아보고 나의 미운털에 대해 이야기해 줄 수 있는 동료를 찾자.
그러다 보면 혹시 이 상황이 나만의 오해, 착각인가도 알 수 있다. 상사는 의례 신규직원에게 이런 식으로 간 보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만일 그렇다면 시간이 지나면 문제는 자연스레 해결된다. 그러나 이 경우는 아니었다.
사실 개떡 같은 상사는 공동의 적이다. 스트레스 해소의 좋은 안주감이다. 팀원들이 연대하여 상사의 폭력에 무감각해지면 된다. 그러나 이경우 팀장은 함께 일하고 싶은 상사로 소문이 난 사람이다.
나를 공감해 주고 지지해줄 옆자리 동료는 언제나 중요하다. 서로 하소연하고 위로해줄 동료의 존재는 강력한 심리적 자본이다. 반대로 사무실에서의 소외, 외로움은 어려운 상황을 벗어날 의지조차 무력화시킨다. A는 지금 한겨울 세찬 바람 속에서 창문 넘어 단란한 가정을 들여다보는 성냥팔이 소녀의 심정인 것이다.
그는 그간 친한 입사동기들 위주로 교류했고 그들에게만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했다. 적극적으로 지지자를 만들기로 한 후 그는 동료들에게 점심도 사고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했다. 그러나 끝내 자신과 팀장과의 관계에 대한 의견은 차마 물어보지 못했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다. 동료의 객관적인 관찰, 조언을 듣기 위한 대화는 자칫 상사에 대한 개인적인 불만으로 비춰질 수 있다 상사를 좋아하는 그들에게 불편함을 주면 자칫 그들과 더 멀어진다. 나의 자존심도 다치고 결과에 대한 리스크도 크다. 아직 노련함이 부족한 A에게 맞지 않은 처방이었다.
좀 더 시간을 둔 관계 형성이 필요했다. A는 새로운 부서에서 동료들에 대한 마음 투자를 소홀히 했다. 업무 따라잡기에 이어 두 번째 GOLDEN TIME을 놓친 것이다.
정중히 물어보자. 이때 화살의 방향은? 나에게 돌려야 한다.
딱히 상황이 개선이 되지 않으면서 출근하는 A의 발걸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우리는 직면하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상사에게 직접 물어보자.
이때 “나에게 왜 이러는지 말해 주세요”라는 직접적인 화법은 곤란하다. 큰 일 날일! 상사는 이 말을 도전으로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상사가 무슨 일? 웬 생뚱? 하면서 딴청을 부리면 그때부터 상황은 지뢰밭이 아니라 지옥이 된다.
몇 차례 퇴짜를 맞은 문서를 들고 가서는 낮은 자세로 물어보자. “팀장님, 제가 업무에 미숙해서 바쁘신 팀장님을 번거롭게 해 드리네요. 저도 잘하고 싶은데 제가 어떤 면을 바꾸어야 할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한마디로 우리의 문제가 나를 껄끄럽게 대하는 너, 상사의 문제가 아니라 부족한 점이 있는 나의 문제이니 알려 달라는 정중한 요청이다.
상사는 이 말을 듣고 어떤 반응을 할까?
첫째, A에 대한 그의 감정이 심하지 않다면 이 질문을 가볍게 넘길 것이다. “그래요? 딱히 고칠 것은 없지만 이런 경우는 요렇게 하면 좋겠어요” 끝. 상황 끝이다.
둘째, A에 대한 불편한 감정이 있는데 개방적인 상사가 아니라면 대놓고 피드백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 정도 필요한 피드백을 흘릴 것이고 미운털이 다소 빠질 것이다.
셋째, 직선적인 상사는 물 만난 고기처럼 A의 부족한 점을 콸콸 쏟아낼 것이다. 이건 O.K. 나의 문제를 시원하게 들을 수 있는 기회다. 이후 잘하면 관계 개선의 물꼬가 트인다. A의 경우 직선적인 상사였다면 지금의 상황이 발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넷째, 잘해 보고 싶어 하는 부하직원의 이런 요청에 딴청을 부리며 외면하는 상사이다. 그렇다면 그는 리더십이 꽝!이다. 쿨 하게 돌아서자. ‘이 자에게서는 배울 것이 없구나!’
다행히 A는 기회를 포착했고 두 번째 타입인 팀장은 견딜만하게 부드러워졌다. 그러나 여전히 A에게는 편안함과 웃음에 인색했다. 상사의 마음에 미운털이 확실히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이것은 A의 문제라기보다 상사 본인의 문제일 수 있다. 그는 감정에, 솔직함에, 개방성에 꽉 막혀 있는 사람이다. A가 느끼는 만큼 그도 불편함으로 에너지가 소모되고 있을 것이다.
헤어질 때까지 묵묵히 견디자. 무기를 갈면서!
이런 상사라면 포기하고 견디자. 헤어질 때까지.
일단 업무로 승부하자. 상사가 어떻게 하든 관계없이 나의 업무 실력을 기르는데 최선을 다하자. 긴급한 일이라면 저녁시간과 주말도 양보하자.
상사에게 미운털 박히면 잘하던 업무도 버벅거리며 자신감을 잃고 동료와도 겉돌면서 멀쩡하던 사람이 순식간에 루저가 된다. 주변에 생기를 잃고 처져 있는 동료들. 그들도 처음부터 낙오자는 아니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었겠지만 상사 문제도 크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는 언젠가 나와 헤어질 사람이고 내가 더 회사에 오래 다닐 사람이다. 나의 조직생활이 이런 사람으로 구겨질 수는 없다. 노노!
껄끄러운 관계는 한 켠에 접어두고 차근차근 실력을 갖추자. 어느덧 나는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된다. 상사와는 드라이하게 일로만 이야기하자. 모든 업무를 상사가 커버할 수 없는 한 나의 존재는 중요해진다.
이래야 지금의 상황으로 내가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상사의 미운털이 나의 업무 탁월성을 기르는 선물이 될 수 있는 거다. 우리는 어려움을 대하는 두갈래의 태도에서 성장하거나 추락한다. 상황에 무너지는가? 상황에 벗어나려 애쓰면 배움의 기회로 삼은가?
나는 어땠는가?
분명 설명할 수는 없는데 불편한, 미운 직원이 있었다. 그러나 그가 노력하는 사람이고 탁월한 실력을 갖추었다면 적어도 일에 대해서는 그를 신뢰했고 존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서에서 일 잘하는 사람을 미워해 봤자 나만 손해다.
거꾸로 내가 부하 직원이었을 때 나도 A와 같은 경험을 했다. 그때 내가 무의식적으로 선택한 방법은 동료였다. 나를 지지하는 동료들을 늘리며 심리적 안정감 얻었다.
그땐 업무의 탁월성으로 승부할 생각을 못했다. 그저 상사를 원망하고 같이 미워하기 바빴다. 밤마다 동료들과의 한잔 술로 괴로움을 털어냈다. 실력으로 승부하지는 않았기에 업무능력은 제자리였으나 적어도 동료의 지지가 있었기에 마음의 상처는 회복되었다.
그때로 돌아가면 꼭 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런 상사, 선배를 견딘 후 헤어질 때 물어보는 것이다. 나의 미운털이 무엇이었냐고.
뒤늦은 감정 폭발이 아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 내가 더 나아지기 위해서 꼭 알고 싶다. 나는 결국 묻지 못하였고 지금도 가끔 궁금중이 올라온다.
A도 헤어지는 순간에 물어보겠다며 고객을 끄덕였다. 상대가 괜찮은 사람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말고. 그냥 그동안 똥 밟았다 생각하면 된다.
나와 너는 서로의 거울. 투사일 수 있다.
심리학적으로는 많은 경우 이것을 투사로 설명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거울이다. 즉 상대가 나를 미워하는 것은 내가 그를 싫어하는 것의 반사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다른 한편 상대가 가진 결점이 유난히 나를 자극하고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그 점을 내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자신과 주변을 잘 인지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지의 영역은 빙산의 일각이다. 수면 아래 전체 덩어리는 어마 어마하게 크다. 그중 수면 바로 밑의 부분을 융 심리학자들은 자아의 무의식 영역, 개인의 그림자 영역이라고 부른다.
평소에 부정하고 싶은 내 모습,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꽁꽁 숨겨둔 나의 그림자는 상대라는 거울을 통해 훤하게 비춰질 수 있다. 그럴 때 나는 일단 상대를 비난한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또 다른 그림자일 수도 있음을 인정할 때 상대에게 돌리는 화살이 멈춰진다. 내가 이유 없이 미워했던 그들은 나서기 좋아하고 잘난 척하는 나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숨기고 싶어 해서 늘 조심했던 그것을.
이것을 인정하면 상대에 대한 미움이 한풀 꺾인다. 아! 그는 나의 부정적 면을 가진 사람이구나! 이렇게 무의식의 그림자에 조명을 비추면 그것이 의식의 영역으로 넘어온다. 의식의 영역이 점차 넓어지는 게 성숙의 과정이란 것이 칼 융 선생님 말씀의 요지이다.
나는 A에게 상사와의 관계가 A자신의 투사, 또는 서로 간의 투사일 수도 있다는 말을 해 주려다 입을 다물었다.
여기까지만 하자. 투사니 무의식이니 그림자 자아를 소화하기에 그는 아직 젊다. 혹시라도 10여 년 후에 다시 그를 코칭하게 되면 그때 이야기해 주리라.
그는 평소에 긍정적이고 상황을 빠르게 인정하며 조언을 잘 흡수하는 사람이다. 오늘처럼 넘어지며 일어나며 시간이 가면 크게 성장해 있을 것이다.
딸 같은 후배인 A여! 괜찮다. 이렇게 겪고 견디며 빠져나오려 애쓰는 것이 회사생활이다. 너만의 문제가 아니다. 다 그러고 산다. 이게 다 월급값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