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함보다 온전함을
내 인생을 3등분 하자면 가족과 함께한 24년, 조직생활을 시작하고 내 가족을 이루며 퇴사하기까지의 34년, 그리고 이제 막 시작한, 아직 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은 나머지 삶이다.
나는 이 책에서 주로 두 번째 삶에서 일어난 일들을 중심으로 내가 겪었던 것들, 특히 잘 해내지 못했던 것들, 아쉬운 것들, 다시 돌아가면 달리 해보고 싶은 것들, 그래서 아직 그 기간을 통과하지 않았거나 앞두고 있는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들을 썼다.
많은 아쉬움은 있지만 다시 돌아간다 한들 더 잘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어느 인터뷰의 셀렙의 말처럼 이야기하고 싶다. “젊은 날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라고. 비록 부족하고 실패하고 넘어졌지만 모든 것이 충분했다.
메리 파이퍼의 <나는 내 나이가 참 좋다>에서처럼 이제 세 번째 삶을 목적 충족이 아닌 충만의 삶으로 이끌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챙기고 준비하면서 살아가려 한다.
조직의 삶은 호기심 가득 찼고, 도전과 모험도 즐겼고, 불필요한 일에 휩쓸려 다녔으며, 남들의 배척과 오해에 휩싸이며 고민도 한 삶이었다. 그리고 인생에서, 특히 여성에게는 중요한 선택들, 결혼, 출산, 육아, 자녀교육, 조직에서의 기회, 승진, 경쟁 등, 무수히 많은 결정과 도전과 탈락으로 이루어진 삶이었다.
이 글을 읽는 여성들은 각기 다른 삶의 선상에 있을 것이다. 내 바로 밑의 후배들이 있는가 하면, 딸 같은 후배들도 있다, 그들의 고민과 선택은 전혀 다르다. 젊은 후배들에게 결혼과 출산, 그리고 직장에서의 성공은 선택사항이다.
한마디로 나와 X세대가 공통적으로 마주했던 고민이 MZ세대에게는 다양한 삶의 형태 속에서 하나의 자유의지, 선택이 되었다.
그렇기에 선배 언니로서 내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결혼과 출산을 선택하고 조직에서의 삶을 포기하지 않았던 후배들에게 어필할 것이다.
이 글에서 나는 여러 가지를 다루었다. 배우자와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나의 삶이 덜 고단할 수 있는지, 수많은 워킹맘들의 최대 고민인 어떻게 자녀를 키울 것인가, 무시할 수 없으며 끝까지 미묘한 관계로 남는 시월드와 덜 갈등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조직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인가 관계인가?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 필요한 공간과 마음가짐은 무엇인가? 퇴직 전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퇴직 후 인생의 돌아보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결혼 후 맺게 되는 배우자와의 관계 설정은 결혼 전 탐색의 시간과는 다르다, 그리고 배우자의 가족, 시월드와의 관계 맺기는 일하는 여성뿐 아니라 결혼 한 모든 여성들을 예민하게 만드는 과제이다.
특히 결혼 초기의 관계의 분위기는 기혼여성의 삶의 질을 결정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하다. 결혼 초에 모든 것을 다 해주고 싶은 의지와 아름다운 마음은 훗날 장기전의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아껴라. 그리고 내가 감당하기 전에 가족과 나눠라, 그리고 요청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힘이 넘칠 때 베풀던 것들이 상대에게 당연한 권리로 자리 잡게 되고 나는 지쳐간다.
아이를 낳고 자녀를 어떻게 양육하고 교육할 것인가는 워킹만의 최대 과제이고 정답은 없다. 여기서 내가 부르짖고 싶은 핵심은 부모가 풍족하게 모든 것을 지원하면 할수록 자녀가 스스로 설 수 있는 기회가 적어진다는 것이다.
때론 남의 집 아이 보듯이 하며 적절하게 ‘결핍’을 경험하게 하라. 그러면 자녀들은 스스로 원하는 목표를 세우고 자신의 길을 찾아갈 것이다. 재테크와 세테크도 중요하지만 子테크가 더 중요하다.
조직생활을 하는 30여 년의 기간 동안은 나를 잃지 않으면서 지혜롭고 건강하게 조직생활을 하는 것이 중요하가. 그 핵심은 업무능력보다 주변과의 관계 형성이다. 혹자는 이를 ‘사내 정치’로 조금은 저속하게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일을 잘 해내기 위해서는 관계 형성은 너무나 중요하다. 리더십의 다른 이름도 ‘관계 형성 능력’이다. 이것은 타고난 성격과 별도로 우리가 노력해야 할 후천적인 ‘관계 지능’이다. 어떤 책에서는 이 능력을 ‘WeQ’라고도 한다. 일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능력보다 타인의 협조와 능력을 동원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방어적인 태도, 까칠한 분위기, 미묘한 눈짖, 노골적인 무시, 지나친 자기주장 등으로 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겪는다. 미국의 어느 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의 이직 사유 중 가장 많이 차지하는 것이 ‘상사가 싫어서’란다. 이 순간 나는 힘든 상사 때문에 이직을 고민하는가? 아니면 내가 바로 그 상사인가?
상위의 직급에 올라 갈수록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주변과 어떻게 소통하고 있고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나?’를 알아차릴 수 있는 ‘자기 인식-Self Awareness’가 가장 중요하다. 어느 서베이에 의하면 리더십의 제일 큰 문제는 리더의 자기 인식이 없다는 것이다. 리더는 올라 갈수록 정보와 지식은 많아지나 자기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은 낮아진다.
사내 다면평가 결과가 나오는 시점에 회사가 의뢰하는 임원들을 대상으로 코칭을 할 때 가장 난관이 이것이다. “내가 왜?, 지금까지 희생하고 헌신한 게 얼마인데, 내가 왜 코칭을 받아야 되나?, 누가 나를 그렇게 평가했나?" 대부분의 임원들은 배반감을 느끼고 저항을 한다. 자기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50에 즈음해서 우리는 조직생활에서 한 걸음 물러나와 다양한 생각을 해야 한다.
두 번째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실리적으로는 무엇을 대비하고 준비해야 하며, 내 삶의 방향을 위해서는 어떤 고민과 준비를 해야 하는가? 전반부 인생의 프레임으로 후반부 인생을 살아갈 수는 없다는 칼 융의 말 대로 나머지 인생은 어떻게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어야 한다.
나는 종착역이 없다는 듯이 조직만을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을 칭찬하고 싶지 않다. 그들은 나가야 되는 시점에 조직에 배신감을 느끼고, 상심하고, 분개하며 우울해진다. 현직에서 기운찼던 그들은 퇴직 후 후배들의 점심 세례가 이어지는 허니문 기간이 끝나면 급 늙어 버린다. 노인의 모습으로 갑자기 변한다. 물론 염색을 중지한 이유도 크지만 말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제야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우두커니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길을 잃는다는 것이다. 미리 자신의 방향성, 가치를 깊이 고민하는사람의 퇴직 후 걸음은 가볍다. 이들은 퇴직 전 얼마 남지 않은 직장생활을 더욱 소중히 여긴다. 그래서 조직을 위해, 후배를 위해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생각하며 남은 기간을 더욱 헌신할 수 있다.
퇴직 후 온실 밖으로 나오면 눈팅만 하며 동경하던 것들을 시도하자. 호기심을 가지고 이것저것 만져보고 시도해 보는 어린아이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런 시도 끝에 조직생활에서 묻어 두었던 나의 본성이 이끄는 무언가를 찾아가 보자. 잘하면 그것을 두 번째 업으로 삶는 것이다.
일과 돌봄에 묻혀 후딱 지나간 남편과 나의 3,4십대는 서로 이해할 겨를도 필요도 없었다. 그저 역할을 나누고 삐꺽거리면 다투고 상한 마음으로 일터로 돌아가면 희석되고 다시 투닥렸다. 이삼십 년의 조직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우리는 처음처럼 정면으로 마주했다. 이렇게 살아갈 수는 없었다. 몸을 가까웠으나 부지불식간 쌓아온 마음의 벽은 높았다. 리모델링의 시간이 필요했다. 격렬한 푸닥거리 끝에 회복한 관계는 평온을 찾았다. 살면서 다시 혼란이 올 때 둘만의 루틴을 정했기에 마음이 편안하다.
퇴직 전 만난 ‘코칭’을 두 번째 인생의 방향으로 삼은 나는 지금 열심히 공부하고 부지런히 후배들을 만나고 있다. 그들의 고민과 상황이 비록 나와 같을 수는 없더라도 같이 고민하고 탐색하며 때론 내 경험을 근간으로 손잡아준다.
한동안 소원했던 친구들을 만나고 즐겁게 수다도 떨고 틈틈이 여행도 다니고 그림도 그린다.
이제 남은 것은 나와 가족의 개념을 확장하여 주변의 사람들, 특히 이런저런 사유와 환경에 힘들고 절망하는 사람들을 위해 손을 잡아 주는 것.
조직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지나고 나니 참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완벽함보다 온전함을, 꽉 차기보다 좀 비워두며 가자. 좀 남겨두어야 퇴직 후 나서는 두번째 인생을 힘차게 출발할 수 있다.
알게 모르게 또는 노골적으로 여성으로서 수 많은 제약과 틀속에서 정글처럼 헤쳐 나갔던 조직생활. 그리고 종종 거리며 뛰어 다녔던 가정생활. 아쉬움도 있지만 후회는 없다. 그래도 다시 태어난다면 한 번쯤은 남자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