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와 사랑 Dec 14. 2021

  세상에는 수많은 길이 있다. 사람이 걸어가는 길, 동물이 걸어가는 길, 차가 다니는 길, 자전거가 다니는 길 등 유형의 길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의 살아가는 과정, 삶을 길로 표현하기도 한다. 같은 길이 오르막길이 되기도 하고 내리막길이 되기도 한다. 좁은 길이 있는가 하면 넓은 길도 있고 똑바른 길이 있는가 하면 구불구불한 길이 있고 사람들이 수없이 많이 걸어 다닌 길이 있는가 하면 인적이 드문 길도 있고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길도 있다. 비행기나 배가 다니는 길처럼 육안으로 식별하기 어려운 길도 있다. 어떤 사람이 좋아하는 길을 다른 사람은 싫어할 수도 있다.

  수없이 많은 길 중에서 나는 어떤 길을 걷고 있는가? 어떤 길을 걷기를 좋아하는가? 지금 걷고 있는 길이 내가 원하던 길인가? 모두가 잠든 시간에 외부세상과 단절된 교도소 길을 걷다 보면 상념에 잠기게 된다.

  교도소 안에는 수많은 문들이 있고 사동, 공장, 교회당 등으로 연결되는 통로가 있다. 교도소안의 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간다. 교도관, 성직자, 검사, 판사, 변호사, 교정참여인사, 수용자 가족 등 각기 다른 사람이 다른 목적, 다른 마음으로 같은 길을 지나간다. 같은 수용자가 지나가더라도 입소할 때는 절망의 길이 되고 출소할 때는 희망의 길이 된다. 종교집회를 하러 갈 때에는 참회의 마음으로, 가족을 만나러 갈 때에는 미안함, 죄스러움, 반가운 마음으로 걸어간다. 같은 길이 어떤 사람에게는 희망을 어떤 사람에게는 절망을 안겨주기도 한다. 같은 길이 같은 사람에게도 어떤 때는 실망을, 어떤 때에는 희망을 안겨준다.

  교도관의 길을 걸어오면서 수많은 수용자들의 인생역정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소년교도소에서 근무하는 동안 소년수형자들이 자라온 환경을 통해 우리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볼 수 있었다.


  세상의 어떤 사람도 교도소에 수용되는 길을 걷기를 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형수, 무기수들도 어릴적에는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꿈꾸었을것이다.

수형자들 중에는 지은 죄의 무게에 따라 형기가 정해져 있어 끝이 정해져 있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끝이 없는 길을 걸어가야 하는 수형자들도 있다. 무기징역을 받은 사람들이다. 불확실한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최고수라고 불리는 사형수들이다. 교도관인 나는 무기수들에게 나도 무기수라고 말하곤 한다.

  수형자들 중에는 일반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수형자들과 얘기를 하다보면 젊은 날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며 지난날을 뼈저리게 후회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인간이 어쩌면 저럴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도 있다. 특히 가족도 없고 경제적으로도 백지상태인 수형자들이 사고를 치고 자포자기의 상태에서 막 나갈 때에는 방법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는 수형자들을 대하려면 많은 인내와 절제를 필요로 한다. 막장에 다다른 사람들 중에는 어떻게든 주변사람들을 이용해 먹으려는 생각만 하며 수없이 배신을 하며 자신이 의도한대로 되지 않으면 엉뚱한 짓을 저지르며 사고를 치곤 한다. 천인공노할 죄를 저지른 수형자들의 사건내용을 보면 도저히 인간으로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교도관의 길이 성직자적인 사명감을 필요로 하는 건 바로 이런 점이 아닌가 싶다.

수용자들을 대하면서 가장 기분이 좋았던 때는 몇 년 전 노인 수형자에게 편지를 받았을 때였다. “존경하는 주임님! 3하 1실 박○○입니다. 15일에 출소하는데 오늘 아니면 못 뵐 것 같아 문안드립니다. 제 전과기록을 아시다시피 저는 평생 교도소를 들락거리며 수많은 직원들을 접하였으나 주임님처럼 권위적인 면을 배제하고 인격적으로 대해 주신 분은 드물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건강하시고 승진하시길 빕니다.”

  며칠 후 박○○는 출소하였고 그의 바람대로 나는 승진을 하여 C교도소를 떠나 D교도소에서 근무하게 되었는데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사동에서 거실마다 돌아다니면서 인원점검을 하는데 박○○의 얼굴이 보였다. 어이가 없었다. 반가운 마음과 황당한 마음이 교차하면서 어찌된 사정인가 궁금하여 박○○를 사무실로 불렀다. 박○○는 나를 보자 놀라며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계속 하였다. 나는 “다시 만나서 반갑긴 한데 교도소에서 다시 만나면 안 되는데…….”라고 말한 후 사정 얘기를 들어보니 C교도소에서 출소한 후 가족도 없고 마땅한 주거도 없어 여인숙 등을 전전하며 기초생활수급 및 장애 수당으로 생활하며 종교단체에서 제공하는 100원짜리 밥을 사먹으며 지내던 중 술에 취해 자신을 무시하는 사람에게 상해를 가했다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그는 사회에서의 생활보다 교도소에서의 생활이 편했기 때문에 교도소로 들어오는 길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뇌병변 4급에 전립선 비대증이 있으나 밖에서는 약도 제대로 사먹지 못했을 것이고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박○○와 상담을 마친 후 거실로 데려다 주며 우리사회가 결손가정의 소년들과 가진 것 없고 의지할 곳 없는 노인들, 우리 사회의 막다른 길에 몰린 사람들을 무시하고 외면하면 범죄의 길로 들어서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작가의 이전글 아빠도 엄마한테 던졌잖아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