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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와 사랑 Jun 26. 2022

호송버스 안에서

소년

  “네 자리는 앞쪽이야 뒤에 있지 말고 앞으로 와!”

  “그냥 여기 앉아 있을래요.”

  “앞으로 오라니까 거기는 직원 자리야”

  “저 새끼 옆에 앉으면 한 대 팰거 같아서 그런다니까요.”

  “너 그저께 접견하면서 어머니가 하신 말씀 벌써 잊어 버렸니?”


  김천으로 가는 호송차량 안에서 어느 소년수형자가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다른 소년수형자에게 욕을 하며 함께 앉지 못하겠다며 버티다가 어머니 얘기를 하는 직원의 얘기를 듣고 감정을 자제하고 앞으로 와서 앉았다.


  천안소년교도소가 외국인 교도소로 전환됨에 따라 천안소년교도소에 수용되어 있던 소년수형자들이 모두 김천소년교도소로 이송가게 되었는데 마지막 남은 소년수형자들이 가는 호송차량 안에서 소년수형자 한명이 자신의 감정을 자제하지 못하고 다른 소년수형자에게 막말을 하고 있었다. 소년수형자들은 자존심이 매우 강하고 자제력이 없어 성년수형자들과는 달리, 나중에 눈물을 흘리며 후회를 하며 잘못을 빌게 될지라도 앞뒤 생각하지 않고 일단 저질러 놓고 보는 속성이 있어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갑자기 싸움이 벌어지기도 하고 물불 가리지 않다가도 그 순간이 지나면 순한양이 되어 버리는 사례를 수없이 보아왔다. 관심을 가지고 보살펴주면 그만큼 따라오는 특성이 있어 소년수형자들과 함께 생활하는 교도관생활은 나름대로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호송차량안에서의 작은 다툼은 소년수형자들의 모습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었다.

  선배교도관 한분이 호송차량을 돌아다니며 소년수형자들의 얼굴을 일일이 쓰다듬어 준 후 자리에 돌아와 감회에 젖은 모습으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눈가에 눈물이 고이는가 싶더니 다시 일어나 소년수형자들에게 다가가 마치 자식을 먼 곳에 떠나보내는 부모의 마음인 듯 “가서 잘 살아”는 말을 한마디씩 건네며 소년수형자들의 볼을 어루만지는 모습을 보며 나 역시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평생을 소년수형자들과 함께 생활해오신 분이라 감회가 더 깊었으리라……. 퇴직이 얼마남지 않은 선배님의 모습을 보며 선배님을 스쳐간 수많은 소년수형자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돌이켜보니 소년교도소에서의 내 교도관 생활도 19년째로 접어들었다. 19년 전 28살의 나이에 방황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던 내게 원주교도소에 다니던 친구가 “네게 아주 잘 어울리는 직업이 있다.”며 교도관시험에 응시할 것을 권유하였을 때 나는 이상하게도 교도관이란 직업에 대해 아무런 거부감 없이 교도관시험에 응시했었다. 소년교도소에서의 교도관생활은 생각했던 대로 내 적성에 너무도 잘 맞았으며 나는 그로부터 19년여 동안 수많은 소년수형자들과 함께 생활해 왔다. 대부분의 소년수형자들은 결손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라 직원들의 관심과 사랑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소년들과 함께 지냈던 내 교도관생활은 참으로 행복했으며 가정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닫게 한 시간이었다. 부모가 화목하지 못함으로 인해 아이들이 얼마나 상처받는지, 우리사회가 건전하지 못함으로 인해 발생한 흉측한 범죄의 결과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나날들이었다.


  10여 년 전 어느 소년수형자는 3년여의 교도소 생활동안 출소를 얼마 안 남겨 놓고 딱 한번 접견을 왔는데 접견을 온 사람이 바로 어렸을 때 자신을 버리고 어디론가 떠났던 어머니라 접견을 거부했다가 담당직원의 설득으로 비로소 접견장에서 어머니와 상봉한 사례도 있었다. 간혹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악하게 태어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 소년수형자들도 있었으나 대부분의 소년수형자들은 결손가정에서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하며 방황하던 아이들이었다. 


  몇 달 전부터 나는 미결수용자들 그리고 외국인 수형자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미결수용자들은 언제든 무죄판결을 받으면 우리 이웃으로 돌아올 수 있는 사람들이라 소년수형자들과는 다른 감정, 다른 마음으로 대하고 있다. 수많은 형태의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나름대로 그들의 입장이 되어 본다. 그중에서 인생이 꼬일 대로 꼬여 앞이 안 보이는 사람들을 아픈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다.


  외국인수형자들을 바라보며 ‘저들도 꿈이 있었을 텐데……. 미래에 대한 벅찬 꿈을 안고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왔을 그들에게 한국은 어떠한 모습으로 보여졌을까? 혹시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들에게 범죄의 환경을 제공하지는 않았는가?’라는 생각을 하며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책의 마음을 가져보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남아공 출신의 백인 수용자 하나와 얘기를 나누던 중 그가 서툰 영어로 가정사까지 얘기하며 반가워하는 관계가 되었다. 아내와 4살짜리 아들에게 너무 미안하다며 눈시울을 적시는 그를 보며 가족이 먼 외국에 있어서 한국인 수용자들보다 훨씬 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인훈의 “광장”에서 8.15 해방 후 좌익으로 몰려 대한민국의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던 주인공이 자신을 조사하는 형사들이 일제시대때 독립군들을 괴롭히던 악명 높은 순사였으며 독립군을 고문하던 실력으로 고문하고 있음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대목이 나온다. 나는 그 대목을 읽으며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혼란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나 역시 일제시대 간수의 행동을 답습하고 있지는 않은가? 21세기 대한민국의 교도관이 맞는가?’ 라는 자문을 해보기도 한다. 청년시절에 읽은 “러시아에서 그분과 함께”라는 소설을 회상하며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23년의 억울한 수용생활동안 한결같이 신부로서의 직분을 잃지 않았던 예수회 소속 미국인 취제크 신부님을 떠올리며 세상의 악역인 교도관이지만, 하느님 뜻에 맞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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