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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와 사랑 Dec 19. 2021

미지정 사동 근무

  미지정 사동은 대부분의 직원들이 꺼려하는 기피 근무지로 공장에 출역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모아 놓은 곳이다. 상습규율위반자,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 단체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 신체적으로 작업을 감당하지 못하는 자 등 통제기 어려운 수용자들이 많았다. 그중 절반 이상은 미결에서 형 확정되어 미지정사동에서 작업 대기 중인 수용자들이었다.

  사무통인 내가 기피 근무지인  미지정 사동 근무를 지원하자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직원들도 많았다.

  나는 힘들더라도 한번 더 움직이며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지켜보면 버텨낼 수 다는 생각으로 근무하였고 고충을 토로하는 수용자들의 말을 무시하지 않고 상담을 해주었다. 수용기록, 특정강력범, 거실지정 등 업무를 거쳐왔기 때문에 대부분 즉석에서 답변을 주었고 내가 모르는 것은 곧바로 해당과 업무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해결해 주었다.

  그런 게 통해서인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수용자와 치매 노인 등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한 수용자를 제외한 수용자들은 나를 신뢰하고 크게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수용자들이 나를 신뢰하고 따르게 된 첫 번째 사건은 직업군인으로 퇴직한 노인수용자의 문제였다.  전임 담당 때  수차례 고충을 얘기했지만 해결하지 못한 채 나한테까지 넘어온 것이었다. 징역을 살다 보면 같은 방 사람들에게 매일 얻어먹을 수만은 없어 돈이 필요해서 부인에게 매달 50만 원씩만 보내달라고 편지를 썼는데 대답이 없다는 것이었다.

  군인연금이 매달 300만 원 이상 나오는데 부인이 수령하고 있고 교도소 들어온 후 접견을 한 번도 오지 않고 있다며 답답해하고 있었다.

  나는 공무원연금공단 주소를 가르쳐 준후 편지를 쓰라고 했다. 총무과에서 수용증명서를 발급받아 편지에 동봉한 후 본인이 교도소에 수용되어 있는데 이러저러해서 연금을 직접 수령하고 싶다고 편지를 보내고 영치금 계좌번호를 적어 보내라고 했다.

  며칠 후 노인수용자가 밝은 표정으로 공무원연금공단에서 연금수령 통장을 영치금 통장으로 해주겠다는 답장이 왔다며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 노인수용자가  딸이 외손주를 데리고 접견 왔다며 매우 들떠 있었다. 교도소 들어온 후 첫 접견이었다. 나는 노인수용자에게 "따님이 연금을 다시 부인 앞으로 해달라고 할 겁니다. 절대 넘어가서는 안됩니다."라고 신신당부하였다.

  그렇게 하겠다며 접견을 갔다 온 노인수용자가 내게 왔다. 딸과 외손주를 보니 너무 좋다며 감격해하며 눈시울을 적시고 있었다. 딸이 그동안 한 번도 접견을 안 와서 죄송하다며 앞으로 가끔 한 번씩 오겠다는 말을 하며 부녀간에 울며 화해의 접견을 했던 모양이었다.

  노인수용자는 부인에게 매달 30만 원씩만 보내달라고 했고 부인도 그렇게 하겠다고 해서 연금수령을 다시 부인이 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었다.

  노인수용자가 내 말을 듣지 않고 다시 부인이 연금을 수령할 수 있게 해 주었지만 가족 간에 화해가 이루어졌으니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지정 사동 수용자들이 나를 따르게 된 또 하나의 사건은 장염 걸린 수용자였다.

미지정 수용자 중 절반 이상은 형 확정되어 기결 사동으로 온 수용자들로 답답한 사동 생활을 끝내고 하루빨리 공장에 출역하기를 원했다.

  나는 작업과 담당에게 수시로 연락해서 내가 담당하고 있는 수용자들을 주기적으로 공장에 출역시켜 주었다. 그런데 출역을 며칠 앞둔 50대 초반 수용자 H가 배가 아프다고 하여 의료과 진료를 받게 하였는데 다음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H가 식사를 못하고 얼굴이 반쪽이 되어 병색이 완연했다.

 나는 H에게 많이 아프냐? 고 물어보았더니 괜찮다고 하는 것이었다. 눈치를 보니 공장 출역 순번이 밀릴까 봐 참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H에게 몸이 상당히 안 좋아 보이는데 잠깐 나와보라고 했더니 허리도 제대로 펴지도 못하고 걸음도 불편해 보였다.

  의료과장에게 직접 데려가서 아무래도 장염 같다고 말씀드린 후 H를 의료과에 남겨두고 사동으로 돌아가려는데 H가 '공장 출역해야 하는데'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치료나 잘 받고 와! 다 나으면 1순위로 내보내 줄게"라고 말하고 사동으로 돌아왔다.

 의료과장 진료 결과, H는 장염이 의심된다며 곧바로 외부병원에 나갔는데 장염으로 판명되어 며칠간 입원하게 되었다.

  다 나아서 돌아온 후 약속대로 원하는 공장에 출역시켜 줬는데 소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청소도 하고 원예도 하는 곳으로 수용자들이 선호하는 곳이었다.

 나이가 나랑 비슷함에도 돌아다니다 내가 보이면 "주임님!"하고 부르면서 달려와 인사하고 가곤 했다.


  그 사건  미지정 수용자들이 나를 더욱 신뢰하게 되었고 상습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수용자들도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고 간혹 나에게 트집을 잡는 수용자들도 같은 거실 수용자들이 자제시켰다는 얘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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